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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내가, 60대 나를 찾아왔다 1

장인정신이 살아 있는 목수가 되고 싶어요

by 담서제미

나에게 2006년은 내 생애 통틀어 잊을 수 없는 해이다. 그 해 내 인생에 전환점이 되었던 굵직한 일들이 많았다. 30대 내가, 60대 나를 찾아왔다 10편을 마무리하고 오늘부터는 40대로 넘어간다.


돌이켜보니 살아온 동안 가장 부침이 심했던 나이가 40대였다. 이 십 대에 친구랑 나는 어서 빨리 마흔이 되기를 희망했다. 마흔이 되면 인생이 달라져 있을 거라고. 그때가 되면 생활도 안정이 되고 연일 부대끼던 마음도 정리가 될 거라고. 막상 40대가 되니 달라지기는커녕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는 저울로 잴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웠다.


40대에 써 놓았던 글들을 만나러 떠나는 여행. 그 길에서 나를 반긴 건 감성이었다. 담담해지려 해도 20년이 다 된 글들을 만날 때마다 몽글몽글한 마음이 버선발로 뛰어나왔다. 60대인 내가 40대 나를 찾아갔는지, 40대인 내가 60대인 나를 찾아왔는지 그건 모르겠다. 확실한 건 둘 다 서로를 끌어당겼다는 거다.


지금보다 서툴고, 애썼던 40대 나. 글 속에서 웃고, 울고, 모질게 자신을 다그쳤던 순간들이 글 안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장인정신이 살아 있는 목수가 되고 싶어요


2006년 1월 25일 오마이뉴스에 기고했던 글에는 지금은 대목수가 되어 세상에서 가장 멋진 한옥을 짓고 있을 그가 있었다.

KakaoTalk_20241205_061020522.jpg 마음을 담아 보내 준 감사 편지


그는 마흔에 한옥을 짓는 목수일을 시작했다. 나와 인연이 시작된 것은 2005년 11월이었다. 성취프로그램 진행자와 구직자로 만났던 그의 나이는 40살이었다. 나를 처음 만났던 날 그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는 나와 5일 동안 함께 했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가장 눈에 띄게 변화를 보인 사람이었다. 마흔 살이 되도록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을 하고 싶은 지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학창 시절은 방황의 연속이었다. 졸업하고 취업하려니 갈 곳이 없었다.


고민 끝에 택한 직업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테리어 회사였다. 마티카, 참나무, 오크, 춘양목으로 고급가구도 만들었다. 자신의 손을 거쳐 완성이 된 가구를 보면서 뿌듯하기도 했다. 그에게는 단순한 가구가 아니라 하나의 작품이었다.


하지만 운명은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IMF가 터지면서 회사가 문을 닫았다. 먹고살기 위해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컴퓨터가게를 차렸다. 컴퓨터에 무지했던 그는 친구만 믿었다. 그 결과 돈을 다 날리고 올 갈데없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결국 도시살이를 접고 부모님이 계신 고향으로 내려왔다.


그때부터 술로 세월을 보냈다. 우편물 대리취급소를 하기도 했지만 그마저 길게 가지 못했다. 하루 이틀 허송세월을 보내다 어느 날 문득 뒤돌아보니 자신의 나이가 마흔이었다. 마흔이라는 나이를 자각한 순간,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찾은 곳이 고용안정센터(현 고용복지+센터)였다.


그는 5일 동안 성취프로그램이 끝나고도 매일 우리 사무실로 출근을 했다. 9시까지 고용안정센터(현 고용복지+센터)로 출근을 해서 자신의 일자리를 알아보러 다녔다. 마침내 그는 자신의 소질과 적성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을 찾아냈다.


공예품도 만들고 한옥을 건축하는 공방이었다. 2년가량 가구를 만들었던 거 외에 집 짓는 경력이 전혀 없었던 그는 월급을 안 받아도 좋으니 기술을 배우게 해 달라며 매달렸다. 새벽 5시에 일어나 한옥 짓는 현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하나씩 배웠다. 몸은 힘들었지만 하나씩 배우는 것이 재미있었다.


