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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어려운 승리는

자신을 이기는 것이다.

by 담서제미

몸이 편하면 마음도 편할 줄 알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늘 하던 대로 눈 마사지를 하고 기지개를 켠다.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감기 기운이 있어, 그렇게 시작하던 습관을 며칠 멈췄다. 처음에는 침대에서 꼼지락대며 누워있는 것이 편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불편했다.


'2025년이 시작된 지 얼마나 지났다고. 너 자신에게 솔직해져 봐. 지금 감기 증세가 너의 루틴을 무너뜨릴 만큼 힘들어" 스스로 질문을 던졌다. 그건 아니었다. 그 순간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 "가장 어려운 승리는 자기 자신을 이기는 것이다" 이 말이 나에게 날카로운 질문처럼 다가왔다.


자신을 이긴다는 것은 힘들고 싫은 것을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나태함과 유혹을 넘어서 스스로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힘이다. 한 며칠 몸이 편한 것을 선택했지만 마음의 균형은 무너지고 있었다.


퇴직 후 하루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꿈꾸던 대로 거실 내 자리에 앉아 글을 쓰고 책을 읽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퇴직하고 뭐해"라고 물어보면 "매일 거실로 출근해"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2024년을 보냈다. 2025년 새해 인사를 나누던 중, 지인이 "평생 출근했으면 됐지, 퇴직해서까지 출근이라는 단어를 또 쓰고 싶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강하게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출근'이라는 단어 속에 들어 있는 책임과 의무, 속박, 하기 싫어도 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떠올랐다. 내가 하고 싶어서 즐겁고 행복하게 누리고 있는 하루를 출근이라는 단어 속에 가둬놓고 있었다. 지인을 만나고 온 이후 나는 '출근' 대신 '놀이터'라 부르기로 했다.


놀이터라는 단어를 붙이는 순간 이 전보다 더 즐겁게 내 마음을 탐험하는 공간이 되었다. 하지만 놀이터도 나와 싸움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자리에 앉는 것. 소파의 편안함, 수시로 울리는 핸드폰 알람소리는 매일 나를 방해했다. 흐름이 깨져버리면 더 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핸드폰은 무음으로 돌리고 글 쓰는 시간, 책 읽는 시간을 정했다. 그 시간 동안에는 그것만 하기로 했다. 그 작은 싸움은 하루를 바꾸는 힘이었다.


루틴은 내가 나에게 한 약속이었다. 그것을 실천하며 하루를 여는 것은 내 삶의 방향을 잡아주는 나침반과 같았다. 그것이 무너지자, 방향을 잃은 배처럼 표류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이 바늘 방석에서 벌을 받는 듯했다. 몸이 편하다고 해서 마음이 편한 것이 아니었다.


감기 기운은 여전하지만, 예전처럼 몸을 움직였다. 침대에서 벗어나기 싫은 나를 뒤로하고 '놀이터'로 나왔다. 짧고도 치열한 싸움이었다.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열자, 마음 한구석에서 작은 승리의 환호성이 터졌다.


중국 고전 손자병법에는 "자기를 다스릴 수 있는 사람만이 세상을 다스릴 수 있다"고 했다. 나를 다스리는 것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승리가 아닐까? 매일 아침 스트레칭, 글쓰기, 독서, 산책. 이 작은 행동들은 내 삶의 중심을 잡아주는 방향키이자 흔들리는 마음을 안정시키는 나만의 의식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밤 9시 취침, 새벽 4시 일어나서 글쓰기, 아침 식사, 오후 달리기, 수영, 번역, 개인 시간 활용하기를 30년 가까이 지키고 있다. 그에 비하면 내 루틴은 이제 시작이다. 그럼에도 이리 엄살을 부리고 있으니.


삶에서 크고 작은 싸움은 매일 반복된다. 인간관계에서, 환경에서. 그중 가장 어려운 싸움은 언제나 나 자신과 싸움이다. 나태함, 두려움,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 그 싸움에서 이길 때 비로소 나는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몸과 마음은 서로의 거울이다. 몸이 움직일 때 마음은 가벼워지고 마음이 단단해질 때 삶은 한층 더 빛난다.나는 오늘도 내가 만들어 놓은 놀이터에서 조금 더 나은 나를 만나기 위해 발을 내디딘다. 나에게 가장 큰 선물이자 내가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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