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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emi May 02. 2022

초2 딸의 사생활

 요즘 초등학생 아이들 중에는 휴대폰이 있는 아이들이 많다. 우리 아이들도 최대한 늦게 사주고 싶었지만, 일을 하다 보니 전화기라도 있어야 아이들과 연락이 닿을 것 같아서 초등학교 2학년 딸에게 올해 처음으로 폴더폰을 하나 사줬다. 처음부터 휴대폰의 용도는 엄마와 연락을 하기 위함이라고 말을 하기도 했고 폴더폰의 화면은 매우 작아서 무언가를 보기에는 불편하기도 하다. 그래서 다행히 딸은 전화 및 카톡용으로만 휴대폰을 사용한다.


 친구들 중 카톡을 하는 친구들이 제법 있어서 전화번호를 종이에 적어서 서로 교환을 하면 집에 와서 엄마에게 등록해달라고 한다. 대부분이 아는 동네 친구들이므로 카톡 등록을 해준다. 아직은 어려서인지 카톡을 자주 하지는 않지만 간혹 친구들이랑 연락한다고 카톡을 하곤 한다. 그리고 회사 간 아빠에게도 사랑한다는 류의 이모티콘을 남발하여, 아빠의 사랑을 독차지하기도 한다. 그리고 엄마 빼고 아빠와 아이 둘이 단톡방을 만들기도 했다. 서운함보다 '오, 이런 것도 만들 줄 아네?'라며 기특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말 요즘 아이들의 카톡은 텍스트로 대화하기보다는 이모티콘으로 모든 대화를 한다.

"어디야?"

"뭐해?"

"심심해"

"놀자"

등의 이모티콘으로 아이들은 몇십 개의 대화를 한다.


 어느 날, 딸의 카톡을 우연히 보다가 '비밀 채팅'을 발견했다. 이런 기능은 또 어떻게 알았지?라고 생각하며 무심코 클릭했다. (살짝 떨리기는 했다.) A라는 여자 친구와의 대화였는데, 내용인즉 A가 어떤 남자 친구를 좋아하는데 어떻게 고백하면 되는지 우리 딸에게 상담을 하고 있는 내용이었다. 참고로 우리 딸은 오빠가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세상 모든 남자가 자기 오빠 같은 줄 알고 싫어한다...) 그런 우리 딸에게 A라는 친구는 고백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 딸의 반응은 시종일관

"..."

"응???"

으로 대답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우리 딸보고 A라는 친구가

A: 야, 지금부터 네가 걔(좋아하는 남자 친구)인 것처럼 연기하는 거야. 액션!!

    "있잖아... 나 너 좋아해"

딸:..... 그래?

A: 컷! 야, 그렇게 대답하면 어떻게!

딸:.... 응???


 그리고는 A라는 친구는 

"안 되겠다, 유튜브로 남자한테 고백하는 방법 검색하고 올게"

라며 카톡 대화가 끝이 났다.


너무나 진지한 아이들의 대화에 미소가 절로 나왔다. 그 와중에 전혀 공감 못하는 내 딸이 안쓰럽게도 했다. 한 번이었지만 딸의 카톡을 몰래 본 나는 잠시 죄책감을 느끼고는 그녀의 사생활을 앞으로는 지켜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나에게 판도라의 상자가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초2 정도 되니까 친구관계가 1학년 때와는 달리 조금 밀도가 높아진 느낌이 든다. 4시 정도부터 놀이터에 나가면 저녁 7시가 다 되어서야 들어온다. 신나게 놀고 온 만큼 집에 와서는 허겁지겁 저녁을 먹으며 늘 먹던 밥양보다 2배는 더 먹는다. 그렇게 얼굴에 삶의 '충만함'으로 가득한 딸을 보는 것이 난 좋다. 딸은 일기장이 3개 정도 되는데 하나는 공개할 수 있는 일반적인 일기장, 또 하나는 나의 감정만 적는 감정 일기장,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기장이 어디에 있는지 본인만 아는 비밀 일기장. 뭘 그렇게 하고 싶은 말도 많고 반대로 숨기고 싶은 말도 많은지, 늘 뭔가를 쓰느라 바쁘다. 비밀 일기장은 본인도 여기저기 숨겨 놓느라 바빠서 그런지 가끔 비밀 일기장을 어디에 두었는지 까먹어서 나에게 묻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일기장을 찾을 리 만무하다. 그렇게 조금씩 내가 모르는 딸의 사생활이 하나 둘 늘어간다.


 딸의 사생활을 너무 존중한 나머지, 가끔 큰코다치는 일도 종종 있다. 공부는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잘 챙겨주지 않았는데, 어느 날인가 담임 선생님께 "수학 문제집 좀 사서 집에서 풀어보세요"라는 말을 듣고 딸의 수학 계산 실력을 확인하고는 적잖게 놀랐다. 그 정도는 당연히 하는 줄 알았는데...


"엄마, 나도 수학 문제집 사주세요"


 아이 입에서 나온  말을 듣고 바로 주문을 했다. 처음에는 자기는 바보라서 수학을 못한다고 징징거렸는데, 하나하나 같이 풀어가니 어느새 자존감이 회복되었는지, 퇴근한 아빠를 보자마자

"아빠, 나 이제 수학 엄청 잘해요!"

라고 자랑하는 것이 아닌가? 다행이다, 자존감이라도 높아서.


 그리고 어느 날은 학교 알림장에 매일 30분씩을 책을 읽고 부모님 사인을 받아오는 란이 있는데 오랜만에 알림장을 가져오더니 사인해달라고 했다. 정말 오랜만에 사인을 하네?라고 생각하고 지난 알림장을 보니, 부모님 사인란에 딸이 직접 내 사인을 따라서 적어둔 것이 아닌가?? 큰아이 때는 단 한 번도 이런 일을 겪지 않아서 당황했다. 왜 이렇게 이 아이는 여우 같은 짓을 할까?라고 생각하며 딸을 불렀다. 나는 딸에게 '너는 엄마와 선생님을 속인 것이다. 알림장에 엄마가 사실대로 다 적을 테니 선생님께 보여주고 와라'라고 말하니 엉엉 우는 것이다. 딸은 담임 선생님을 정말 정말 좋아한다. 그러니 얼마나 부끄러웠을까.

"(울면서) 엄마, 제가 너무 욕심냈어요. 잘 보이고 싶었어요... 근데 선생님한테 말 안 하면 안돼요?"

"제가 정말 나쁜 아이예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난 내일 망했어... 내일이 안 왔으면 좋겠어"


 그러나 결국 다음  어제의 일을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선생님이 괜찮다고 다음부터 그러지 말라고 하셨다며 웃으며 돌아왔다.

"역시 우리 선생님은 착해!"

라며 웃는 딸. 세상 무너질 것처럼 엉엉 울면서 걱정하던 딸은 온데간데없고 해맑게 웃고 있는 딸. 나만 너무 심각하게 생각했구나, 하고 한 번은 봐주기로 했다. 아직까지는 이 정도면 애교지, 라며 나를 위로했다. 이렇게 점점 아이가 크면 클수록 이렇게 내가 모르는 아이만의 세계가 더 많아지겠지? 내가 모르는 딸의 사생활도 점점 늘어날 텐데,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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