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일 Aug 07. 2024

모든 걸 알아내리라! (2)

"이것은 왜 이런 거예요?"


 재활의학과 주치의를 하면서 윗년차 선생님이나 교수님으로부터 자주 들었던 질문입니다. 어떤 말이냐 하면, 환자의 신체진찰이나 검사소견 등에서 이상이 발견되었을 때, 그에 대하여 주치의로서 진단을 내렸거나 혹은 의심을 하고 있는 원인이 특별히 있는지를 물어보시곤 했던 것입니다.


 가령, 다음과 같은 상황이 있었습니다.

 뇌졸중이 발생하여 신경과를 거쳐 재활의학과로 전과된 80대 남성 환자분이 계셨고, 우측의 시상, 해마, 그리고 대뇌각까지 광범위하게 침범된 케이스였습니다.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뇌의 우측을 침범한 경우는 좌측의 기능장애가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고(소뇌의 병변인 경우처럼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이 환자분의 경우도 좌측의 근력 저하가 관찰되었습니다. 보통 근력을 구분할 때, 아예 힘을 줄 수 없는 경우인 0등급부터, 정상과 같은 등급인 5등급까지 분류하는데요("0,1,1+,2,2+,3,4,5" 이렇게요. 분류하는 방식은 과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기도 합니다. 3 정도는 중력에 저항에서 팔다리를 들어 올릴 수 있는 수준을 말해요.), 제 환자분의 경우 좌측 어깨와 좌측 고관절에서의 근력이 3등급 정도로 평가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우측 고관절의 근력도 약간은 감소한 것처럼 판단되어 여기는 4등급이다! 하고 기록을 남겨두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제 윗년차 선생님께서 제 차트를 보시더니, 그걸 딱 짚어내시더군요. "우측 고관절... 여기는 왜 4등급으로 떨어져 있는 거예요?" 저는 그 질문에 이렇다 할 대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적어놓은 환자분의 진단명 중에는 그 현상을 의학적으로,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항목이 없었거든요.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힌트조차 찾지 않으려 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내가 좀 건방졌구나'.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우측 고관절의 근력이 4등급으로 떨어지기는 했지만, '이 정도야 그럴 수도 있겠지, 4등급이면 그렇게 많이 떨어진 것도 아니고, 나이가 나이인데 힘이 좀 빠질 수도 있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던 것이죠. 하지만 그 대신에 이렇게 생각했어야 했습니다. "어 4등급? 우측 뇌졸중으로 여기가 이상이 생기기는 힘든데... 워낙 고령이시기는 하지만 어디 통증이 있으실까? 척추협착증이나 다리 혈관 쪽 문제가 있진 않나? 수술을 받은 적이 있으시나? 노인성 근감소증을 생각해 봐야 하나? 혹시 다른 부위에 뇌경색이 추가로 발생한 것은 아닐까?,..." 이런 식으로 최대한 다른 원인들을 하나하나 짚어본 뒤에, 그래도 별다른 문제가 보이지 않으면 "신체진찰을 길게 하느라 좀 힘드실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을 그제야 해 봐도 되는 것이죠. 결과적으로 그 환자분은 추가적인 문제가 있지는 않았고, 고령으로 인해서 신체진찰 결과에 다소 변동이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후로는 환자를 볼 때 사소해 보이는 이상소견도 그냥 넘겨짚지 말자는 교훈을 얻게 되었습니다. 




 최대한 모든 것을 알아내려 노력하는 이유는, 어떠한 증상이 있을 때에, 그 원인에 따른 해결책이 다르고, 주의할 점 또한 천차만별이기 때문입니다. 보행에 이상이 생긴 환자가 있다고 생각해 본다면, 그 원인이 특정 근육의 근력저하인지, 외상성 골절인지, 아니면 뇌졸중 같은 뇌질환인지 등에 따라 접근 방법이 달라야 합니다. 모두 다 주구장창 똑같은 보행훈련만 시킬 것이 아니라 이거죠. 근력저하가 주된 문제인 경우는 당연히 근력 강화 운동 위주로 시행해야 할 것입니다. 골절 후에 회복기간에 있는 경우는 근력 강화 운동뿐만 아니라 관절 구축이 오지 않도록 꾸준한 가동성 운동을 해 주어야 하고, 뼈가 붙어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특정한 방향으로는 힘을 가하지 않으려는 주의가 추가로 필요합니다. 뇌졸중 같은 경우에는 근력저하나 경직(근육 긴장도의 상승), 또는 뇌의 조절 과정에서의 문제 모두가 보행의 이상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신체진찰 및 검사를 통해 어떤 점이 특별히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지 알고 그에 따른 접근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경직이나 구축이 심한 경우에는 재활운동뿐만 아니라 항경직약물 복용이나 보톡스 주사, 혹은 수술과 같은 조치가 추가로 필요할 수도 있겠고요. 그렇기 때문에 아까 그 80대 할아버지의 오른 다리 근력이 떨어져 보였던 것도 그냥 넘기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환자를 대하다 보니 한 환자를 볼 때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리고 환자기록이 금세 길어지고는 합니다. 병원 안에서뿐만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도, 저희 주변에는 목이 뻐근하다, 온몸이 쑤시고 결린다고 호소하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근육이 좀 뭉쳐서 그런가 보다, 잘 풀어줘야겠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 쉬운 부분인데, 만일 저희 입원환자분께서 이런 증상을 호소하신다면 저희는 그냥 넘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혹 근육이 아니라 관절의 문제는 아닌지, 근육의 문제가 맞다면 어떤 근육이 근원인지, 전신적인 통증질환이 의심되는 정황은 없는지, 호소하는 통증이나 불편감이 재활치료 과정에 영향을 주고 있지 않은지 등등을 모두 따져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증상이 하나라도 추가되면 생각해야 할 것은 수없이 많아지곤 하죠.




 제가 계속 재활의학과의 전체적인 성격에 대한 소개글을 쓰고 있는데요, 재활의학과가 단순히 통증을 다루는 과가 아니라 이토록 많은 생각을 하는 과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 두 섹션에 거쳐 이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비록 다른 과에 비해서는 응급상황도 적고 역동적인 측면은 덜한 것이 사실이지만, 한 환자를 보더라도 충분한 고민을 거쳐 최대한 필요한 치료를 제공하려 노력하는 것이 저는 정말 좋았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꼭 의학이 아니더라도 다른 분야에서, 그리고 모든 일상생활에서 빠르게 보다는 정확하고 신중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그런 자연의 섭리에도 합당에 보인달까요.

  지금까지는 재활의학과 의사들이 환자를 처음 만날 때, 그리고 이후의 치료과정에 있어서도, 마치 탐정처럼, 모든 걸 조사하고 사소한 변화도 그냥 넘기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강조하여 말씀드렸습니다. 다음에 말씀드리려 생각하는 것은 '목표 세우기'인데요, 이걸 잘해야 한다는 것은 정말 거의 1년 내내 느꼈던 것 같아 강조하고 싶었던 점입니다. 긴 글 읽어주고 계셔서 감사드리고, 다음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모든 걸 알아내리라!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