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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emi Dec 27. 2021

나는 양세권(양재천에 인접한 지역)에 살고 있습니다만.

반평생을 함께 한 양재천에게 보내는 글

얼마 전 유현준 작가의 [공간의 미래]라는 책을 읽었다. 작가에 따르면 코로나 19로 인해 우리들이 사는 공간에 많은 변화가 있었고 계속해서 공간은 인간의 삶에 최적화된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공간과 건축에 대한 저자의 해석이 흥미로웠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해 보았다.


나에게 의미 있는 공간은 어디일까?

혹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도 한번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인간은 늘 어떠한 '공간' 속에 존재한다. 나에게 의미 있는 공간은 어떠한 곳이며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는가?


나에게는 반평생을 함께 한 공간이 있다. 바로 양재천이다. 양재천은 과천시 중앙동에서 시작하여 북동쪽으로 흐르다가 서울시 서초구 및 강남구로 가로지른 후 탄천으로 흘러간다. 원래 이 하천은 한강으로 직접 흘러들었으나 1970년대 초에 수로변경 공사에 의해 탄천의 지류로 수계가 바뀌었다고 한다. 원래 이름은 공수천, 학탄 등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지금은 서초구 양재동으로 흐르기 때문에 이름이 '양재천'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내가 처음 양재천을 걸은 것은 중학교 3학년 때인 것 같다. 학업 스트레스로 친구들과 답답한 마음을 덜어 보고자 친구들과 하교 길에 양재천으로 향했다. 지금은 길도 다듬어졌고 다양한 식물들로 가꿔져 있지만 내가 처음 양재천을 갔을 때만 해도 그냥 허허벌판이었다. 그냥 자연 그대로의 양재천이었다. 졸졸 흐르는 천은 너무나 맑아 물고기도 많이 보였고 오리들이 자유롭게 헤엄쳐 다니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양말을 벗고 교복을 입은 채로 첨벙첨벙 뛰어다녔다. 친구들과 까르르거리면서 말이다. 그렇게 나는 공부에 지쳐 답답한 마음이 들 때면 양재천을 찾았다. 양재천은 나에게 '힘들면 언제든 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늘 엄마의 품처럼 나를 포근하게 안아주었다. 그래서 양재천에 가면 그냥 마음이 편했다.


그렇게 10대를 친구들과 함께 보낸 양재천에 어느새 나는 남자 친구를 데리고 걷고 있었다. 첫사랑과 설레는 마음으로 밤 산책을 갔던 기억. 아이러니하게도 그 첫사랑에게 이별 통보를 받은 것도 양재천이었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양재천을 혼자 걸었던 그 날밤도 잊을 수 없다. 달빛이 환했다. 달빛이 너무 눈부셔서 울었던 것은 아닐까라고 추억해본다. 늘 그렇듯 양재천은 나를 위로해주었다. ‘사랑은 그렇게 배워 가는 거야.’  슬픈 기억도 잠시, 양재천에서 나는 마지막 사랑(지금의 남편)에게 프러포즈를 받았다.  첫사랑의 아픔도 그리고 마지막 사랑의 결실 또한 양재천에서 이루어졌다.


결혼 후 아이와 함께 양재천을 자주 걸었다. 양재천은 나에게 그랬듯 우리 아이들을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봄 되면 벚꽃으로 우리를 설레게 해 주었고 여름에는 우리 아이들의 물놀이터가 되기도 해 주었다. 가을이면 낙엽 밟는 소리를 들려주었고 겨울에는 눈싸움을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내주었다. 아이들은 늘 양재천에서 놀았다.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양재천이 새삼 고마웠다. 도심 한가운데에 이러한 아름다운 자연이 존재한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러나 그 사이 양재천도 점점 인간의 손길이 닿아서 그런지 많이 바뀌었다. 걷다가 우리가 쉴 수 있는 벤치가 곳곳에 생겼고 보행자길과 자전거 전용도로가 생겼다. 그리고 길가에는 다양한 꽃과 풀들이 심어졌다. 겉보기에는 더 편리해졌고 아름다워진 것 같지만 최초의 양재천의 모습을 아는 나로서는 아쉬움이 컸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인간의 손길에 의해 파괴되는 것 같아서 말이다. 세월만큼 양재천도 변하고 있었다.


나는 지금도 혼자 자전거를 타러 양재천에 나간다. 양재천을 거닐던 한 소녀는 어느새 40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내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듯 양재천도 계속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도 양재천은 나를 두 팔 벌려 반겨준다. 학창 시절 공부로 힘들어하던 나를 보듬어 주었고 사랑의 아픔을 위로해 주었다. 결혼 후 우리 아이들에게는 천혜의 자연을 안겨 주었다. 나는 지금 양재천에 공책과 연필을 들고나간다. 나는 그곳에서 그림과 글의 영감을 받는다. 그리고 나에게 양재천이 '기다렸어'라고 속삭이는 것만 같다. 늘 그 자리에 있는 양재천. 나는 그래서 양세권(양재천 가까운 지역)을 벗어나지 못하나 보다. 남들은 숲세권, 초품아, 몰세권 등을 중요시하지만 나에게는 양세권이 제일 중요하다. 내 청춘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고 나에게 늘 위로의 한마디를 건네준다. 그리고 지금은 나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양재천이라는 한 공간이 나에게 주는 선물은 참으로 무한하다.  내가 50대, 60대가 되었을 때 양재천은 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나에게 무슨 말을 건네줄까? 나는 앞으로도 양재천과 함께 늙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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