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긴 사람이 살아남는다는 말은 진리다.
드디어 올해 해금 첫 수업이 있었다. 작년에는 손 부상, 해외여행, 건강이 좋지 않아 불가피하게 수업을 빼먹는 날이 많았다. 올해는 해외여행 가는 때만 제외하고 결석을 하지 말자며 목표를 세웠다.
'그 저녁부터 새벽이 오기까지' 해금 소리에 반해 퇴직과 동시에 시작한 국악원 해금 수업. 작년 3월에 나랑 같이 시작한 동기는 여섯 명이었다. 여섯 명이 한마을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초보자들의 엉성한 연주와 웃음소리로 가득했던 교실. 나이도, 배경도, 시작한 이유도 각기 달랐지만 모두가 해금을 배우겠다는 열정 하나로 뭉쳤다.
동기들은 첫날 수업이 끝나자마자 악기점에 가서 해금을 대여하며 열의를 불태웠다. "우리 끝까지 해 보게요"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며 응원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 둘 이탈자가 생기기 시작했다.
"갑자기 일이 생겨서 할 수가 없어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올게요" 처음 그만둔 동기는 이 말을 남기고 떠났다. "너무 어려워요." "해도 해도 실력이 늘지 않으니 재미가 없어요" "너무 바빠요"를 비롯한 다양한 이유로 나머지도 떠나고 이제 나를 포함 2명이 남았다.
악보를 보고 활을 움직여 한 음을 정확히 내기 위해서는 몇십 번, 몇 백 번을 반복 연습해야 한다. 하지만 그 정도로 연습을 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노력은 저만치 놔두고 '왜 이리 잘 안되지'라며 포기할 생각부터 했다. 하지만 나는 그만큼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잘할 때까지 하려고 했다.
해금을 배우며 깨달았다.
인생에서도 끝까지 남는 사람이 결국 길을 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많은 이들이 새로운 일을 시작하지만, 끝까지 남아 있는 이는 극히 적다. 진짜 성취는 그 끈기와 집념 속에서만 얻을 수 있다.
이제 수업에 남은 동기는 두 명뿐이다.
2025년 첫 수업에서 만난 우리는 "나이가 들어 악기를 들 수 없을 때까지 꼭 같이 하자"라며 손을 맞잡았다. 갈 길은 아직 멀지만 우리는 나아가고 있다. 그 길 위에서 배운 것은 악기 연주법만이 아니었다. 끈기는 삶의 근육과도 같다는 사실과 그 길을 걷는 동안 얻게 되는 모든 경험들이 결국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새해 첫 수업 시간. 기존 멤버들과 신입생들로 강의실은 오랜만에 꽉 찼다.
신규 회원들은 우리가 작년에 배웠던 악기 구성, 활 잡는 법, 소리 내는 법을 배웠다.
기존 멤버인 우리는 '진도아리랑' '경기 아리랑; '백만 송이 장미'를 강사를 따라 하며 각자 연습했다. 연습을 하는 동안 이쪽저쪽에서 끼깅, 깽깽. 그것은 화음이 아니라 소음이었다. 서로 다른 음들이 강의실 공중에 부딪쳐 묘한 울림을 만들고 있었다. 연습이 끝나고 합주를 하는 시간. '와, ' 우리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들을 만했다.
https://youtu.be/aEeDzANVo-4?si=a3x66zGBMLqLk7bS
작년 첫 수업을 생각하면 이것은 장족의 발전이었다. 도중에 포기했더라면 어떻게 '아리랑 연곡'과 '백만 송이 장미'를 합주할 수 있었겠는가? 합주를 끝낸 우리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수업을 시작했을 땐 누구나 같은 출발선에 서 있었지만, 끝까지 남는 일은 쉽지 않다. 처음에는 다들 열정과 기대감으로 가득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열정이 점차 희미해진다. 인내와 꾸준함이 필요한 순간이 찾아온다. 특히 배우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난관이 반드시 등장한다.
해금을 배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을 때, 반복 연습에도 원하는 음이 나오지 않을 때, 나는 왜 이리 재능이 없을까 등등 여러 생각들이 머릿속에 집을 짓기도 한다. 바로 그 답답함을 견디는 것이야말로 진짜 도전이다.
해금을 배우는 과정에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끈기와 집념이 얼마나 중요한 지였다. 그것은 해금을 넘어 어떤 삶에도 적용이 되는 것이었다. 그 길에서 끝까지 남는 사람만이 진정한 성취를 얻는다. 끈기는 포기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내는 과정이다. 그것은 "나는 할 수 있다"라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내 손끝에서 울려 퍼지는 해금의 소리는 완벽하지 않지만, 한 음 한 음이 쌓여 내가 갈 길을 만들고 있다. 끝까지 남은 사람만이 진정으로 길을 걷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오늘도 나는 활을 당긴다.
질긴 사람이 살아남는다는 말은 진리다. 무엇을 하든 질기게 끝까지 가다 보면 실력은 덤으로 오게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