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가 사이코패스가 될까 봐 두렵다

나는 왜 이리 나약한 사람일까

by 끼리끼리

"엄마. 일어나~ 밖에 나가자"

안방에서 자고 있는데 나를 깨우는 첫째.

무서워서 거실로 같이 나가자고 한다.


오전 6시 20분.

어제 일찍 잠을 잔 덕분에 오전 6시에도 개운하게 일어났다.

추운 날씨에 나는 거실 보일러를 켜고, 잠에서 덜 깼는지 첫째는 이불을 가지고 나와 거실 소파에서 잠을 좀 더 잤다.


오전 7시 10분.

둘째가 잠에서 깼다.

"방에 아무도 없어서 너무 무서웠어"

누나가 일찍 일어나서 그렇다고 둘째를 하염없이 달래주다가 아침 식사를 준비를 했다.

8시 20분에 등교를 해야 해서 딱 알맞은 시간에 아이들이 일어나 기분 좋은 하루 시작이다.


오늘은 아침밥은 계란프라이. 소고기 구이. 사골국. 김치구이. 흰밥.

내가 아침을 준비하는 동안 아이들은 패드 학습지를 하고 있다.

밥 말아서 묵묵하고 조용하게 맛있는 먹는 첫째와

조잘조잘 이것저것 하자고 떠들면서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둘째

내 뱃속에서 낳았지만 너무 다르다.


시간도 여유 있어 스스로 하던 옷 입기. 씻기를 오늘 해주고 싶었다.

밥 다 먹은 첫째부터 옷 입기. 세수하기. 양치하기. 머리 묶기 끝.

둘째 옷 입기. 세수하기. 양치하기. 머리에 물 묻혀서 까치머리 정리하고 말려주기.


오전 8시 10분

출발 10분 전.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겉옷까지 입혀주고 등원만 시키면 나는 자유다.

이 자유 시간은 나에게 얼마나 꿀 같은 시간인지


오전 8시 18분

겉옷을 입히고 신발을 신겼다.

엘리베이터 도착 10초 전. (나의 자유시간 10초 전)

"엄마. 내가 그린 우주선 그림 왜 버렸어?"

둘째가 갑자기 자기가 그렸던 우주선 그림을 왜 버렸냐고 한다. 우주선 그림? 그게 뭔지 모르지만 나는 아이들이 만든 예쁜 쓰레기를 자주 버린다. 그렇지만 우주선 그림은 기억이 안 난다. 아이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 등교 10초 전이단 말이다.

"엄마가 찾아 놓을게. 우선 가자~"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등원. 등교. 출근으로 많은 사람이 타고 있었다.

첫째는 빨리오라고 소리를 지르고 엘리베이터 사람들은 고개를 빼꼼 쳐다보고 있었다

"왜 버렸어. 왜 버렸어. 왜 버렸어"

나는 이걸 안다. 떼. 고집.

우선 첫째와 엘리베이터를 보내고 둘째에게 물어보았다.

나의 자유시간은 우선 날아갔다.

두 달 전에 그렸던 우주선 그림을 이제야 찾는 거다.

이건 의견이 아니라 떼라는 걸 느꼈다.


나는 이런 떼가 너무 싫다.

아이는 이런 상황을 받아줄 줄 알고 전전긍긍하는 내 모습을 즐기고 있는 것이라도 생각했다.

화가 너무 났다.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기에 참았던 감정이 폭파했다.

"왜 엄마를 괴롭혀? 내가 먹여줘 옷 입혀줘. 씻겨줘 다해줬잖아!!"

소리를 지르고 몇 번이나 말을 반복하며 아이를 다 그쳤다.

"너 혼자 살아. 내가 그렇게 싫으면!"

아이가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닐 텐데 나는 극으로 간다.

아이를 극으로 다그치고 나는 다그쳐도 화가 계속 났다.

아이는 닭똥 같은 눈물을 조금 흘린다.

조금 진정을 하는 나는 아이를 다시 데려다준다.

"부지런히 따라와. 안 따라오면 더 혼날 줄 알아"


아이를 데려다주면서도 화가 계속 났다.

아이를 데려다주고 나니 화가 풀렸다.

그러면서 반성 모드가 시작된다.

내가 이렇게 사이코패스 같은데

우리 아이가 나를 닮아 사이코 패스로 클까 봐 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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