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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기억을 끓인다

밥은 기록이자 삶을 담는 그릇

by 담서제미


"나, 있잖아. 갑자기 구내식당 밥이 그립네. 먹을 때는 몰랐는데 한번 가도 되냐"


"완전 좋아요. 바로 식단표 보내줄게요"


"환영입니다"


그건 갑작스럽게 찾아온 감정이었다. 집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퇴직 후 별다른 약속이 없는 한 점심은 거의 혼자 먹는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먹는 한 끼는 아니다. 최대한 나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반찬과 밥을 차려 음악을 들으며 먹는다.


그날도 그랬다. 표면에 마요네즈를 발라 종이호일에 구은 고등어와 김장김치, 샐러드와 함께 가마솥에 막 지은 밥을 먹고 있었다. 고등어살을 발라 한 입 먹으며 '아, 고소하네'라는 생각이 든 순간이었는지, 김장김치 한 가닥을 찢어 입에 가져간 그때였는지. 그건 모르겠다. 그날따라 내 숟가락과 젓가락이 부딪치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문득이었다. 아, 구내식당 밥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그리움은 이렇게 느닷없이 찾아왔다. 직장 생활할 때는 구내식당 밥이 맛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구내식당 밥이 그리워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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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들이 식단표를 보내줬다. 생각난 김에 바로 실행을 하자며 다음 날 약속을 잡았다. 구내식당을 찾은 것은 3년 만이었다. 식당은 그대로였다. 익숙한 풍경, 익숙한 냄새. 메뉴에 따라 식당 풍경은 달라졌다. 어떤 날은 한 줄로 늘어선 줄이 길 때도 있었고, 어떤 날은 드문드문 이어질 때도 있었다.


퇴직 전 점심시간은 늘 짧았다. 오전 일과를 정신없이 보내다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그것은 쉼표 같은 시간이었다. "오늘 메뉴가 뭐야"라며 별다른 약속이 없는 한 구내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던 그 순간들이 떠올랐다.


은색 식판에 밥을 담고 반찬을 고르며 서로 안부를 주고받던 동료들, 오늘 메뉴는 "돼지고기볶음이네", "비빔밥이네"라며 주고받던 그 짧은 순간이 직장 생활하는 동안에 얼마나 큰 위안이었는지.


"이거 맛있네. 이거 먹어봐"

"이건 별로네"

"오늘 오전은 어땠어"라는 대화들이 밥상 위에서 이어졌다. 그것은 한 숟가락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나누던 시간이었다. 점심시간은 그저 배를 채우는 시간이 아니었다. 일이 힘들 때는 잠시 내려놓기도 했던 시간들. 실없는 농담을 하면서 웃다 보면 오후를 다시 시작할 에너지가 생기기도 했던 충전의 시간이기도 했다.


오랜만에 후배들과 같이 먹는 점심 메뉴는 잡곡밥, 떡만둣국, 계란야채 말이, 단무지 무침, 야채 겉절이였다.

구내식당 반찬이 이렇게 맛있다니. 퇴직 후에 다시 찾은 이곳에서 먹는 밥과 반찬은 전부 꿀 맛이었다. 낯익은 후배들과 안부를 주고받으며 먹은 한 끼 안에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따뜻한 다리가 있었다.


그것은 밥 한 끼에 담긴 인생의 쉼표였다. 바쁜 일상 속 점심시간은 잠시 멈춰 숨을 고르는 시간이었다. 함께한 사람들과 소소한 행복을 나눌 수 있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 시간들은 지나버렸지만 마음속에는 여전히 따뜻함과 웃음이 남아 있었다.


그들과 나누던 농담, 반찬에 얽힌 소소한 이야기들, 사무실에서 생긴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주고받던 그 모든 것이 사진 속 한 장면이 되어 저장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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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풍경들은 이제 기억 속에 아련히 남아 있다. 그때 그 시절 함께했던 시간은 단순히 풍경을 넘어, 그곳에서 이어진 사람들의 인연과 함께 삶의 한 장면으로 깊게 새겨져 있다.


"구내식당 밥이 그리우면 언제든지 와요."

"아니 그러지 말고 일주일에 한 번씩 올란가"

라는 후배들 말 한마디가 어찌나 따스하던 지.


정년퇴직 후에는 혼자 밥 먹는 시간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누군가와 함께 먹고 있다. 퇴직 전 후배들과 함께 했던 그 시절 구내식당 맛은 추억 속에서 깊이를 더해갔다. 그때 그곳에 머물러 있었던 때에는 결코 알지 못했던 깊이와 맛을.


밥은 단순히 몸을 채우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음을 채워주던 공간이었다. 그 안에 담긴 정과 추억. 밥은 기억을 끓이고 있었다.


그것은 시간을 녹이고 추억을 스며들게 하는 힘이었다. 구내식당에서 함께 나눴던 밥은 삶의 고단함을 달래주고 서로의 거리를 좁혀주는 매개체였다. 그 기억들은 지금도 내 안에 따뜻한 위로로 남아 있었다. 밥은 결국 삶의 기록이고 기억을 담는 그릇이었다.


나는 그 밥을 다시 끓였다. 밥을 한 숟가락 들 때마다 한 조각의 기억이 따라왔다. 그 기억은 내 삶을 훨씬 더 풍요롭게 만들었다.


나는 오늘도 밥이 아닌 기억을 끓이며 과거와 현재, 미래를 걷는다. 그것들이 문득문득 구내식당 밥과 반찬처럼 찾아와 나를 두드리면 또 하나의 인연을 찾아 여행을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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