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중 입시에 대한 기록_4
나는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그리고 대학 졸업 후, 줄곧 통역 일만 해왔지, 예술과는 1도 연관 없는 일을 해 왔다. 그러다가 그림책이 좋아서, 그림책 작가 되었고 지금도 첫 번째 그림책을 내고 두 번째 그림책에 도전 중이다. 첫 번째 그림책을 낸 후 1년 정도는 소소한 홍보도 하고 북토크도 하며 자유를 만끽하며 지냈다. 그러다가 다시 조금씩 일을 하고 싶어서 유학원에서 일본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대학생 때부터 사주를 보면 ‘너는 늙어서도 공부할 타입이야. 선생님 같은 직업이 잘 맞아.’라는 이야기를 듣고 자라서인지,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이 부담스럽지 않고 가끔은 즐기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러다 딸이 예중을 가겠다고 하면서부터 나는 현타가 왔다.
내가 지금 내 꿈 찾을 때인가?
라고 말이다. 회사원인 남편은 감사하게도 재테크에도 관심이 많아, 우리는 부동산이든 자영업이든 젊을 때부터 강아지고생(?)을 하며 열심히 모아 왔다. 그리고 나는 마음만 먹으면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일을 하고 싶을 때는 바짝 벌고, 육아에 전념해야 할 때는 또 쉴 수 있었다. 물론 돌이켜보면 남편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경제적으로 압박을 주지도 않았고 늘, 나 하고 싶은 것 하라고 얘기해 주었던 것 같다. 그래서 자아를 찾고 싶을 때 자아 찾아 일했고, 그림책 작가라는 꿈이 생겼을 때 그림책 작가의 꿈을 쫓아 올 수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사실 취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지금껏 몇 번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다 거절했다. 일단 아이들과의 소중한 시간을 포기하기 힘들었다. 하교 후 집에 내가 있으면 간식도 챙겨주고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아이들이 그날 배운 것을 아웃풋 하는 것을 들어줄 수도 있고, 모르는 문제를 함께 풀기도 한다. 그리고 읽었던 책 내용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나는 이러한 시간들이 지금의 우리 아이들을 올바르게 자라게 한 자양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시간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그림책을 계속 내고 싶기에, 그림을 배우고 그림책을 만드는 시간을 확보하고 싶었다. 매일 출근하다 보면 분명 아이들과의 시간, 그리고 내 꿈을 위해 투자하는 시간이 없어질 것을 알기에 거절했던 것이다.
어쩌면 지금껏 나는 너무 남편에게 기대어 살았던 것이 아닐까, 조금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딸의 입시 미술 학원 비용이 200을 넘기 시작하면서 방학 때는 300에 달한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그때부터 입맛이 뚝 떨어지며 밤에 잠을 잘 들지 못했다. 지금껏 영유를 보내지 않았고 사교육 또한 시키지 않았는데 갑자기 몇 백에 달하는 학원비를 낼 생각을 하니, 가슴이 턱 막혔다. 그 돈으로 주식을 사주고 나중에 큰돈을 아이들에게 주고, 하고 싶은 것 하라고 하는 것이 백번 옳지 않느냐는 남편의 말. 초등학교 5학년 짜리 아이가 미술학원에 몇 백을 주는 게, 정상이냐는 날 선 남편의 말. 나 또한 이 상황을 100퍼센트 수긍하기에는 참 오래 걸렸다.
그래도 나는 하고 싶은 것이 있는 딸이 있는 것이 대견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받지 못한 자신이 하고 싶은 미술 교육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미대를 나온 사람들은 ‘미대 안 나와도 돼.’라고 말하지만, 미대를 나오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미대는 선망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딸도 나처럼 되지 않길 바란다. 그래서 지금 그녀의 꿈을 응원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취직을 했다. 학원을 주 3일 나가긴 했었지만, 이걸로는 턱 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결국, 내가 하던 일, 통역일을 하며 돈을 벌기로 했다. 배운 게 도둑질인 걸, 어쩌겠는가. 내가 딸 때문에 취업을 하고 나니, 제일 좋아한 사람은 남편이었다.
내 어깨가 조금 가벼워졌어.
고마워.
고생이 많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했다. 진작에 남편의 어깨의 짐을 덜어줄걸. 내가 너무 내 꿈만 찾고 있었던 것 같다. 남편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돈 버는 기계처럼 일하고 있는데. 마누라는 돈을 벌 수 있음에도 (물론 아이들을 위해 안 한 것이 제일 크지만) 그림 그린다고 일을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물론 단 한 번도 나보고 ‘일 하러 나가라.’ ‘ 돈 벌어 와라.’라고 말한 적은 없다. 하지만 저렇게 고마워하고 좋아하는 남편을 보니, 조금은 씁쓸했다.
그까짓 나의 꿈, 1년 정도 좀 미루면 어때. 그렇게 생각하며 취직을 결정하던 그때. 사람은 죽으란 법이 없나 보다. 얼마 전 더미데이에 지금껏 만들어 둔 2개의 이야기를 정리해서 제출을 했었는데! 더미데이에 선정되었다는 메일을 받은 것이다! 잠시 서랍 속에 꼭 넣어두려 했던 나의 두 번째 그림책. 포기하지 말고 일단 나아가!라고 누군가가 내 등을 떠미는 것 만 같았다. 누구보다 이를 축하해 준 것이 딸이다.
엄마, 나 때문에
일 해야 해서 그림책도 못할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이에요!
이렇게 말해주는 이쁜 딸. 딸은 항상 늦게 퇴근하는 나에게 “미안해, 엄마 나 때문에…”라고 말하는 착한 딸이다. 그래서 더미데이에 나가서 출판사와 미팅한다고 하니, 나만큼이나 기뻐해주었다. 그래, 나 아직 할 것이 남았지! 남은 두 개의 이야기, 꼭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꼭 언젠가 세상에 많은 아이들에게 읽힐 수 있도록! 포기하지 말고, 늦더라도 천천히. 포기하지 말고. 딸이 꿈을 이루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듯,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조금씩 나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