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1년차로서의 주된 업무는 '입원환자 케어', 다시 말해 주치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재활의학과도 입원환자가 있어?"라고 물어보는 동료 전공의가 있어서 속으로 상당히 놀랐던 기억이 있는데요, 네, 재활의학과도 입원환자를 받습니다. 저희는 주로 다른 과에서 '전과'되는 환자를 맡는데요, 급성기 치료를 받은 환자가 재활치료를 열심히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되었을 때 저희에게 오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예를 들자면 뇌졸중 환자가 혈전 용해제 복용 혹은 혈전 제거술을 시행, 외상으로 인해 골절을 입은 분이 수술 이후 어느 정도 골유합이 이루어진 후 재활의학과로 전과되는 방식이죠.
계속 강조하는 점은, 저희는 한 부분만 보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주요 호소증상(chief complaint, 이하 주소) 위주로 문진과 진찰이 이루어지지만, 주소 이외에도 다른 문제가 숨어 있을 수 있고 이는 재활치료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저희는 환자들을 볼 때 A부터 Z까지 최대한 탐색하고자 합니다. 저희가 입원환자분들을 처음 만났을 때 확인하는 사항을 한 번 나열해 보겠습니다.
1. 주소&발생시기: 증상이 맨 처음 발생한 것이 언제인지, 정확한 시간까지 알 수 있으면 좋아요. 중간에 호전되었다가 다시 증상이 발생한 경우도 미주알고주알 다 알아두는 것이 좋아요.
2. 기저질환&과거 병력&수술력: 사소한 것까지 다! 작은 양성종양 절제술처럼 간단한 국소마취 수술인 경우도 다 알아내면 좋습니다.
3. 가족력
4. 동거인&간병인&경제적 능력: 개개인의 사회경제적인 지지체계를 파악하기 위해 꼭 확인해야 하는 사항입니다. 몸이 불편한 상황에 곁에 누가 있는지, 병원비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지 등등이 치료 및 회복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거동이 불편한 분들이라면 주거 형태에 대한 조사도 시행합니다(주택인지, 아파트인지와 같은). 필요하다면 사회사업지원팀에 협업을 요청하기도 해요.
5. 직업&기존 일상생활 수행 능력: 직업을 아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의 목표가 환자분들로 하여금 기존의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을 최대한 수행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함이기 때문이에요. 일상생활 수행능력은 아래에서 더 자세히 기술하겠지만, 질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하기 전에 어느 정도로 독립적으로 생활하고 있었는지를 알아야 치료의 목표를 세우는 데에 기준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필요한 정보입니다.
6. 기본적인 인지&언어능력에 대한 평가: 인지나 언어능력 같은 경우는 뇌졸중이나 뇌출혈과 같이 뇌신경계에 영향을 미치는 질병에서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주소와 관련이 없더라도 기본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어요. 또한 그런 경우가 아니라도, 예를 들어 단순 노화로 인한 인지능력 저하도 재활치료 과정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평가는 기본적으로 이루어진답니다.
7. 근력&감각 평가: 아무래도 재활의학과를 찾는 분들의 대다수는 어떠한 질병으로 인해 거동이 불편해진 분들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팔다리의 근력 평가를 시행하고, 필요하다면 그에 더하여 목을 가누는 능력이나 몸통(체간)의 힘도 평가하게 돼요. 감각 평가를 통해서는 혹시 감각이 무디거나 느껴지지 않는 곳이 있는지, 아프지 않은 자극을 아프게 느끼지는 않는지, 저리거나 말로 표현하기 힘든 느낌이 들지는 않는지 등을 짚어보면서 진단과 치료에 참고하기도 합니다.
8. 일상생활능력에 대한 문진: 재활의학과의 존재 이유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한 일입니다. 환자분이 일상생활을 하는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공인된 평가도구를 통해 점수를 매기고, 재활치료를 통해 이를 얼마나 끌어올릴지 목표를 먼저 세우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평가도구인 한국형 수정바델지수(Korean version of Modified Barthel Index)에서는 다음과 같은 항목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 개인위생/목욕하기/식사하기/용변처리/계단 오르기/옷 입기/대변조절/소변조절/보행/의자-침대 이동
위와 같은 내용을, 재활의학과에 입원하는 모든 환자들에게 기본적으로 확인해야 하고, 개개인의 상태에 따라 보조 검사가 추가로 이루어져야 하는 상황이 많습니다. 제가 수련을 처음 시작했을 때에는 그런 점이 정말 적응하기 힘들었습니다(물론 지금도 부족한 점이 많지만요.). 재활의학과가 포괄적인 학문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흔히 생각하는 의학의 분야를 넘어서서도 고려할 점이 너무 많았던 것입니다. 사회경제적인 부분을 확인하는 것이 제일 놓치기 쉬웠던 것 같습니다. 직업/가족관계/병전 동거인/경제적 수준... 이런 것들은 매번 잊었다가 다시 가서 물어보거나, 교수님의 질문에 답하지 못해 진땀을 뻘뻘 흘린 적이 다반사였죠.
좀 건방지지만...! 처음에 제가 자주 하곤 했던 생각입니다. "환자의 의학적 상태에 맞게 합당한 재활치료만 열심히 해 주는 것", 이것만이 우리의 역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곤 했었죠. 하지만 재활의학과 의사라면 그렇게만 생각하면 안 됐었죠. 환자의 일상생활로의 복귀를 돕는 것이 저희의 궁극적인 목표이니까요. 저희가 맡았던 환자분들은 회복 후에도 이전에 하던 일을 최대한 지속할 수 있어야 하고 기존의 생활환경에서 원래 같이 지내던 사람들과 함께 지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당위성을 제쳐두고라도, 사회경제적 측면, 심리적인 측면 등 환자분의 거의 모든 것을 알아내려 하는 것은 재활치료 자체에도 영향을 미치므로 중요하다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위해 이 치료를 받고 있는 것인지를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됨으로써 환자와 치료자 모두 동기부여가 될 수도 있겠죠. 이렇게 질병만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닌, 한 인간을 중심으로 치료를 진행하는 것을 저희는 '전인적인 접근'이라고 부르고는 합니다.
아 물론 여기서 누군가는 오해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덧붙이자면, 다른 과 의사 선생님들도 저희처럼 환자분들의 여러 문제에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다만, 재활의학과에 비하여 보다 급성기이고 더 구체적인 분야의 환자들을 보기 때문에 아무래도 전인적으로 환자를 보기에는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는 것이죠. 일상생활로 복귀하기 전의 환자들을 맡아 최대한 포괄적이면서도 실용적인 평가와 치료를 시행하는 것이 저희 재활의학과가 맡은 역할이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