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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emi Apr 25. 2022

아들의 사주를 보다

내가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천주교인은 점을 보러 다니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가끔 재미로 사주를 보곤 했다. 대학생 때도 친구들이랑 그 당시에 유행했던 사주 카페에 다녔고 회사 다닐 때에도 친구들이랑 가끔 점을 보러 갔다. 물론 엄마한테는 비밀로 말이다. 그러나 점을 보더라도 100% 믿진 않았다. 그냥 '재미'삼아 보았다. 그러다가 결혼 후 철학관을 다니는 시댁 덕에 가끔 같이 가서 점을 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최근 형님이 어느 사주 보는 곳에 가서 조카들 사주를 보고 왔는데, 거기서 둘째 딸을 무용시켜보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바로 둘째 딸을 무용학원에 등록해서 보내고 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온 남편은 우리 아이들도 한번 봐보자며 나에게 전화번호를 주고는 사주 보고 오라고 했다. 사실 나는 사주를 '재미'로 보는 사람이기에 거부감은 없었고 조금 궁금하기도 했다. 나는 그곳에 전화를 걸어 약속 날짜를 잡았다.


 강남 테헤란로에 위치한 그곳은 워낙 인기가 많아서 약속 잡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평일 9시에 예약을 해서 아이들에게는 알아서 등교하라고 하고 급히 집을 나섰다. 이런 강남 한복판에 사주 보는 곳이 있나?라고 생각하며 거우 빌딩 숲 사이에서 간판을 찾았다. 나는 남편이 다닌 철학관을 상상하고 갔지만 실제로 내가 간 그곳은 그냥 작은 사무실 같은 곳이었다. 나는 9시 땡 하고 상담실에 들어가 상담을 시작했다.


 가기 전에 우리 가족 모두의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각까지 전달해주었기에 대략적인 기본 정보를 바탕으로 상담을 했다. 어차피 간 김에 두 아이 사주를 다 보고 싶었지만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만 봐준다고 하셔서 할 수 없이 큰아이 사주만 보았다. 대뜸 나에게 질문을 하셨다.


"어디 사세요? 혹시 이사 가실 생각 있으신가요?"


 현재 나는 소위 말하는 교육 1번지에 살고 있지는 않다. 나의 대답을 듣고는 어디로 이사갈거냐며, 이사 갈 계획이 있다면 미리 알려주면 어느 학교가 내 아이와 궁합이 맞는지 봐준다고 한다. 그러면서,


"강남에 오셔서 공부해도 좋으세요."


 아니, 솔직히 강남, 특히 대치동에서 공부 안 시키고 싶은 부모가 얼마나 될까? 여력만 된다면, 그리고 아이도 공부를 곧잘 한다면 강남에서 학교를 보내고 싶어 하는 부모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저런 틀에 박힌 대답을 하셔서 솔직히 조금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런 곳에서 '학생 사주'라는 간판을 내걸고 아이들 진로 사주를 봐주는데, 이곳에 와서 사주 보는 엄마들은 다 어떤 마음으로 올까? 아무래도 강남의 학구열 높은 엄마들이 와서 자기 아이 진로를 결정하려고 보러 오지 않을까? 그때부터 나는 '내가 올 곳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분은 아이의 성향을 이야기하면서 어떤 전공이 아이에게 맞는지 하나하나 조목조목 짚어주었다. 정말 신기했다.


"물리학은 안 맞고요 화학과는 맞아요. 경영은 안 맞지만 경제학은 맞아요. 전자 기계 쪽은 아니지만 건축 설계 쪽은 맞아요. 교육, 복지, 심리는 아니지만 언론, 외교는 맞아요."


 아니 이렇게 거의 모든 전공을 나열하다시피 하셨다. 그때부터 나는 머리 속아 하얘졌다. 그래도 일단 비싼 돈을 내고 들으러 왔으니, 뭐라도 적어보자 하고 열심히 받아적긴 했다. 그렇게 아이에게 맞는 전공을 알려주면서 대뜸 하는 말이.


"그래도 영재고 갈 정도는 아니에요. 국제중은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내가 언제 물어봤나?라고 의아하면서 얼마나 많은 엄마들이 와서 이런 질문을 했으니 이렇게 대사 외우듯 외우실까 싶었다. 그러면서 아이의 공부 성향에 대해 설명하면서 엄마가 조심해야  자세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차라리  대목이  들을만했다.


 약 50분간의 상담을 끝내고 나오니 그다음 분이 기다리고 계셨다. 1시간 단위로 계속 예약이 잡혀있는 듯했다. 얼마나 많은 엄마들이 와서 아이의 진로를 물어봤을까? 나는 이곳에서 어떤 대답을 기대했을까? 어차피 듣고 싶은 대로만 이해하고 받아들일 텐데... 집에 오는 길이 조금 씁쓸했다.


 사교육 1번지에서 이렇게 아이들의 진로 사주를 봐주는 곳의 목적은 단 하나일 것이다. 내 아이가 어느 동네 학교를 가면 공부를 잘하게 될지, 영재고를 갈 수 있는지, 서울대 무슨 과라면 갈 수 있을지... 안 봐도 그분의 이야기 흐름만 봐도 이해가 되었다. 사주를 믿는 사람은 그분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것이다. 과연 사주대로 아이들은 부모가  원하던 대로 다 이루어졌을까? 나는 그것이 궁금하다. 물론 어느 정도 아이의 성향이라는 것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의대를 단 한 번도 꿈꿔본 적이 없는 것처럼, 우리 아이들도 아마 전혀 생각조차 안 해본 직업군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게 다일까? 그렇게 대학의 정형화된 전공만으로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도 틀에 박힌 직군만이 존재할까?


 오늘 다녀온 이야기를 남편에게 하니 사교육을 싫어하는 남편은 사주를 믿음에도 불구하고, 조금 부정적으로 내 이야기를 받아들였다. (내가 부정적으로 말해서일지도 모르겠다.) 다시 한번 느꼈다. 나는 사주를 정말 '재미'로만 봐야 한다는 것을. 결국 인간은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그냥 나는 우리 아이 있는 그대로를 믿기로 했다.


 비싼 돈을 내고 사주를 보고 오고 난 후 나는 아들에게도 들은 대로 (살짝 필터링하고) 이야기해주었다. 아들은 시큰둥하다. 초등학생이 어떤 전공이 있는지도 잘 모르는 것이 당연하니, 더 그랬을 것이다. 마지막에 아들에게 말했다.



엄마는
네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찾아
네가 행복한 삶을 살길 바래.
천천히 우리 같이 찾아보자.

엄마도 이제 마흔 앞두고 새로운 꿈이 생겼잖아?
엄만 지금도 안 늦었다고 생각해.
그러니 너도 천천히 생각해도 돼.


 그러자 씨익 미소짓는 아들. 나는 그 미소를 지켜주고 싶었다.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내가 바라는 것은 그것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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