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꼬막 전과 막걸리 두병
나이 들수록 가까운 기억은 멀어지고 먼 기억은 가까워진다고 한다. 친정엄마는 무엇을 하시든 손이 크셨다. 음식 하나를 하시더라도 넉넉하고 푸짐하게 하셔서 이웃과 나눠드셨다. 어릴 적 설날에만 맛볼 수 있었던 음식들이 몇 가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꼬막이었다.
엄마는 설 날이면 항상 꼬막 한 망을 사셨다. 그것을 대야에 담아, 살얼음이 있는 수돗가에 쪼그리고 앉아 맨손으로 씻으셨다. 해감이 되고 깨끗해진 꼬막은 펄펄 끓고 있는 커다랗고 긴 양은솥으로 들어갔다. 몇 차례 국자로 조리돌림을 하면 꼬막의 입이 조금씩 벌어졌다. "꼬막은 따뜻했을 때 먹어야 제 맛이 나야" 라며 양판 가득 퍼서 상 위에 올려놓으셨다. 우리는 그 상을 방 한가운데로 가져가 동그랗게 둘러앉아 까먹었다.
며칠 전부터 계속 머릿속에서 꼬막이 맴돌았다. 처음부터 꼬막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다. 비릿했다. 씹으면 짠맛이 입안 가득 퍼져서 맛이 없었다. 이십 대까지는 일부러 찾아서 먹는 음식은 아니었다.
그 꼬막이 이제는 겨울이 되면 반드시 먹어야 하는 음식이 되었다. 추억의 한 페이지를 열어주는 마법 같은 존재가 되었다. 꼬막을 한 입 베어 물면 그것을 처음 맛보았던 순간, 그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아버지, 엄마, 남동생, 여동생이 있었던 공간 속으로 나를 데려다주었다.
꼬막을 먹어야 했다. 꼭, 반드시. 당장 먹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은 그런 마음이 발동한 날. 그런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리라. 그것이 어떤 느낌인지.
바둑을 두다 말고 소파에 대자로 누워있는 남편에게 말했다.
"나 꼬막이 먹고 싶어"
"그래, 사러 갔다 오자"
남편은 꼬막을 먹고 싶다는 내 말에 두말하지 않고 따라나섰다.
꼬막 2킬로, 피꼬막 1킬로를 샀다. 1킬로에 1만 원씩. 예순이 넘어도 꼬막을 삶을 줄 모르는 나는 꼬막 삶는 법 검색을 한다. 알려준 대로 따라서 꼬막을 삶는다. 피꼬막은 시간 조절에 실패, 질기다. 씹어도 씹어도 입안에서 사라지질 않는다.
에라, 모르겠다. 이럴 때는 잘게 썰어 전을 부치자. 부침가루를 사러 간 김에 무등산 막걸리 두 병도 산다.
전에는 막걸리지. 아무렴 그렇고말고. 부침가루와 막걸리 두 병을 사들고 오는 길 발걸음이 조르바 댄스다.
삶은 꼬막을 접시에 담아 식탁 위에 올린다. 도구를 이용할 줄 아는 공대 출신 남편은 수저로, 마음 흘러가는 대로 살고 있는 나는 맨손으로 깐다.
꼬막과 잘게 자른 피꼬막, 부추, 홍고추. 계란과 함께 부침가루를 넣고 섞는다. 노릇노릇 삶이 익어가듯 전도 익어간다.
꼬막전은 접시에, 무등산 막걸리는 대접에.
어라, 어라. 내가 전을 부치고 있는 그 틈에 남편이 막걸리 세 잔을 연거푸 마셔 버렸다. 나는 아직 한 잔도 안 마셨는데. 행여나 내 몫이 없어질까 봐 한 잔을 주르륵 목 안에 털어 넣는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대학 캠퍼스 커플이었다고 주장하는 남편은 안 뺏어 먹을 테니 천천히 마시라 한다.
막걸리가 다디달다.
꼬막전은 더 고소하다.
막걸리 세 잔을 마신 남편 얼굴에 가을 단풍이 든다.
이제부터 남은 막걸리는 내 차지다. 얼쑤.
어깨가 저절로 올라간다.
막걸리에는 창이지. 이럴 때는 춘향가 중 쑥대머리를 들어줘야 해. 한 가락 넘어갈 때마다 나는 얼씨구 지화자를, 남편은 단풍잎보다 더 붉은 얼굴로 바둑알 세상으로 들어간다.
꼬막 전과 막걸리 두병에 지난 세월이 찾아와 내 옆에서 조곤조곤 말을 건다. 부모님과 동생들, 온 가족이 방안에 빙 둘러앉아 꼬막을 까먹었던 소녀가 사라진 자리에 예순이 넘은 내가 있다. 거실 폴딩도어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을 찍는다.
그건 꼬막이 아니라 추억. 나는 그것을 삶아 마음이 담긴 그릇에 올렸다. 식탁 위에 놓인 추억과 막걸리 잔 앞에 내가 앉아 있다. 지난 세월 그 소녀는 사라졌지만 그 안에 남은 이야기는 여전히 살아 숨 쉰다.
어린 시절, 꼬막 속에 담긴 풍경은 나를 만든 거름이었다. 음식에 담긴 사랑과 정성이 내 기억 속에 남아 뿌리를 내리고 오늘의 내가 되었다.
과거의 기억은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수시로 나타나 글이 되었다. 내 안에서 꼬막처럼 삶아진 글들이 둥지를 틀어 오늘은 살게 한다.
남편과 함께 삶은 꼬막에 막걸리 잔을 주고받은 오늘 이 시간도, 먼 훗날 어린 시절 엄마가 삶아주신 꼬막 속 기억처럼 되살아 나 또 다른 글로 살아날지도 모를 일이다.
세 번째 스무 살, 나는 오늘도 추억 속 꼬막을 소환해 무등산 막걸리와 춘향가 중 쑥대머리에 얼씨구, 지화자를 한다. 오늘을 산다는 건 이처럼 찬란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