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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고개를 들어야만 다시 보일뿐

by 담서제미

오랜 세월을 건너 나에게 온 '어린 왕자'는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났다. 그를 다시 만난 건, 보리새순이 보리밭을 파랗게 뒤덮은 들판 옆 주차장에서였다. 황금빛 머리카락과 머플러가 바람에 휘날렸다. 눈동자는 별빛처럼 반짝였다.


그는 내 자동차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건 뭐야?"

"자동차야, 도로를 달리는 거지."


나는 이것이 내 자동차라고, 도로를 달리는 거라고, 이걸 타면 어디든 갈 수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아이는 별 흥미가 없는 듯 작게 중얼거렸다.

"할머니도 하늘에서 떨어졌어"

나는 그 말에 조금 당황했다.


"그래, 나도 하늘에서 떨어졌지"

이상이던, 꿈이던, 사랑이던 날고 있던 그 무언가로부터.

내가 떨어진 곳은 어른들의 세상이었다.


그는 나를 뚫어질 듯 바라보더니 다시 말했다.

"그럼 어느 별이야. 어디에서 왔어?"

순간,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질문은 깊었다.


어른이 된 후,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잊고 살았다.

그저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일어나고, 일하러 가고, 버티고 다시 잠드는 일상 속에 내 별은 없었다. 잊고 산지 오래였다.


어릴 때는 나에게도 별이 있었다.

상상 속에서 수천 개의 별들이 집을 지었다.

그 많은 별들이 어른이 되면서 하나 둘 사라져 버렸다.

언젠가부터는 '없어도 사는 것'이 되었다.


내가 말이 없자, 그는 말했다.

"나는 아주 작은 별에서 왔어"

"네 양을 데리러 온 거니?"

아이는 내 말에 대답 대신,

"앞으로 곧장, 곧장 가면 돼."


그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지극히 맑고 투명한 눈으로.

"앞으로 곧장 가야겠어."

"어디로 간다는 거니."

그는 조용히 소삭이듯 말했다.

"어디든, 앞으로 곧장..."


나는 그 말을 듣고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

앞으로 곧장 가는 일은 어른들이 전문이었다.


왜 이 길을 가는지, 어디로 향하는지 묻지 않았다.

그저 앞만 보고

바쁘게 걸었다.

걷다 보면 '곧 도착하겠지'라고 생각했다.


어린 왕자는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앞으로 곧장 가봐야 멀리 갈 수도 없어"

그 말은 마음속에 떨어진 별똥별처럼 조용히 내 안에 부서져 내렸다.


우리는 왜, 어디로,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 걸까.

길은 곧장인데

마음은 그림자를 따라오지 못하고

몸은 바쁜데

가슴은 뛰는 걸 멈취버렸다.

그것을 인정하는 건, 이 작은 존재의 단 한마디면 충분했다.


아이는 말한다.

길의 끝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길을 어떻게 걷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달리는 것에만 익숙한 우리에게, 방향을 다시 묻는 목소리로, 길을 묻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자리'를 찾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오랫동안 창문을 열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 하나가 유난히 반짝였다.


"나, 지금 여기에 잘 있어."

마치 나에게 그가 손짓을 하고 있는 듯했다.

앞으로 곧장 걸어 별을 향해 가던 어린 왕자.


그는 내가 그려준 상자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잘됐어. 할머니가 준 이 상자 말이야. 밤이면 양의 집이 될 수도 있겠는데."


그림은 단순한 네모난 상자일 뿐이었지만, 그는 그 안에서 자고 있는 양을 보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진짜 보이는 것이 무엇인 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믿을 수 없는 세월을 살았던 나에게 보이지 않아도 믿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은 내 세상 밖 세상이었다.


"말뚝도 줄게. 낮에는 양을 매어 둘 수도 있어."

내가 말하자, 그는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매어 둔다고.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나는 말문이 막혔다.

어른이 된 이후 언제나 매어 두려 했다.

사람을, 관계를, 감정을.

상처받을까 봐, 떠날까 봐, 잃을까 봐.

늘 무언가 묶고, 붙잡고 있었다.

자유는 종종 나를 불안하게 했다.

차라리 적절한 구속이 안정처럼 여겨졌다.

어린 왕자는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진짜 사랑은 묶는 게 아니라, 돌아올 자리를 남겨두는 것임을.


"나는 아주 작은 별에서 왔어."

그는 속삭이듯 말했다.


그 말속에는 사랑도, 외로움도, 자긍심도 들어 있었다.

세상은 작아도 온 마음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한동안 잠들지 못했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아주 작고 희미한 별 하나를 찾았다.


진짜 어른이 된다는 건,

앞으로 곧장 가는 것이 아니라,

가끔 멈춰서 별이 묻는 질문에 귀 기울일 줄 아는 것임을.


'어린 왕자'는 저 멀리서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별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고개를 들어야만 다시 보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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