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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emi Jan 17. 2022

신천지야, 내 친구를 돌려줘.

 대학교 때 나를 포함한 6명의 친구들과 친하게 지냈다. 5명의 친구 들 중 나와는 전혀 다른 단아한 이미지를 가졌던 한 친구가 있었다. 그녀는 대학 4년 내내 함께 강의를 듣었고 영어학원도 같이 다니며 많은 시간을 함께 나눈 친구였다. 그러다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바빠졌고 그녀도 회사가 바빴다. 심지어 집까지 멀어서 점점 우리 사이는 멀어졌다. 게다가 그 친구의 결혼식 때 나는 제주도 여행을 하고 있어서 참석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그녀와 연락도 자연스레 끊겼다.


 그러던 어느 날, 거의 몇 년 만에 그녀로부터 카톡이 왔다. 잘 지내냐는 그녀의 카톡에 나는 반가운 마음이 컸다. 왜냐하면 그 친구는 학교 다닐 때에도 늘 연락을 먼저 하는 친구가 아니었다. 내가 항상 먼저 연락을 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정말 몇 년 만에 그녀가 먼저 나에게 연락을 했다. 서로 안부를 주고받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친구는 임신을 한 상태였고 심지어 그녀의 집이 우리 집이랑 가까웠다. 그래서 바로 우리는 만났다. 그녀는 여전했다. 대학교 때 순수함 그대로 맑았다. 그녀의 임신 소식을 듣고 육아 선배로서 뭐든지 다 퍼주고 싶었다. 그래서 육아 용품도 선물해 주었고 육아 꿀팁 같은 것도 자주 알려 주었다. 그리고 점점 배가 불러오는 그녀에게 맛있는 밥도 자주 사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나에게 자기가 심리상담을 받으러 갈 건데 같이 가자는 제안을 했다. 아기를 낳기 전에 불안해하는 그녀의 마음을 알기에 함께 가 주었다. 그녀가 옆에서 상담을 받는 동안 나는 그냥 가만히 옆에서 듣고 있었다. 그러다 그녀의 상담이 끝나고 상담사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나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자녀와 엄마와의 궁합 같은 것을 심리 테스트로 볼 수 있고 잘 맞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 상담을 받을 수 있다며 나에게 제안을 해 왔다. 당시 아들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이 많았던 시기이기도 했고 또한 비용도 얼마 하지 않길래 바로 예약을 했다. 일주일 후 나는 아들과 함께 심리상담소를 찾았고 그녀도 함께 와주었다. 그렇게 아들과의 심리 상담을 받고 일주일 후 결과를 들으러 다시 찾아갔다. 그때도 그녀가 함께 했다. 그녀는 어차피 그곳에서 심리상담을 받고 있어서 자주 오니까 괜찮다고 했다. 상담 결과, 엄마인 내가 부족한 부분이 많으니 조금 상담을 받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러나 1시간당 7만 원이라는 돈이 그 당시 나에게는 적지 않은 돈이었다. 또한 그렇게 마음이 힘들었던 것도 아니고 기댈 곳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무엇을 위해 1시간당 7만 원이라는 돈을 내야 할까?라고 생각했을 때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 생각해 본다고 하고 나왔다. 그런데 다음 날, 전화가 왔다.


"마침 강사 한 분이 강의를 하기 위해 많은 사례가 필요해서 무료 상담을 해주신다고 하는데, 하시겠어요?"


 나는 살짝 고민을   바로 하겠다고 대답했다. 마음이 힘들었던 것은 아니지만 일단 그녀가 이곳 리상담소에 대해 칭찬을 자주 했고 또한 심리상담 자체가 궁금했다. 근데 무료라고 하니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심리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처음 선생님과 통화를 하는  내가 근처 카페로 나간다고 했는데 자꾸 우리 에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자고 권유하셨다. 사실 생판 모르는 남을 집으로 들이는 일이 조금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선생님은 아기 엄마들은 다들 그렇게 한다며 괜찮다고 나를 설득하셨다. 결국 나는 우리 집에서 상담을 받게 되었다. 선생님과 나는 1시간 정도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에는 나를 알아가기 위해서인지 이것저것 질문을 하셨다. 신기하게도 처음에는 약간의 마음의 장벽이 있었는데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점점  마음의 벽도 허물어져 있었다.


"선생님, 죄송한데 저는 천주교예요. 집안이 다 천주교여서..."

"괜찮아요. 종교랑 상관없어요."


