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기준이 아닌 어린 왕자 마음으로
"어휴, 옷차림이 저게 뭐야."
"몇 등인데."
어른들은 옷차림과 숫자로 판단을 한다.
어떤 옷을 입었는지, 몇 평에 사는지, 몇 명이 좋아요를 눌렀는지, 그것이 사람의 가치를 말해준다고 믿는다.
누군가를 소개할 때 으레 껏 따르는 질문이 있다.
"직업은요?"
"학력은요?"
"나이는 몇 살이에요?"
도무지 중요한 건 물어보지 않는다.
"지금 어떠세요. 행복하세요?"
"하늘에 별을 올려다본 적이 있으세요?"
이런 질문을 하면 현실감이 부족해라고 말한다.
그럴싸한 옷차림과 수치를 들이밀기 전에는 좀처럼 믿지 않는다.
튀르키예 천문학자가 그 별을 처음 발견했을 때 그는 터번을 쓰고 전통복장을 입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B612라는 별이 있어요. 제가 망원경으로 발견했지요"
사람들은 아무도 믿지 않았다.
"옷차림새가 그게 뭐야. 차림새부터 신뢰가 안 가잖아."
몇 해가 지나 그는 다시 나타났다. 깔끔한 양복에 넥타이까지 맸다. 그래프와 수치를 나열하며 말했다.
"이 별은 직경이 이렇게 되고, 관측 좌표는 여기입니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 별이 진짜로 있군요."
그건 내가 살아온 세상이기도 했다. 낯설지 않은 세상. 우리가 사는 풍경과 너무 닮아 있었다.
말이 진실이 되기 위해 '정장'을 입어야 했다. '논리'를 가져야 하며, '수치'로 정리되어야 했다. 나도 그런 사람이었다. 관계도, 시간도, 기억도 무게와 가치로 환산해야 안심이 되었다.
언제부턴가 무엇이든 계산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슬픔조차도 '이 정도쯤은 감당할 만해'라며 크기를 재곤 했다. 내 마음속 별 하나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은 건 오랜 세월이 지난 후였다.
"진짜 증명은 마음에서 시작되더라고요."
세상이 원하는 건 언제나 근거와 수치, 차림새와 그럴듯한 언어였다. 하지만 어떤 별은 이름이 없어도 오직 '사랑'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존재할 수가 있었다. 설명할 수도 없고, 보여줄 수도 없고, 기록으로 남길 수도 없는 것이었지만 어린 시절, 그 별은 나를 웃게도 울게도 했다.
그때는 몰랐다.
어린 왕자가 떠나온 소혹성 B612처럼 세상에는 이름이 없어도 충분히 빛나는 것들이 있다는 걸.
길을 걷다 만난 '어린 왕자'는 내게 말했다.
"내 별은 자주 작아. 우리가 살아가며 놓치는 것은 너무 작아서가 아니라, 너무 깊어서인지도 몰라"
눈에 보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눈으로만 보려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우리는 종종 진짜 증명은 옷차람이나 숫자가 아니라, 마음을 들여다보는 눈에서 시작된다는 걸 잊고 산다.
나는 별 하나를 떠올렸다. 이름도 없는 별 하나가 내 안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그것은 분명히 살아 있었다.
그동안 물을 주지 않아 시들었고 때로는 외면당했으나 내 안 어딘가에서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그 별에게 편지를 쓴다.
<너는 내게 세상의 모든 숫자보다 소중한 존재였어.
누가 보지 않아도, 누구도 이해하지 못해도, 나는 너를 사랑했고,
너로 인해 조금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
예순이 넘어서야 비로소 깨달았어.
사랑은 증명하지 않다도 된다는 걸.
존재는 말하지 않아도 느껴진다는 걸.
이제 나는, 너를 다시 기억하기로 했어.
이름은 없어도 영원히 내 마음에 남을 너를.>
오늘 밤, 창밖에 별 하나가 떴다. 아무도 그 별 이름을 묻지 않는다. 그 별이 왜 특별한 지도, 하지만 나는 안다. 누군가에게 해지는 풍경이 되고, 장미가 된다는 것을.
나는 오늘 그림물감 한 갑과 연필 몇 자루를 샀다. '어린 왕자'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숫자로 설명되지 않는 내 별을 기억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