주중에 쉬는 날이 있으면 찾아와서 앞으로 포부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적응은 잘하고 있겠지. 배우는 것이 재미있다고 했으니 잘 할꺼야라'며 응원하는 마음이 늘 있었다. 그는 그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편지로 자신의 근황을 알려주곤 했다.


한옥을 짓는 현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다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한 그가 자신의 각오를 써서 보낸 편지를 보면서 이 사람은 앞으로 반드시 성공하겠구나라는 예감이 들었다.


한옥직업훈련학교로 떠나기 전 그가 보낸 편지 중 일부다.

KakaoTalk_20241205_074636131.jpg 손글씨로 쓴 편지


<그동안 잘 계시리라 믿습니다. 아침 5시에 일어나 6시쯤 출발합니다. 현장에서 오후 5시 30분까지 작업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6시가 됩니다. 배낭 메고 출근해서 흙먼지 가득한 작업복으로 퇴근합니다. 딸들과는 저녁에만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행복합니다. 집에는 온통 나무냄새와 톱밥이 가득합니다. 선생님의 관심과 사랑으로 구인개척을 하면서 선생님들의 소개에 누를 끼쳐드리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중략)


고민과 지인들의 관심과 배려 속에 12월 3일 토요일에 면접을 보고 저녁 늦게 결정을 내렸습니다. 첫째, 내가 좋아하는 일 둘째, 젊은 사람들이 하지 않는 일 셋째, 힘들어도 기술을 필요로 하는 일 넷째, 늙어서도 할 수 있고 남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 다섯째, 늦었지만 최고가 될 수 있는 일


아무리 녹초가 되어도 내 일처럼 하고 있습니다. 날마다 공부하고 일기 쓰고 주워들은 것을 메모하면서 단순한 목수가 아닌 이론까지 겸비할 수 있는 장인이 되기 위해 관련된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보고 있으니 잘 지켜봐 주십시오.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연락하겠습니다.


처음대하는 기계들이라 위험하고 힘들지만 기계들과 대화를 하면서 사랑한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그들도 저를 무척 좋아합니다. 평일 날 쉬면 찾아가고 싶은데 그렇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갑자기 힘든 일을 하니까 가족들이 걱정을 많이 합니다. 특히 형이 그래요. 그래서 형! 저 또 다른 일을 찾으러 다니면 죽을 것 같으니 지켜봐 달라고 했습니다. 꼭 뜻대로는 되지 않겠지만 그래도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며 살고 있습니다. 현실에 충실하고 인간 뿐 아니마 미물들도 하찮게 보지 않은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두 분 선생님께서도 저를 꼭 지켜봐 주십시오>


나는 40대 써 놓았던 글들을 읽으며, 그 시절 내가 지키고 싶었던 가치들을 다시 바라본다. 내가 느꼈던 감정들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선명했다. 그의 이야기는 매스컴에도 나왔다. 새벽 5시에 일어나 한옥을 짓는 현장으로 가는 모습,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 한옥을 짓는 공부를 하는 모습, 나를 찾아오는 모습들이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기기도 했다.


그는 지금 대목수가 되어 있으리라. 그가 우리에게 보낸 편지속에는 그의 각오 뿐만이 아니라 40대 내가 들어 있었다. 어떻게 최선을 다하며 살았는 지. 그때 글을 읽으며 나를 끌어안았다. "그때 정말 열심히 살았구나. 구직자들에 대한 너의 열의와 정성이 오늘 나를 웃게 하는구나"라며.


60대 또 다시 글을 쓴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언젠가 내게 돌아오겠지. 40대에 내가 남긴 글이 60대 나를 울리고 웃게 했듯이 오늘 쓴 이 글이 80대가 되면 나를 감싸 안아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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