 선생님이 종교에 대한 생각을 나누려고 하실 때 나는 단호히 천주교라고 선을 그었다. 왜냐하면 나를 소개해준 그녀도 기독교(그 당시에는 그렇게 믿었다.)였고 심리 상담소도 기독교 같은 분위기였기에 혹시나 선생님도 기독교이시면 서로 불편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서 먼저 말을 꺼냈으나 다행히 선생님은 쿨하게 문제없다고 대답해 주셨다. 그때부터 더 터 넣고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조금 의아했던 것은 '절대 나와 상담한 이야기를 가족, 남편에게도 말하지 말아라'라고 한 말이었다. 아니 왜 굳이 말하지 말라고 하지? 선생님은 남의 이야기를 들으면 내 마음이 또 흔들릴 수 있으니 상담 초반에는 특히 자기랑만 이야기를 하라고 하셨다. 조금 이상했지만 처음 상담받는 일이기에 선생님 말에 따랐다. 그렇게 선생님과의 5번째 상담이 끝날 무렵의 일이다.


 뉴스 기사에서 처음 보는 단어가 연일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떴다. 신천지? 이게 뭐지? 하도 기사가 많이 나오길래 나는 클릭하면서 읽어 내려갔다. 바로 코로나19가 시작되던 그 시기였다. 계속 읽다가 내 눈에 들어오는 단어들이 있었다. 무료 심리상담. 그러면서 기독교인 인척 하고 다가오며 오히려 종교가 있는 사람들, 또한 부지런한 사람들에게 접근한다는 글들이었다. 평소에는 눈치가 없는 편인데 이상하게 이 날 기사를 읽는데 갑자기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러면서 대학 시절의 그녀의 행동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갑자기 종교에 빠졌던 그녀. 매주 수요일에는 늘 교회에 갔던 그녀. 그리고 매일 같이 종교활동을 하느라 바빴고 종교 이야기만 나오면 발끈했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남편이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일을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몇 년 만에 갑자기 연락 온 그녀의 의도가 의심되기 시작하였다. 아니길 바랬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는 곧바로 그녀에게 카톡을 보냈다.


"혹시... 나 상담해주는 선생님 신천지는 아니겠지?"


 나는 그녀에게 신천지냐는 질문은 차마 하지 못하고 선생님 이야기를 꺼내며 질문을 했다. 그 당시 신천지라고 의심을 받는 기독교인들은 버럭 화를 내던 시기였다.


"... 갑자기 왜? 무슨 일 있어?"


  나는 직감했다. 머리가 하애지면서  동안 대답을 못했다. '너도 신천지야?'라고 목구멍까지  말이 나왔지만 이내 삼켰다.


"어, 그냥 왠지 그런 것 같아서. 미안한데 나 상담 더 이상 못 받을 것 같아. 선생님한테는 내가 연락할게."

"그래"


 이것이 그녀와의 마지막 카톡이었다. 벌써 2년 전 일이다. 지금까지도 연락 한 번 없다. 몇 년 만에 연락 와서는 거의 매일 같이 나와 카톡을 하던 그녀가 '신천지'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다시 우리는 연락이 끊겼다. 나는 그동안 그녀와 있었던 일들, 그리고 선생님과 상담했던 내용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잃어버렸던 학창 시절 친구를 찾았던 그 설렘과 기쁨도 잠시, 나는 친구에게 속았다는 실망감에 한 동안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그 모든 것이 처음부터 계획되었던 것이라 생각하니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면 친구 관계도 자의 반 타의 반 어느 정도 정리가 된다. 그 속에서 연락이 끊긴 친구 중에 가끔 생각나고 그리운 친구들이 종종 있다. 그녀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래서 내가 더 마음을 썼던 것 같다. 그러나 그 달콤한 꿈도 몇 개월 만에 물거품이 되었다. 같이 다녔던 나머지 4명의 친구들 중 아무도 그녀와 연락을 하지 않았고 나랑만 연락을 하고 지냈었다. 내가 그녀의 이야기를 다른 친구들에게 하자, 놀라면서도 그럴 줄 알았다며, 종교에 너무 빠져 있어서 수상하긴 했다는 반응이었다. 너무 속상해하는 나에게 한 친구는 '그럼 네가 먼저  연락해서, 나한테 왜 그랬냐고 따지고 풀어'라고 조언을 주었지만 사실 아직도 나는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나 보다. 그녀의 카톡 프로필 사진에는 그녀의 딸 사진이 매일 올라온다. 늘 그녀의 딸 사진을 유심히 보지만 차마 연락은 못하겠다.


 연락을 해서  그랬냐고 추궁을 한들, 그리고 신천지 맞냐고 확인을 해서 뭐가 달라질까 싶다. 어차피 그녀를 신천지에서 빼올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럴 자신도 없다. (솔직히 말하면 그럴 열정이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다시 연락을 해서 내가 무엇을 얻고 싶은 것일까? 그냥 대학 시절 그때의 추억을 함께 나누고 그때처럼 친구 사이로 남은 인생을 보내고 싶은 것뿐인데, 그게 가능할까 싶다. 나는 그러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그녀는 아닐 수도 있다. 그렇기에 지금껏 연락   없는 것이 아닐까? 다행스럽게도 그때의 실망감과 배신감은 점점 흐려지고 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그녀에게 연락을   있는 날이 언젠가 오길 바라본다.


  그곳에서 나오거든 언제든 연락하길 바라. 기다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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