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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emi May 30. 2022

나에게 '스물다섯,스물하나'의 이진오빠였던 앞집오빠

고3시절 나에게 대학생의 로망을 알려주었던 앞집오빠

 고3 때의 일이다. 다음(Daum) 사이트를 열었는데 쪽지 한 통이 와 있었다.


안녕? 반가워.

 자세히는 기억이 안나지만, 그 당시 아이러브스쿨 등이 유행하던 시기였고 이런 쪽지들이 가끔 오던 때이기도 했다. 보통은 그러한 쪽지를 다 무시했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쪽지에는 대답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쪽지를 주고 받았는데 알고 보니 같은 동네에 사는 사람이었다.

얼굴 볼래?

 고3인 딸이 인터넷 상에서 알게 된 남자와 만난다는 것을 엄마가 알면 까무라칠 일이다. 그러나 나는 그 당시 겁도 없이 그 남자를 만나러 나갔다.



너...??

 그 남자를 보자 마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우리 앞집에 사는 대학생 오빠였던 것이다. 그 남자도 놀라는 눈치였다. 당시에 이 일을 친구들에게 말하니 "야, 앞집오빠가 일부러 너 찾은거네!"라고 말할 정도의 놀라운 우연이였던 것이다. (친구들의 이 말이 내 마음의 불씨가 되었다.)


 앞집오빠에 대해 잠깐 설명을 하자면 앞집에는 아들만 둘 있는 가족이었고 얼마 전에 이사를 왔다. 내가 만난 그 앞집오빠는 H대 공대를 다니던 일명 엄친아였다. 얼굴도 하얗고 귀티가 철철 넘쳤다. 앞집에 산다는 이유로 가끔 우리엄마와 앞집 아줌마가 커피를 마신 것으로 안다. 아들 둘이 다 키가 컸고 (우리 집 딸들은 다 키가 작았다. 엄마를 비롯하여...) 공부도 둘다 잘해서 앞집 아줌마가 그렇게 아들 자랑을 끝없이 했다고 엄마에게 전해 들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자랑할 만한 아들들이었다.


 그렇게 나는 앞집오빠와 만나게 되었다. 마치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처럼 고딩이 멋진 대학생 오빠를 만났으니 어땠을까? 나에게 앞집오빠는 처음 만나는 '대학생' 오빠였던 것이다. 나는 그 당시 집앞 독서실을 다녔는데 앞집오빠도 시험기간이면 그 독서실을 이용했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독서실에서 공부하다가 휴게실에서 자판기 커피를 한잔 하는 사이가 되었고 가끔 시간이 맞으면 밤 12시 늦은 귀가를 함께 하는 사이가 되었다. 나는 12시 넘어서 집에 오는 그 짧은 거리도 무서워서 가끔 엄마를 부르곤 했는데, 앞집오빠와 귀가하게 되면서 엄마를 부르는 일이 없어졌다. 그렇게 밤늦게 같이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집에 같이 오고 바로 현관문 앞에서 헤어졌다. 다음 날 아침에 또 다시 교복을 입고 엘레베이터를 누르고 기다리고 있으면 앞집오빠와 마주치기도 했다.


  우리가 독서실에서 커피만 마시고 귀가만 같이 했을까?

  아니다, 나는 가끔 앞집오빠와 일탈을 했다. 고3이라는 신분을 잊고 영화도 같이 봤고 밤산책도 함께 했다.


너는 대학생 되면 뭐가 제일 하고 싶어?

 앞집오빠는 나에게 대학의 로망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대학의 축제 이야기, 동아리 이야기, 미팅 이야기 등등. 고딩인 나에겐 앞집오빠의 대학 이야기는 마치 엄마가 아이에게 들려주는 환상의 나라 이야기처럼 다른 세상 이야기였다. 앞집오빠는 늘 조곤조곤하게 내가 궁금한 이야기에 대해 대답을 해 주었고 내가 어려워하는 공부에 대해서도 잘 들어주었다. 그렇게 우리의 시간이 쌓이면서 나는 앞집오빠에 대한 마음이 점점 커져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앞집오빠는 나를 여동생처럼 잘 대해줬던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스물하나, 스물다섯'의 나희도처럼 그냥 풋풋한 나를 보고 웃고 기분이 좋아지는 그냥 딱 거기까지의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어른 남자의 마음을 고3 여학생이 알 턱이 없다. "나에게 잘해준다=나를 좋아한다"는 단순 논리에 입각하여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으로 결국 앞집오빠에게 고백을 했다.

