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를 두려워하지 않은 세대
정년퇴직 후 일 년이 지났다. 직장 생활했던 그 시절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아스라하다. 내가 직장 생활을 어떻게 했지. 다시 돌아가서 하라고 하면 에이, 난 못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그만큼 퇴직 후 삶에 적응이 되었다는 거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보면서 사는 삶. 일 년 동안 온전히 나를 위한 삶을 살면서 만난 사람들이 있다. 문화센터, 문화원, 공연장, 여행지 등 어딜 가나 자리를 잡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대다수가 60년생이라는 거다.
60년생. 1960년대에 태어난 우리는 우리나라 현대사를 관통하며 격동의 사회와 정치적 변화를 몸소 겪은 세대이다.
유년기인 1960년대는 4.19혁명과 5.16 군사정변이 일어난 혼란기에 있었고, 196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경제개발과 5개년 계획은 산업화의 태동이 되었다. 농사를 짓던 터전을 버리고 자식 교육을 위해서 혹은 먹고살기 위해서 부모들은 공장이 있는 도시로 이사를 했다.
내 부모님도 그랬다.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 할아버지, 할머니와 삼촌, 고모, 사촌들까지 4대가 살던 곳을 떠나 내가 4살 때 도시로 이사를 왔다.
청년기인 1970년과 80년대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청년기를 맞이한 시기였다. 인생에서 가장 뜨겁고 치열했던. 유신 체제와 독재에 대한 저항이 심했고 온몸으로 민주주의를 외치던 세대였다.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대학가에는 최루탄 냄새가 끊이지 않았다. 거리에는 독재 정권에 저항하는 목소리가 연일 울려 퍼졌다.
중년기인 30대 후반에서 40대를 지나며 맞이한 1990년대와 2000년대는 또 다른 사회적, 경제적 변화에 직면했다. 1997년 외환위기는 60년생에게는 큰 시련이었다.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칼날 위에 서 있기도 했다. 실직과 재취업의 어려움을 겪으며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다.
IMF 이후 사회는 빠르게 변했다. 인터넷과 IT 기술이 등장하면서 삶의 패턴이 바뀌었다. 글로벌화된 세상, 디지털 문화를 이해하고 적응해야 하는 도전은 60년 생들에게는 또 다른 파도처럼 다가왔다. 그들은 그 파도를 이겨냈다.
이제 60년생은 은퇴기에 접어들었다. 이미 정년을 한 사람도 있고 여전히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이도 있다. 이제 그들은 노년기로 진입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노년의 삶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새로운 역할을 찾아가고 있다.
격동의 현대사를 겪으며 성장한 60년생은 산업화, 민주화, 세계화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자신들의 삶을 만들어 왔다. 이들은 파도를 두려워하지 않고 헤쳐나간 세대이다. 앞으로도 새로운 파도를 마주하며 살아갈 것이다. 60년생의 이야기는 곧 한국 현대사의 이야기이며 그 안에는 역경을 이겨낸 의지와 변화를 수용한 지혜가 담겨 있다.
1964년생인 나는 나를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파도가 거세게 몰아치는 바다 앞에 서면 두려움이 밀려온다. 사람들은 그런 바다를 두려워한다. 60년생으로 태어난 나는 파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것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나를 일으켜 세운 본질이었다.
60년생은 흔히 '베이비부머 세대'라 불린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송미령 균형발전연구단장의 글에 따르면 광의의 베이비부머는 1세대가 1955년~1964년생, 2세대가 1968년~1974년생이다. 1세대는 대체로 농촌 출신으로 소 팔고 논 팔아 보다 나은 교육 기회와 보다 나은 직업 기회를 얻기 위해 도시로 이주를 한 부모님을 둔 세대가 대부분이다. 나는 여기에 속한다.
이들은 시대의 거친 물살 속에서 스스로 길을 찾고, 미래를 개척한 세대다. 유년 시절에는 가난과 결핍을 겪었고, 청년 시절에는 고도성장의 열기 속에서 쉼 없이 달렸다.
부모 세대의 희생을 목격하며 책임을 배웠고, 자식 세대의 변화 속에서 적응과 타협을 익혔다. 그 세대인 60년생. 지금 우리는 새로운 파도 앞에 서 있다. 은퇴 후의 삶, 나이 들어가는 육체, 빠르게 변하는 기술과 문화. 하지만 60년생은 이 모든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파도 위에 서서, 그 너머 풍경을 기대한다.
세 번째 스무 살, 인생의 시작
청춘을 지나고 중년을 넘어선 우리는 이제 세 번째 스무 살을 맞이하고 있다. 젊은 날에는 성공과 생계를 위해 달렸고, 중년에는 가족과 사회를 위해 헌신했다. 이제는 다르다. 우리는 이제 나를 위해 달린다. 스스로 삶을 온전히 탐구할 자유와 시간을 얻었다.
어떤 이는 새로운 취미를 시작하고, 어떤 이는 여행을 떠난다. 또 어떤 이는 글을 쓴다. 나는 글을 쓰는 64년생이다. 글을 쓰며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고 앞으로 다가올 날들을 상상한다. 내 이야기를 통해 세상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
나이가 드는 것은 무거움이 아니라 가벼움이다. 젊은 날에는 짊어져야 할 책임이 많았다. 부모 역할, 자식 역할, 사회적인 책무가 수시로 발목을 잡았다. 나이가 들수록 책임의 무게는 점점 가벼워진다. 나를 옥죄던 수많은 사회적 규범과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나는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이 들수록 육체는 쇠약해질지 몰라도, 마음은 더 자유로워진다.
이제 나는 세상을 가볍게 바라본다. 눈앞에 보이는 작은 일상 속에서 의미를 찾고, 과거에는 지나쳤던 것들에 귀 기울인다.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이슬, 겨울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꽃봉오리를 머금은 제라늄,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미소, 이 모든 것이 나를 살아가게 한다.
60년생이 온다. 이제 60년생은 세상을 향해 새로운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우리는 한 세기를 관통하며 변화와 성장을 경험한 세대다. 과거를 살아낸 우리의 이야기는 오늘의 세대에게 지혜가 되고, 미래를 살아갈 이들에게 용기가 된다. 나는 말한다.
"파도를 두려워하지 마라. 나이가 들어도,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 삶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과정일 뿐이다."
우리가 다시 세상에 나서는 이유는 복잡하지 않다. 60년생이 걸어온 길, 앞으로 나아갈 길이 이 시대에 필요한 이야기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파도를 기다린다. 내가 걸어온 길에 쌓인 28년간의 기록을 쓰며, 앞으로 올 파도를 타기 위해 준비한다. 60년생은 여전히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파도를 즐기고, 또 다른 풍경을 만들며.
60년생이 온다. 우리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