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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 살 꽃 청춘, 경숙씨

새울의 정원

by 담서제미

지난 연말 나에게 한 권의 책이 왔다. '새울의 정원" 나의 삶, 여행, 그리고 들꽃 이야기. 책 표지에서 남바람꽃이 하늘거리고 있었다. 이 책은 후배의 어머니가 팔순 기념으로 출간을 한 책이었다. 원래는 칠 순때 사진첩을 내려고 했는데, 더 찍고 싶은 게 많다고 하셔서 팔 순기념으로 낸 한 권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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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아든 순간, 그 두께에 놀랐다. 400페이지가 넘었다. 이 책을 여든 살 어머니가 글을 쓰시고 수정하는 작업을 다 하신 거라고. 그 자체로 경이로웠다. 책에 쓰인 글과 사진들 하나하나에서 정성이 전해졌다. 글에서는 사람 냄새가 사진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이미 사진작가셨다.


여든 살 꽃 청춘, 경숙씨.


책을 보내준 이는 내가 아끼는 후배다.


"엄마, 책이 나왔어요. 보내드리고 싶어서요"라는 말을 들었던 터라 궁금했다. '새울이 무슨 뜻이지' 첫 페이지를 넘겼다. 새울은 그녀가 나고 자란 신탄진의 한글 뜻풀이란다. 예순을 훌쩍 넘어 시작한 사진에 대한 기록과 팔 십 년을 살아온 한 사람의 삶이 책 속에 녹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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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나를 감동케 한 것은 그녀가 사진을 찍기 시작한 나이였다. 예순을 넘긴 일흔이 다 된 나이였다. 그녀는 사십 대 후반에 남편과 사별했다. 남편은 딸 셋을 남겨놓고 저세상으로 떠나버렸다. 책을 보내주면서 후배가 그랬다. "엄마가 지금 저보다 더 젊으셨을 때 혼자가 되셨더라고요" 그 말속에 울림이 있었다. 말이 쉽지 남편을 먼저 보내고 딸 셋을 키워낸 그 세월이 얼마나 외롭고 힘이 들었겠는가.


그녀는 일흔을 앞둔 나이까지 손에서 일을 놓지 않았다. 일 흔살이 다 돼갈 때까지 시간에 쫓겨 사느라 늦잠 한 번 편히 못 잤고, 여행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며 살아왔던 그녀는 일 흔이 다 되어서야 마음 가는 대로 한번 살아보자며 일을 내려놓았다.


'백수가 된 후 시간을 보내고 운동도 할 겸 매일 동네 뒷산을 올랐다. 똑딱이 카메라를 들고, 산에서 자그마한 꽃들을 만나는 재미가 있었다. 어느 날 고마리가 눈에 들어와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리 예쁠 수가 없었다.


한여름 뙤약볕에서 물 한 병과 자두 한 개만 먹고 꽃들이랑 7시간을 놀았다. 점심도 굶은 채 배고픈 줄도 힘든 줄도 모르고 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야생화 사랑이 시작되었다'


일흔이 다 되어 그녀는 비로소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야생화를 찍으며 사진동호회에 가입해 본격적으로 사진 공부를 시작했고, 전국을 누비며 산과 들에 핀 꽃들과 풍경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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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다녔다. 코로나 전까지 해년마다 겨울에는 동남아에 가서 한두 달씩 살면서 그곳의 사람들과 풍경을 찍었다. 그것도 배낭여행을 하면서 말이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스위스, 오스트리아,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을 다니며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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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나의 노후는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녀. 뒤늦게 시작한 사진에 빠져 산 덕분에 노후 우울증도 불면증도 없다는 그녀가 말한다. '돌이켜보니 사진 찍는 생활을 하길 백번 잘했다고. 만약에 사진을 찍지 않았다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 그녀는 카메라도 나와 같이 나이를 들어 한 컷 한 컷 찍을 때마다 힘겨워하지만 아껴주며 오래 함께 하리라. 내가 먼저일지 카메라가 먼저 일 지 모르지만 남은 시간 오래 함께 하자. 사진은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든든한 친구라는 그녀는 사진 덕분에 즐겁고 행복했다'라고 한다.


더 이상 몸이 힘들어 카메라를 들 수 없는 날이 오더라도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쌓여 있는 사진들을 보며 추억을 반추하리라는 그녀의 사진 생활은 팔 십이 넘은 오늘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아직도 봄이 되면 바람꽃이랑 복수초, 동강할미꽃이 보고 싶고, 여름이면 들과 산에 어떤 꽃이 피었을지 궁금하다. 가을이면 화악산의 금강초롱이 보고 싶고 입술연지 곱게 바른 듯 우아하고 아름다운 꽃 물매화 소식도 궁금하다. 야생화 사랑이 이십 년이나 흘렀는데 계절마다 기다려지고 맘이 설렌다. 해마다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고 새롭게 예쁘다'는 그녀.


팔순이 되어 한 땀 한 땀 만들어 낸 이 책뿐만 아니라 구순의 되어서도 그녀가 찍고 써 내려간 기록들을 보고 싶다.


'새울의 정원' 이 책은 소장용으로 출간한 것이라 서점에서 구입할 수는 없지만 이 귀한 책을 나는 기억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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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멋진 인생, 본이 되는 삶을 알리고 싶었다. 마흔 중반에 남편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후 딸 셋을 각자 제 몫을 다하는 사회인으로 성장을 시킨 그녀. 딸들이 직장인으로 성장해가는 모습과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제는 내 마음대로 살아보자며 자신의 길을 시작한 경숙씨.


"엄마가 본인이 좋아하시는 일이 있으시니 자식들을 하나도 힘들게 하지 않으세요. 이번에도 이 책을 쓰시고 다듬고 정리하시느라 정신없이 보내셨어요"라고 후배는 말했다.


온전히 주체적으로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아름다운 노년.


팔 십 대 꽃 청춘, 경숙 씨를 나는 오늘도 내일도 응원한다. 그녀의 모습을 통해 앞으로 살아갈 내 모습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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