나는 너를 그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미안해.

 나는 이사를 가고 싶었다. 어떻게 다시 앞집오빠와 얼굴을 마주할 수 있을까? 그 다음부터 나는 앞집오빠를 피해 다녔다. 현관문을 열 때 구멍으로 엘레베이터 앞에 앞집오빠가 있진 않은지 보고 후다닥 나갔고, 1층에서 집으로 올라가는 엘레베이터를 탈 때도 혹시나 앞집오빠가 엘레베이터에서 내리면 어쩌나 조마조마했다. 독서실 앞을 지날 때면 두리번 거리며 앞집오빠가 있나 없나 걱정하며 다녔다. 내 기억에는 그 후로 가끔은 연락을 했던 것 같으나 예전처럼 만나진 않았다. 아마 앞집오빠도 불편했던 것일까? 그렇게 불편한 사이로 지내다가 결국 내가 아닌 앞집오빠가 이사를 갔다.




 그렇게 다시는 앞집오빠를 볼 일이 없을 줄 알았다. 그렇게 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그러다 잠깐 친정 근처에서 살았는데  어느 날 친정에 갔더니 엄마가 나에게 말하기를,

야, 앞집애 남자애 기억나지?
걔, 결혼해서 신혼집으로 다시 우리 앞집으로 들어왔더라?

 뭐라고?? 앞집오빠가 결혼을 해서 다시 그 집으로 들어왔다고?? 즉, 내가 고3때 앞집은 이사갈 때 집을 전세주고 갔다가 아들이 결혼을 하니 그 집을 아들에게 줬다는 것이다. 정말 클라스가 다르다. 왜냐하면 그 당시 앞집오빠는 도곡동의 주상복합으로 이사를 갔다고 했다. 그리고 앞집오빠는 결혼을 해서 40평대의 대형평수로 신혼을 시작한 것이다. 나는 엄마의 말을 듣고 나서부터 행여나 친정에 갈 때마다 앞집오빠를 또 마주칠까봐 노심초사했다.


 거의 매일 친정집을 가던 시절이었기에 사실 안 만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앞집오빠보다 부인을 먼저 보게 되었는데, '귀티는 바로 이런 것이야'라고 온몸으로 말하고 있는 듯한 여자였다. 심지어 일하는 아줌마가 있었고 그 여자가 차에서 내리는데...넘사벽 외제차였다. 30대에 이런 대형평수에 살고 아줌마까지 써가며 넘사벽 외제차를 타는 저 여자 정도나 되야 앞집오빠를 만났구나...라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처음 앞집오빠를 만난 것은 공교롭게도 아이들을 줄줄 데리고 있을 때 집앞에서 만났다. 그 당시 앞집오빠는 퇴근 후 멋지게 양복을 빼입은 모습이었고 나는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매우 꼬질꼬질한 모습이었다. 나는 얼굴도 못 쳐다보았다. 어느 날, 내가 혼자 있을 때 집앞 골목에서 앞집오빠를 만났다.

잘 지냈어?

 올 것이 왔다. 나는 어색하게 처음으로 얼굴을 보며 '네...'라고 대답했다. 대답만 하고 나는 갈길을 갔다.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자꾸 피하게 될까? 사실 지금도 친정집 갈 때 마다 나는 두리번 거리게 된다. 습관처럼. 그래, 그냥 습관이다. 어느새 내가 몸에 베어버린 것이다. 이제는 당당하게 인사해도 될 법한데... 자꾸 그 아우라 때문인지. 나와는 다른 아우라가 앞집오빠에게 뿜어져 나와서인 것 같다.

풋풋했던 여고생 시절, 나에게 대학생활에 대한 로망을 알려준 첫 어른 남자, 앞집오빠. 여전히 그때 섣불리 고백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지만 언젠가는 당당하게 먼저 인사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남의 편도 모르는 이야기, 살짝 고백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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