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목적

by 나무

“형은 뭐를 위해서 살아?”라는 질문을 받고 나는 5분 가까이 생각에 빠졌다. 나의 답을 정안이는 기다려 주었고 끝내 나는 “아름다움”이라고 짧은 답을 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때문에. 아름다움이 존재하기 때문에. 아름답기 때문에.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짧은 산책을 떠나 말없이 추운 날씨 속 발을 맞추어 걷는 행위. 일이 늦게 끝난 동기들과 후임들을 위해 치킨을 포장해서 일어나길 기다리는 마음. 한 번도 이야기를 해보거나 마주쳐 보지 못한 사람이 차려준 밥상 앞에 앉아 침이 고이는 순간. 아름다움은 우리의 일상 속 시작과 끝이 불분명하다.


오랜 시간 동안 ‘멋’이라는 장르에 몸을 깊게 담갔다. 인간이라는 개인의 상태에 있어서 어떤 행동이 멋있고 어떤 생각이 멋있는 사람을 만드는지 고민을 많이 했다. 끝나 나는 외적인 부분을 떠나서 ‘멋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종종 듣곤 한다. 하지만 가끔 나는 내 자신을 내가 속이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그저 멋있는 ‘척’을 하는 사람. 연기를 잘하는 사람일 수도 있지 않을까? 타인한테서 느끼는 인정에서 시작해 원을 그려 다시 자기 자신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한다. ‘멋’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고민을 하지만 ‘멋’이 존재하는 삶을 위해서 살지는 않는다.


‘멋’에서 아름다움으로. 나 자신이라는 목적지에서 다시 버스를 탑승해 다음 목적지로 향한다. 최종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 많은 경유 정류장이 존재한다. 버스가 속도를 중이고 문이 열릴 때마다 사람들은 하나 둘 버스에 탑승을 하고 자신의 개성이 남긴 카드를 전자 시스템에 입을 맞춘다. 더 이상 나는 혼자가 아니다. 아무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이인 좌석은 빠르게 이방인으로 채워졌고 점점 공기는 산소보다 탄소의 배율이 높아진다.


혼자라고 생각했던 여정 속 정체모를 타인을 만나 대화 없는 관계를 맺고 맑은 공기를 추구했지만 결국 창문을 연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아름다움은 나와 다른 사람의 관계 속 피어나는 꽃이다. 거름을 추가해 완벽한 환경 속 자라는 아름다움이 피어난다. 하지만 생명의 ‘생’이 상상되지 않는 사막의 한가운데에서도 아름다움은 피어난다.


“불행 속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을 위해서 삶을 산다고 나는 말했다. 하지만 나는 매 순간이 즐겁거나 행복하지 않다. 감정의 기복은 상황에 따라서 차이를 만들고 나는 인간이다. 불행한 순간 속 나는 미소를 짓지 않는다. 사이코 패스가 아니다. 하지만 그 불행은 시간이 지나 미화의 단계를 넘어 꽃의 거름이 되어준다. 아름다움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시간여행을 주도한다.


내일 다시 나한테 ‘삶의 목적’에 대해서 질문을 한다면 나의 답은 다를 것이라 믿는다. 내일 나의 삶의 이유를 찾기 위해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아름다움의 진화를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


사계절 속 나무는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