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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emi May 16. 2022

종이 인간

내가 종이 인간이라고 느껴질 때

 가끔 내가 종이 인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구겨진다.


 가끔 내 자신이 꼬깃 꼬깃 구겨져있음을 느낀다. 하루 종일 일 하고 와서 아이들 밥 챙기고 집안일 하고 나서 처음으로 누웠을 때. 내 몸은 너덜 너덜. 구겨진 내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가끔 어른임에도 불구하고, 또는 부모임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실수를 아이들 앞에서 했을 때 (특히 아이들에게 주의를 줬던 것들을 내가 저지르고 있을 때). 내 체면이 구겨진다.

 밟힌다.


 가끔 내 기분 또는 감정이 밟히는 순간이 있다. 전혀 내 감정을 배려하지 않은 체, 말을 쏟아 붓는다. 하고 싶은 말을 늘어 놓는다. 그 때 나는 밣히는 것 같다. 그냥 무참히 나를 밟고 지나간다. 문제는 자기가 무언가를 밟았다는 것 조차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느낌조차 없는 것이다.


 녹는다.

 가끔 억눌렀던 감정들이 폭발할 때가 있다. 이유없이 별일도 아닌 일에 눈물을 펑펑 쏟는다. 하도 울어서 마치 내 몸이 종이 쪼가리처럼 젖어서 녹아 버린다. 흔적도 없이. 서서히 녹는다. 내 눈물 때문에.


 다행히 나는 찢어 진 곳은 다시 붙이고 젖은 곳은 말려 되살아난다. 구겨졌던 부분은 다시 잘 피면 된다. 밟혔더라도 다시 일어서면 된다. 그렇게 나는 다시 재생된다. 어쩌면 인간은 다 종이 인간일지도 모른다. 찢기고 구겨지고 밟히더라도 다시 오리고 붙이고 말리며 다시 살아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다시 재생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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