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무엇이든 결핍이 있어야 한다.

예중 입시에 대한 기록_3

by Gaemi
엄마,
OO엄마는 어느 대학 교수래.

OO엄마는 약사래.


대치동에 미술학원을 보내면서 아이에게도 새로운 환경이 노출된 것 같다. 물론 우리 동네에도 의사나 변호사 부모들이 있지만, 부모 직업을 가지고 아이들이 이야기를 딱히 하지 않았다. 그냥 부모들끼리만 알지. 하지만 우연히 부모 직업을 이야기하게 되었는지, 아니면 동네 특성인지는 모르겠다. 처음으로 아이 입에서 부모님 직업 이야기가 줄줄이 나온 것이다.


“그래서 넌 뭐라고 했어?”

“응, 난 우리 아빠 외국회사 부장님이라고 했어!”


그래, 사실이지. 아마도 아이 입에서 엄마아빠의 직업을 공적(?)인 자리에서 처음 이야기했을 거라고 생각되었다. 아무래도 지금 사는 동네는 워낙 어릴 때부터 자란 동네이니까, 그런 것을 물어볼 필요도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아이는 조금은 부러워하는 말투로 이야기한 것을 보니, 혹시나 거기서 자존심 상할 일을 겪진 않을까 엄마로서는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조금 지나 더 강력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엄마,
OO는 타워팰리스 산데.
그리고
OO는 사립초 다닌데!


매번 학원 가는 길에 타워팰리스를 지난다. 아이들 눈에도 타워팰리슨 저 세상 같은지, 항상 지나갈 때마다 “우와~ 여기 살면 어떨까?”라는 이야기를 꼭 한다. 웃으며 하는 아이를 보고 또 걱정이 된다. 혹시나 저 먼 동네에서 학원을 다니는데, 놀리진 않을까. 넌 어디 살아?라는 질문에 대답했을 때, ‘거기가 어딘데?’라는 말로 상처받진 않을까.


그렇다고 아름다운 세상만을 아이에게 보여줄 수는 없지. 예중을 가면 사실 더 하면 더했지. 이것은 연습게임이야,라고 나를 다독이고 아이에게도 마음 근육이 생기도록 조심스레 알려주고 있다.


물론 나는 초등학교 때는 이러한 감정을 느낄 일이 없었지만, 고등학교 때는 느꼈던 것 같다. 그 당시에 타워팰리스가 생겼는데, 누구누구는 타워팰리스 산데, 누구누구는 벤츠 타고 가더라 등등. 그때 전혀 안 부러웠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렇게 큰 타격을 받진 않았던 것 같다. 그 당시에 했던 대화들이 요즘은 점점 연령대가 더 낮아지고 있는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나의 경험상, 결핍이 있어야 아이도 더 열심히 한다. 나는 솔직히 (잘 살아서는 아니지만) 결핍 없이 살았다. 그래서 그런지 ‘절박함’이 없이 살았다. 하지만 결국 성공하는 사람을 보면 모두 결핍이 있고 절박함을 느끼며 성공을 했다. 나는 그래서 아이들에게 결핍이 꼭 있길 바랐다. 물론 의도한 결핍은 아니지만, 조금은 결핍으로 느끼며 절박하게 원하는 것을 해내길 바랐다.


그래서일까? 미술학원 중 어떤 아이는 벌써 6학년 교과 공부를 과외로 다 끝냈다는 아이, 그리고 주말에 과외 공부한다는 아이와 함께 생활하면서 더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감사하게도 자신의 상황이 넉넉지 않음을 알고 스스로 부족함을 채우고 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학원을 다니다가는 자신이 원하는 예중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을 느끼고 있다. 엄마 아빠는 당연히 예중을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지금도 비싼 학원을 다니는 것에 대해 긍정적이지 않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아이는 정말 죽어라 공부를 하고 죽어라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래서 얼마 전 학원에서 치른 학과 시험에서 1,2등을 차지했다.

“엄마! 대치동에서 학원 다니는 친구들 다 이겼어요!”


나는 아이가 1,2등을 받은 것이 기쁜 것보다 결핍을 느끼고 스스로 혼자 공부한 것이 대견했다. 학원을 다닐 형편도 되지 않아서, 나와 EBS문제집을 사서 같이 공부하고 있다. 매일 자기가 공부할 양을 정해서 공부를 하고, 미술 학원 다니느라 바쁜 날은 새벽 6시에 일어나서 학과 공부를 했던 아이이다. 그런 아이에게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와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리고 이 과정을 겪으면서 아이는 자신에게 맞는 공부법, 자기 주도학습까지 터득하게 된 것이다.


미술을 안 했더라면, 예중이라는 목표가 없었더라면 아이는 이렇게 공부를 했을까? 또는 넉넉한 형편에 그냥 당연히 미술학원 다니고 학과 과외까지 하는 환경이었다면, 아이가 절실하게 공부했을까? 아이가 굳이 예중을 가겠다고 해서, 가끔은 속이 상하기도 했지만 아이의 변화된 모습을 보니 어쩌면 순기능도 조금은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음 달부터 입시반에 들어가서 주 6일을 미술학원에 가야 한다. 우리처럼 사교육을 워낙 안 하던 집에서는 입시반 학원 비용이 천문학 적인 금액이다. 우리는 입시반을 다녀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몇 달을 고민했다. 그리고 아이는 또다시 ‘자신이 입시반을 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 우리를 설득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물론 답은 정해져 있다. 아이가 원한다면 시켜줘야지. 하지만 우리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또 분명 아이는 한 뼘 성장하리라 생각한다. 스스로 왜 예중을 가야 하는지, 깊이 있게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길 바란다. 나는 누구보다도 아이가 꿈을 향해 절실하게 나아가는 과정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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