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와 만화책
내 어린 날 추억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것은 라디오과 만화책이었다. 우리 집 안 방 문 바로 옆 구석자리에는 항상 라디오가 있었다. 흑백텔레비전을 사기 전까지 라디오는 친구였다. 거기서 흘러나오는 뉴스와 음악, 드라마는 또 다른 세계였다. TV가 귀하던 시절, 라디오는 세상과 소통하는 창문이자 유일한 통로였다.
라디오를 듣고 있으면 심심할 틈이 없었다. 스피커에서 들리는 진행자의 목소리는 내 상상력을 자극했다. 라디오에서 나는 처음으로 베토벤과 모차르트, 쇼팽을 알게 되었다. ABBA의 Dancing Quun, Eagies의 Hotel California, 비틀스, 존 레넌, 퀸 음악을 라디오에서 들었다.
라디오에서 들리는 모든 것들이 머릿속에서 장면이 되어 펼쳐졌다. 숨소리, 물이 흘러내리는 소리, 파도 소리, 새가 하늘을 나는 그 모든 것들이 라디오에서 내 머릿속 상상으로 넘어왔다. 마치 내가 그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된 듯 빠져들었다. 라디오에서 드라마 시간이 되면 온 가족이 그 소리에 집중했다. 여름에는 방바닥에 누워, 겨울이면 솜이불을 둘러쓰고 누워 귀를 쫑긋 세웠다. 주인공이 위기에 빠지면 ‘오메, 어쩌거나’ ‘안돼, 안돼’를 외쳤고 해피엔딩이면 ‘야호’ 환호했다. 라디오는 그냥 소리가 아니었다. 우리의 감정을 움직이며, 세상을 꿈꾸게 하는 마법 같은 존재였다.
그 시절, 또 하나의 추억은 만화책과 잡지였다. 김청기의 로봇 태권Ⅴ, 신동헌의 마루치 아라치, 신문수의 꺼벙이, 김형배의 도전자 허리케인, 김수정의 아기공룡 둘리,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은 물론 소년중앙, 어깨동무, 보물섬은 요즘 말로 하자면 하나의 트렌드였다. 누군가가 빌려온 만화책을 돌려가면서 읽었다.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인기가 높았다. 특히, ‘태권브이’ 인기는 선풍적이었다. 만화 속 주인공이 악당을 물리치고, 세상을 구하는 장면은 상상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흙먼지가 풀풀 이는 골목에서 나무 막대를 들고 영웅 놀이를 했다. 로봇 장난감이 최고의 선물이기도 했다. 태권브이는 내 영웅이었다. 만화 속 주인공들은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었다., 나도 언젠가 저런 멋진 사람이 되리라 꿈꾸게 했다.
특히 중학교 때 텔레비전에 나왔던 ‘내 이름은 캔디’는 내 또래 소녀들 가슴에 테리우스 열풍을 앓게 했다. 중학교 3학년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내 이름은 캔디’를 보려고 학교 담을 넘다 들킨 적도 있었다. 반 부실장이자 담임의 총애를 받았던 나를 친구들이 꼬드겼다. 나랑 같이 학교 담을 넘으면 덜 혼날 거라며. 물론 친구들의 꼬드김도 있었지만 그 보다 테리우스를 보고 싶은 마음이 우선이었다. 테리우스를 볼 수 있다면 벌 받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담을 넘다 들킨 우리는 교실 뒤에서 손을 들고 벌을 서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깔깔거렸다. 우리에게는 테리우스가 있었으니까. 학교에서 선생님 몰래 만화책을 돌아가면서 보는 재미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테리우스는 우리의 우상이었다. 세상에 모든 남자들이 테리우스처럼 멋진 줄 알았던 시절. 부모님과 선생님은 “만화책만 보지 말고 공부도 좀 해라” 하셨지만, 나는 그 안에서 세상을 배우고 있었다.
라디오와 만화책에 빠져 살았던 그때 그 시절. 라디오를 들으며 머릿속에서 상상을 했다. 만화책을 읽으며 나만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었다.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그 시절, 그 속에서 나는 어디든 갈 수 있었고,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이제는 손끝 하나로 모든 정보를 찾아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지배하는 시대. AI가 명령어만 내리면 원하는 정보를 찾아주는 시대. 삶은 그만큼 편리해졌지만 내 근원은 그 시절 라디오가 들려주던 상상의 세계, 만화책 한 권에 빠져들었던 그 시간들 속에 있다. 눈으로 직접 볼 수 없었기에 더 생생했던 이야기들, 그 속에서 우리는 꿈을 꾸었고, 나 만의 세계를 만들어갔다. 유년을 텔레비전이 흔치 않던 때를 보냈지만, 귀로 듣고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법을 배웠다. 만화책 한 장 한 장을 넘기며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즐거움을 알았다. 어쩌면 그때의 경험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아닐까.
지금도 나는 눈을 뜨면 라디오를 켠다. 영상보다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음성이 귀에 더 쏙쏙 들어온다. 가끔 라디오에서 옛 노래가 흘러나오면, 그 시절이 떠오른다. 라디오에 청취자 전화연결 시간이 되면 전화기 앞에 앉아 다이얼을 돌리던 그 시절 내가, 예순이 넘어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라디오와 만화책이 만들어 준 그 따뜻한 시간들은 여전히 소중한 추억으로 가슴 한 편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