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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emi May 23. 2022

스펀지 같은 B형 뇨자

내가 만났던 남자 중에 제일 특이한 남자 이야기

 나는 B형 여자이다. 흔히들 아는 B형의 성격을 모두 갖췄다. 화를 내면 불같이 화내고 다음 날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쉽게 리셋된다. 뒤끝이 없다. 화만큼이나 눈물도 많고 다혈질이기도 하다. 좋게 말하면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매력적'이라는 칭찬을 듣기도 한다. 그리고 분위기를 잘 주도하고 약간의 유머도 갖춰서, 어딜 가도 리더 역할을 잘하기도 한다.

 나는 여태껏 AB형 남자들과 연애를 했다. 나를 좋아한다는 남자들도 AB형 또는 B형이  많았다. 내 성격도 무난하지 않은 모난 성격이었는데 늘 내가 사귄 남자 친구는 나를 뛰어넘는 존재였다.


"넌 왜 이렇게 특이한 애들만 만나냐"


 남자 친구를 소개해줄 때마다 친구들한테 들었던 이야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A형 남자들에게 인기가 없었고 기억을 더듬어보니 딱 한번 A형 남자가 나 좋다고 쫓아다녔던 기억이 있다. 근데 그 남자는 내가 보기에는 매력이 1도 없었다. 나는 늘 뭔가 눈에 튀고 특이한 남자들에게 마음이 끌렸던 것 같다.



 회사를 다닐 때의 일이다. 3년 차쯤 되었을 때 후배 신입사원들이 들어왔다. 점심시간만 되면 여직원들은 신입사원들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험담을 시작했다.


"야, 신입사원 중 회계 담당하는 애, 너무 특이하지 않니?"

"맞아 맞아, 조용한데 뭔가 특이해."


 그중 회계 담당하는 신입사원은 늘 여직원들 사이에서 씹힘의 대상이었다. 일단 얼굴 자체도 눈에 튀는 데다가 목소리도 특이했고 하는 행동 또한 조용한데 눈에 튀었다. 나는 그 당시 경영관리 쪽 일도 맡고 있어서 신입사원에게 알려줘야 할 일들이 간혹 있었다. 그러나 그 신입사원은 워낙 직원들이랑 섞이지도 않았고 말수조차 많지 않아서 그런지 베일에 쌓여 있는 존재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신입사원이 "선배님 밥 한번 사주세요."라고 말해왔다. 솔직히 그다지 교류가 없던 사이었기에, 회사 다니는데 고민이 있나 싶었다. 그렇게 퇴근 후 신입사원과 만나 가로수길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 식당은 지금 생각해보면 소개팅 장소 같은 분위기였다. 그리고 저렴하지 않은 곳이었다. 장소는 그 신입사원이 정했지만, 나는 신입한테 밥 얻어먹기는 싫어서 "계산은 제가 할게요."하고 쿨하게 말했다. 사실 그렇게 계산을 내가 한 것도 그 당시에는 나 나름대로 선을 긋는 행동이었다.


 '이것은 남녀 간의 데이트가 아니다. 선후배끼리 저녁 한 끼 먹은 것이다.'


 그러나 그날 이후 그 신입사원은 퇴근 후 잠깐 보자는 연락을 자주 해왔다. 그렇게 만나다가 결국 나는 그 신입사원과 사귀게 되었다. 세상에서 제일 하면 안 된다는 그 사내연애를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여직원들 사이에서 제일 도마 위에 자주 오르는 그 신입사원과 말이다. 그러니 나는 절대로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연애를 해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슨 정신으로 연애를 했나 싶다.


 그렇게 1년이 지난 후, 다행히 신입사원은 이직을 하게 되었고 그 신입사원이 이직하는 다음 날 나는 친한 동료들에게 사실은 그 신입사원과 사귄다고 밝혔더니 발칵 뒤집혔다. 모두가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직도 그때 나를 이상하게 쳐다본 그 눈빛들을 잊을 수가 없다.

 나와 오래 알고 지낸 고등학교 동창들이 하는 말이 있다.


"야, 네 남자 친구들 정말 다 하나같이 특이했는데... 정말 너네 남편이 최고인 것 같아."


 그렇다. 나는 그 특이하고 특이한 그 신입사원과 결혼을 해서 지금 살고 있다. 여전히 나는 남편을 특이하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AB형이 아니고 나와 같은 B형이라서 안심을 했다. 나랑 비슷하겠지, 이해할 수 있겠지. 그러나 아니었다.

 다행인 것은 남편도 자기가 특이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래서 연애 초기에 남편이 했던 말이 있다.

"나는 스펀지 같은 여자랑 결혼할 거야. 나를 쫙 빨아들이는, 그런 여자랑."


 특이한 B형 여자인 내가, 세상 특이한 B형 남자를 만나 스펀지 같은 여자가 되었다. 결혼 10년을 돌이켜보면 정말 나는 남편 자체를 스펀지처럼 다 흡수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B형 아들과 B형 딸을 낳았다. 가끔 아들과 딸에게서 남편과 나의 특이함이 느껴질 때가 있다.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고민된다. 앞으로 아이들은 또 어떤 배우자들을 만나게 될지 궁금하다. 특이하지 않고 무난한 사람을 만나길, 조심스럽게 바라본다.


 지금도 나는 나의 남편을 흠뻑 빨아들이며 살고 있다. 남편 그리고 아이들까지도:) 나는 여전히 스펀지 같은 뇨자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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