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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emi Jan 03. 2022

2002년 여름, 추억의 노래

혹시 당신에게도 진한 추억의 향기를 가진 노래가 있나요?


당신에게 음악이란?


나에게 음악이란 잊고 지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타임머신과 같다. 그 음악을 들었던 순간으로 나를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 당시의 감정까지 다시 끓어오른다. 특히나 어떠한 음악이 감정적인 사건과 짝을 이루게 되면 그 순간에 느꼈던 감정과 기억을 되살리는 단서가 되기도 한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회고 절정'이라고 불리는 시기가 있는데 이 시기에 들었던 음악은 다른 시기에 들었던 음악보다 더 많은 추억과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보통 그 시기가 10대에서 20대라고 하는데 그 이유가 아무래도 그 시기에 첫 경험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청춘 시절 들었던 음악을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나에게도 아주 진한 커피 향처럼 나의 인생에 진하게 추억과 연결되어 있는 노래가 있다.


2002년은 나에게 매우 의미 있는 해이다. 왜냐하면 대학에 입학하여 대학생활의 낭만을 즐기며 공식적인 '어른'이 된 해이기도 하다. 또한 2002년 월드컵이 우리나라에서 개최됨으로써 너도 나도 빨간색 유니폼을 입고 거리로 나가 열심히 응원했던 해이기도 하다.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회고 절정'으로 최적기였던 시기여서일까? 나는 유독 2002년도의 가요들을 듣고 있노라면 그때 그 시절의 진한 향기에 취하는 것 같다.




2002년 7월 [넌 감동이었어 / 성시경]

대학교 1학년 여름, 잠시 나는 여자 친구가 있는 성당 오빠를 만났었다. 캠프에서 처음 만난 성당 오빠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만 같은 맑은 눈망울을 가진 사람이었다. 오래 사귄 여자 친구가 있었던 오빠는 나를 여동생처럼 이뻐했고 언니가 없던 나는 섬세하고 포근했던 오빠에게 언니라고 부르기도 했다. 어느 날 오빠와 밥을 같이 먹고 늘 가던 대로 양재천을 걸었다. 한참을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오빠가 말했다.

"너는 우리 엄마가 보내준 천사 같아"

 당시 오빠는 엄마가 몇 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나를 만나고 엄마 생각이 많이 났고 또한 웃음을 되찾을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래 그랬었지
널 사랑하기에 세상은 나에게 커다란 감동이었어
그 순간을 잃는다면 내가 살아온
짧은 세월은 너무나 보잘것없어


오빠는 성시경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노래방에서 늘 성시경 노래를 불러 주었었다. 한여름에 나온 성시경의 '넌 감동이었어'의 가사처럼 오빠는 나에게 웃음을 되찾게 해 준 감동을 준 사람이라고 말했다. 무더운 여름날 양재천을 함께 걷노라면 살짝 시원한 풀내음이 우리의 땀을 식혀 주었다. 그러나 우리의 만남도 한여름 밤의 꿈처럼 금방 사라져 버렸다. 지금도 성시경의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사슴 같은 눈망울로 나를 쳐다보며 열창을 하던 오빠가 생각난다.





2002년 8월 [네버 엔딩 스토리 / 부활]

대학에 입학하기 전 아주 추운 겨울날 나는 소개팅을 했다. 나의 절친한 남사친이 소개팅을 주선해줘서 동네 커피숍으로 나갔다. 아무 생각 없이 나간 나는 내 친구 옆에 앉아 있는 아이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중학교 때 영어학원에서 짝사랑을 하던 아이가 앉아 있는 것이다. 나는 운명이라고 직감했다. 그렇게 우리는 썸을 타며  자주 동네에서 술도 마시고 가끔 영화도 봤고 그 당시 핫했던 압구정에서 데이트도 즐겼다. 그러면서 나는 혼자 그를 향한 마음을 키우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 고백받기까지 몇 달이 걸려 속앓이를 많이 했다. 그렇게 첫사랑의 여자 친구가 된 나는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이 기뻤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100일을 못 채우고 나는 이별 통보를 받았다.


그리워하면 언젠간 만나게 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뤄져 가기를
힘겨워한 날에 너를 지킬 수 없었던
아름다운 시절 속에 머문 그대여

그리워하던 첫사랑을   만에 마주했던 그런 영화 같은 일이 이루어졌던  시절. 우리는 운명처럼 다시 만났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다만 우리의 인연은 질겼다.    다시 우리는 서로의 연인을 데리고 마주하기도 했고, 불과 몇년 전 소개팅을 주선해준 남사친의 결혼식에서 옆자리에 서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정말 나의 첫사랑이야기는 네버 엔딩 스토리이다.





2002년 9월 [낙원 / 싸이 feat. 이재훈]

첫사랑과 이별 그리고 여자 친구가 있는 성당 오빠를 만난 후 나는 한동안 너무 힘들었다. 보다 못한 내 친구가 나에게 소개팅을 주선해 주었다. 지금껏 내가 만나보지 못한 스타일의 남자 친구였다. 학교에서 일명 '일진'으로 불렸던 그는 그냥 한눈에 봐도 딱 카리스마가 넘쳐났다. 당시 나는 첫사랑과의 이별로 힘들어하던 때라 그 친구가 마음 깊이 들어올 자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 친구는 서서히 나에게 한 걸음씩 다가왔다. 그는 나와 다른 거친 세상을 살아서였을까?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나를 만나 마음의 안정을 찾은 듯하였다. 나 또한 완전히 나와 다른 그에게 끌리고 있었다.


너로 인해 힘들었던 나의 어제가
 술안주로 변해버린 오늘이구나
내 여자구나 이제 안 보낸다 절대
안겨봐 내 품에 포근해 소중해


그의 친구들은 나를 보며 신기해했다. 호랑이 같던 그가 나를 만나 양처럼 순해졌다며 말이다. 그러나 그는 겉으로는 센 척했지만 사실 알고 보면 누구보다도 눈물이 많고 마음이 여린 친구였다. 그 친구와 처음 당일치기로 동해바다로 가는 길에 들었던 노래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런 류의 노래를 잘 듣지 않았는데 그를 만나고 나서 이러한 노래를 많이 듣게 되었다. 그렇게 거친  친구와의 사랑이 시작되었다. 그는 말했다.

"나에겐 네가 낙원이야"

사실 어쩌면 우리는 서로에게 낙원이었던 것은 아닐까? 각자 힘들었던 시기를 보내고 마음의 안식처를 찾았고 안착한 곳이 바로 우리의 낙원이었다.




나에게 조금 특별한 이 노래들이 어디선가 흘러 나오면 진한 향기가 내 몸 구석구석에 퍼지면서 그 향에 취한다. 그 진한 향기로 인해 나는 또다시 2002년도로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다.

혹시 당신에게도
진한 추억의 향기를 가진
노래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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