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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emi Dec 09. 2021

대치 키즈로 자란 내가 대치동을 벗어난 이유


“엄마, 책! 책! 책!”


 졸린 눈을 비비고 시계를 보니 벌써 밤 12시가 다 되어갔다. 그러나 아들은 눈이 초롱초롱했다. 어디서 저런 에너지가 나올까, 낮잠을 너무 오래 재웠나. 나는 잠을 깨기 위해 자세를 고쳐 앉고 아들이 가져온 책을 읽어줬다. 아들은 마치 막 겨울잠에서 깬 아이처럼 집중해서 내가 읽어주는 책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사교육 일번지이자 교육에 관심 있는 부모라면 한 번쯤은 고민해 볼 만한 대치동에서 우리 부부는 아이를 낳았다. 그러나 아이가 입학할 때 즈음되어 대치동을 벗어났다. 대치동에서 이사하는 날, 부동산 사장님이 우리 부부에게 한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사모님, 언젠가 다시 대치동으로 돌아오실 거예요.”


 남들은 우리 부부를 보고 유별나다고 한다. 책을 왜 그렇게 많이 사서 읽히는지, 아이들에게 뽀로로를 보여주면 좀 편할 텐데 왜 하나도 보여주지 않고 엄마의 시간을 가지지 않는지. 왜 아이를 재우지 않고 책을 읽어 달라는 대로 다 읽어줘야 하는지. 당시 나도 그만둘까,라고 생각한 날이 많았다. 잠깐 영상을 보여준다고 큰일 날까? 책 안 읽혀주고 잔다고 바보가 되겠어?라고 내 안의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내가 다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던 것은 책을 가져오는 아들의 ‘눈빛’때문이었다. 


 우리 부부가 처음 책 육아에 대해 알게 된 것은 ‘푸름이’라는 아이의 책을 읽으면서부터였다. 푸름이처럼 우리 아이도 책 육아로 키우고 싶었다. 아이가 책을 벗 삼길 바랐다. 스스로 생각하며 자신의 주관이 뚜렷한 아이가 되길 바랐다. 우리 부부는 둘 다 일명 팔 학군에서 사교육을 받고 자랐으며 주입식 교육에 익숙한 세대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30대가 훌쩍 지나고서야 스스로 생각하는 법, 나의 삶을 주체적으로 사는 법 등을 깨달았다. 왜 우리는 나이 서른이 되어서야 깨달았을까? 그 이유는 아마도 우리의 유년 시절에 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질문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우리처럼 사교육과 주입식 교육을 시키지 말자고 굳게 다짐했다.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집에 책은 많았다. 그러나 그 책들은 모두 어른들을 위한 책이었다. 어렸을 적 책을 읽은 기억도 엄마가 책을 읽어준 기억조차 없다. 내가 책을 안 좋아해서일까? 내가 만화만 봐서일까? 동생이랑 하루 종일 노느라 책을 읽을 시간이 없었을까? 그래서인지 독서다운 독서를 한 것은 대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그렇게 ‘진짜’ 어른이 되고 나서야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되었고 그 대답을 찾을 수 있었다. 처음으로 무언가를 배우고 싶다고 느꼈고 배움의 즐거움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라는 사람과 마주했다.

 그래서 더욱 우리 아이들이 나처럼 살지 않길 바랐다. 그 누구보다도 간절했다. 어린 시절 나는 왜 학교를 가야 하는지 물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고 학교를 가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리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경쟁이 치열한 학원에 가서 밤낮없이 공부를 하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내 인생의 성공은 대학에 달렸다고 생각하며 대학에 입학했고 당연히 좋은 회사에 취업을 해야 내 인생이 완성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생각했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 후, 취직을 해도 계속 내 머릿속에는 물음표만 생겼다. 과연 이것이 내가 원하던 삶일까? 그 후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도 내 마음은 공허하기만 했다. 


 ‘그래서 너의 생각은 무엇이야?’라는 질문을 결혼하고 처음 남편에게 받았다. 지금껏 나에게 나의 생각을 물어본 사람이 없었다. 나 또한 생각을 깊이 해 보지도 않았다. 사교육 일번지에서 엄청난 돈을 쏟아부으며 자란 내가, 나의 생각이 없고 자신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어른이 된 이유는 생각하지 않고 부모가 시키는 대로 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푸름이’처럼 책을 어렸을 때부터 읽으면 스스로 생각을 하게 되고 책을 통해 간접 경험을 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나갈 것이라 생각했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책 육아에 매진했다. 


 그러나 쉽지 않은 길이었다. 부모가 책을 읽어준 적도 없었기에 아이와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할지 몰랐다. 결국 오랜 시행착오를 겪었다. 여러 책 육아 관련 책을 읽으며 그리고 다양한 동영상을 보며 조금씩 배워 나갔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TV를 없앴고 책장에 책을 꽂아두고 책을 장난감 삼아 놀 수 있게 자연스러운 환경을 만들었다. 그리고 아이가 원하면 만사를 제쳐두고 책을 읽어주었다. 처음에는 힘들었다. 보통 영상을 보여주며 엄마가 쉬는 시간을 갖는데 나에게는 쉬는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늘 집안일은 뒷전이었다. 아이가 낮잠을 자면 같이 자야 했다. 왜냐하면 아이는 새벽까지 책을 읽어달라며 잠을 자지 않았기 때문이다. 

 식당에 가면 아이들에게 휴대폰을 보여주는 가족을 자주 본다. 그러나 영상을 보여주기 시작하면 책을 읽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기에 식당 가서도 책, 장난감, 그림 그릴 재료 등 바리바리 싸서 다녔다. 그때 깨달았다. 아이들은 다 부모 하기 나름이라고. 영상 없이도 우리 아이들처럼 잘 앉아서 함께 식사할 수 있다. 다만 부모가 편하고자 영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영상을 보지 않던 우리 아이들은 어디를 가도 영상을 찾지 않고 스스로 놀잇감을 찾고 그 시간을 즐긴다.


 내가 자란 대치동에 사는 아이들은 영혼 없는 눈빛으로 무거운 가방을 끌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학원 뺑뺑이를 돈다. 나도 그랬다.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모든 학원 스케줄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짜여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모든 아이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아이들이 내가 왜 공부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부모가 시키는 대로 학원을 다닐 뿐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공부만 잘한다고 되는 세상이 아니다. 나의 생각, 창의성, 나만의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 나는 그 해답이 대치동이 아니라 책에 있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그 확신은 늘 책을 읽고 있는 우리 아이들의 눈빛을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나와는 달리 스스로 생각할 줄 알고 자신의 생각을 명확히 가진 우리 아이들. 그리고 배우고 싶은 것은 책을 통해 배우고 그 책에 흠뻑 빠져서 노는 아이들의 모습. 어릴 때 새벽까지 나에게 책을 가져와서 읽어달라고 했던 그 눈빛 은 지금도 여전하다. 나는 확신한다. 대치동 부동산 사장님의 말처럼 내가 절대로 대치동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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