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의 내가 지금의 나를 만든다.

3년 후 이루고 싶은 것을 지금부터 매일 꾸준히 하자.

by Gaemi

대학원 졸업 후 시작한 한 IT회사의 통역 일. 매일 출근하지는 않았지만 가끔 감사하게도 통역 일을 할 수 있었다. 어떤 달은 한 달에 20건 하는 달도 있었던 반면, 어떤 달은 1건도 하지 못한 달도 허다했다. 그렇게 들어오는 통역 일만을 해서는 먹고살기 어려워서, 나는 그동안 공인중개사 자격증도 따 보았고 빨래방 사장님도 되어 보고, 또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 이것저것 작은 수익도 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일본어를 가르치는 강사도 해 보았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나 하고 싶은 거 다 해보라고 말한 남편이에게 고맙다.) 그 어떤 직업 하나 안정적인 것이 없었다. 그래도 나는 아이가 어릴 때는 이것으로 충분했다. 어차피 나는 나의 일보다는 우리 가정, 아이들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물론 가끔 훅 들어오는 현타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 첫째가 중학생이 되고, 둘째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다. 첫째는 학교를 다녀오면 보통 4시 정도이다. 잠깐 간식을 먹고는 수학학원 또는 검도에 갔다 오면 저녁 7시가 훌쩍 넘는다. 그리고 둘째는 입시반에 들어가서 학교 갔다 오면 바로 학원으로 간 후, 집에 오면 10시 반이다. 점점 아이들과 있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진정 이런 날(=아이들이 집에 없는 시간이 긴 날)이 오기는 할까?라고 의심하고 또 의심했다. 선배맘들이, “시간 금방 가~”라고 말할 때, 먼 나라 이야기인 줄 알았다. 하지만 정말 나에게도 이제 그런 날이 온 것이다.


올해 가을부터 졸업 후 계속 몸을 담고 있었던 회사의 프리랜서 통역으로 이제 매일 일하게 되었다. 사실 몇 번 출근 제의가 있었는데, 아이들을 핑계로, 또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 (=그림 그리는 일)을 포기하지 못해 거절해 왔다. 내가 그 일을 하게 되면 어찌 되었든 매일 회사에 묶이게 되고, 지금처럼 평일에 가족 여행 가는 것도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매일 출근을 해야 한다는 것, 사실 내가 그걸 하지 않으려고 통역 대학원에 들어갔던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안일한 생각이었다.


이 일을 할 때 가장 고민되었던 부분은 아이들도 있지만 그것만큼 중요했던 나의 꿈이었다. 그림책을 한 권은 냈지만, 두 번째 작업을 쉽게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림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림 실력도 아직 부족하다. 그래서 나는 그림도 더 배우면서 그림책 작업도 조금 꾸준히 하고 싶었다. 이 꿈이 나의 내면에서는 정말 절실한 꿈이지만, 이것이 바깥으로 발현되었을 때는 자꾸 다른 중요한 일들에 밀린다. 집안일, 또는 돈 버는 일 등에 말이다. 그러다 보니 자꾸 뒤로 밀린다. 마음만 조급해졌던 것이다. 해야 하는데… 해야 하는데…


하지만 오히려 매일 통역 일을 하게 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내 마음의 평온이 찾아왔다. 나의 일은 (정규직은 아니지만) 집에서 재택으로 통역을 하고 하루에 많아야 3,4시간만 통역하면 된다. 물론 10시부터 7시까지 집에서 (또는 인터넷 환경에서) 대기는 해야 한다. 긴급하게 회의가 들어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약 3시간 정도만 매우 긴장된 상태도 힘들게 일을 하고 나면 나머지 시간은 비교적 자유롭다. 솔직히 이 일을 왜 진작에 하지 않았을까, 살짝 후회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 이유(상기의 이유)가 있었다고 나를 위로해 본다.


그렇게 매일 휘몰아치는 환경 속에서 나는 또다시 절실한 상황에 놓였다. 물론 누군가는 예술가란 작오로 한량처럼 여기저기 떠다니면서 사색하고 작품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예술가가 아니라서인지 모르겠지만, 한 없이 펼쳐진 자유에서는 뭔가 더 아웃풋이 더 잘 나오지 않았던 것 같다. 예를 들어 공인중개사를 공부할 때도 사실 그때 둘째가 3살 때, 막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할 때 나는 그 공부를 시작했다. 뚜렷한 목표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냥 왠지 나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 때문에 시작을 했다. 그 당시를 기억한다. 아이들이 잔 11시에 인강을 틀고 새벽 3시까지 공부하고, 아침에 어린이집을 보낸 오전에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가 점심 먹고 아이를 데리러 갔던 기억. 그러한 휘몰아치는 극한 상황에서 더 아웃풋이 잘 나왔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 더 나는 효율적으로(?) 작업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회의가 없는 짬 시간에 매일 그리는 크로키도 그리고, 그림책 작업도 하고, 그림책을 따라 쓰고 그린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껏 내가 백수처럼 지내왔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뭔가 내 꿈을 위한 일이 아닌, 어쩔 수없이(?) 돈을 벌어야 하는 극한의 상황에 오니, 내 꿈이 더 명확해지는 느낌은 있다. 그래서 인간은 변화하려면 환경을 바꿔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이것은 부모인 나나, 아이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니까.


모든 아이들은 자란다. 지금 이 시간이 끝없이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지만 것 아이는 해마다 자라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다 자유의 시간은 찾아온다. 물론 나도 그 시간이 오지 않을 것 같아서, 아무 계획 없이 살아왔기는 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때 죽어라 공부했던 공인중개사, 단 한 번도 내가 자영업자가 되리라 생각하지 못했는데 하게 된 빨래방 사장님, 그리고 그림과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다가 그림을 그리게 된 것 모두, 이것이 지금 나의 자유시간들을 채워주는 작은 조각들이 아닐까. 그때는 지금 이 시간을 위해 죽어라 했던 일이 아닌데. 결과적으로 이렇게 되었으니 말이다.


지금의 나를 알려면
3년 전의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돌아보면 안다.


나는 이 말을 믿는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그림책 작가라는 직업. 3년 전에 나는 미친 듯이 몰두하면 하고 있었던 조각들의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매일 하는 일들은 무엇일까? 그 일들이 나의 3년 후를 결정해 줄 것이다. 반대로 내가 3년 후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인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내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명확해질 것이다.


나는 여전히 그림책 작가로의 삶을 살고 싶다. 그러니 지금 틈만 나면 그림 그리고 글 쓰고 그림책과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니 3년 후에도 아마 그림책 작업을 하고 있겠지? 그리고 매일 일본어로 일을 하고 있으니, 3년 후에도 이 일로 밥벌이를 하고 있겠지,라고 생각한다. 물론 AI의 발전으로 인해 통역사의 일도 줄어들 것이고, 그림의 영역도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일단 내 통제 밖의 일이니까. 어찌 되었든 나는 오늘도 3년 후의 나를 꿈꾸며 오늘 하루를 보내고 싶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