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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emi Aug 01. 2022

1만 원의 여름휴가

3시간 동안 시원한 만화카페에서 휴가 보내기

 우리는 성수기 때 휴가를 다니지 않는다. 다행히 남편 회사는 휴가를 아무 때나 써도 되고 나 또한 묶인 몸이 아니라, 비싸고 사람 많은 성수기 때 여행을 다니지 않고 비교적 자유롭게 휴가를 다니곤 한다. 몇 년 동안 코로나로 인해 휴가 다운 휴가를 보내지 못한 사람들이 올여름에는 여름휴가를 만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바다도 수영장도 계곡도 모두 사람 반 물 반이라는 이야기를 기사를 통해 보았다. 모두가 여름휴가를 떠난 지금, 우리만 집에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때즘 아이들도 우리에게 물었다.


"엄마, 우리도 여행 가면 안돼요?"


 지금에 와서 어딜 간다는 것은 무리이다. 아이들에게 조금 나중에 여행 가자고 설득하면서도 살짝 마음이 아팠다. 아이들은 놀이터에 친구가 아무도 없으며, 연락을 하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나, 여행 왔어"라고 대답을 하니 속상할 만하다. 그러나 천성적으로 사람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고 정적인 것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지금 어딜 가고 싶은 마음이 1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 아빠가 오늘 큰맘 먹고 쏜다!"

"우와~ 어디요? 뭘 쏠 건데요??"

"만화방 플렉스!"


우리는 예전에 만화카페를 간 적이 있다. 사실 그때 4명이서 2시간 있었는데 5만 원 정도 나와서, 짠돌이 우리 부부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물론 2시간 있으면서 점심도 먹고 과자도 먹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처음 만화카페를 갔을 때는 5만 원이라는 돈이 크게 느껴졌다.


"아빠가 여름 휴가비도 나왔으니, 오늘 기분이다! 3시간 실컷 여름휴가 즐기고 오자!"


 그렇게 우리는 남들이 바다로 수영장으로 가는 여름휴가 피크인 주말, 사당역에 있는 만화카페로 향했다. 3시간에 1인당 1만 원. 초등학교 2학년인 막내에겐 3시간이 너무 긴 것이 아닐까? 집에 가자고 하면 어쩌지?라고 걱정을 하면서 3시간 있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선불제이기 때문에 3시간보다 적게 있는다고 환불해 주지 않으며, 2시간을 결재한 후 추가 1시간을 결재하면 돈이 더 드는 구조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무슨 일이 일어나도 우리는 3시간을 채워야만 했다. 물론 3시간이 넘으면 추가 금액이 발생한다.


 3시간+음료 쿠폰을 구매했기에 각자 시원한 음료도 주문할 수 있다. 우리는 각자 아이스커피와 아이스티를 마시면서 만화책 고르기에 나섰다. 개인적으로 가장 설레는 시간이다. 예전에 80년대 생이라면 모두가 기억하는 만화대여점. 나 또한 매일 출근도장 찍다시피 다녔다. 독서실 바로 밑에 만화대여점이 있었기에 독서실에 오고 가며 만화책을 빌리고 독서실에 가서 늘 만화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만화카페에 그때 읽었던 만화책이라도 보이면 얼마나 반갑던지. 나는 그렇게 몇 권의 만화책을 집어 들고 자리를 잡았다. 아이들도 각자 읽고 싶은 만화책을 골라 어느새 읽고 있었다.


 요즘 만화카페는 그냥 카페처럼 테이블에 의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신발을 벗고 누워서 볼 수 있는 작은 방처럼 되어 있다. 물론 그 방이 폐쇄적이진 않고 그 안이 다 들여다 보이는 구조이다. '짱 박혀' 만화책을 읽을 수 있게끔 되어 있다. 나도 아이들과 쿠션에 누워 만화책을 읽으니 옛날 생각이 더 났다. 집에서 엄마 몰래 침대에 엎드려 공부하는 척하면서 이불속에 만화책을 숨기던 그 시절이 말이다.

 

 모두가 휴가를 간 줄 알았는데 만화카페에는 젊은이들 거의 만석이었다. 다들 우리처럼 생각하고 만화카페에 온 것일까? 내가 20대 때는 만화카페가 거의 없어서 만화카페에서 데이트하지 않았는데, 여기 와서 보니 많은 연인들이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누울 수 있는 곳이다 보니 연인들이 다정하게 누워서 만화책을 보고 있었다.

"엄마, 저 커플은 만화책도 안 읽고 꼭 껴안고만 있던데?"

 내 눈에도 유독 들어왔던 사이좋은 커플들이 아이들 눈에도 들어왔나 보다. 쿨한 아빠가 대답을 대신해 주었다.

"너도 나중에 남자 친구랑 저럴 거야~"

 

 그렇게 1시간 정도 읽고 나니 슬슬 배가 고파지기 시작한다. 우리는 각자 메뉴를 고른 후 4개의 식사를 주문했다. 보통 가격은 6천 원 정도로 대단한 요리이기보다는 내가 맛 본 바로는 냉동식품을 조리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만화카페에서 먹는 그 냉동식품의 맛은 일품이다. 만화책과 함께 먹을 수 있어서일까? 우리는 순식간에 음식을 해치우고 다시 만화책 읽기에 돌입했다.


 엄청 길 것만 같던 3시간도 금방 지나갔다. 안타깝게도 나는 3권의 만화책을 겨우 읽었다. 옛날에는 1권을 금방 읽은 것 같은데 왠지 더 걸리는 느낌이다. 책을 안 읽는 사람이 아닌데... 책도 꾸준히 읽는데 왜 이렇게 안 읽히지 라는 생각을 했다. 노안 때문인가? 만화책의 말풍선에 들어간 글씨들이 너무 작아서 처음에는 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익숙해지는 데 한참이 걸렸다. 어쩌면 그 말풍선을 하나하나 읽는데 잘 보이지 않아 오래 걸린 것은 아닐까?라는 슬픈 생각을 했다. 그렇게 나는 3권의 만화책을 읽고 만화카페를 나섰다.


"만화카페의 수익률이 얼만지 궁금하지 않아? 1층이 아니어도 되고 요리하고 계산하는 매니저 하나 두면... 괜찮을 것 같은데?"


 노안 때문에 서글픈 내 마음도 모른 채 남편은 만화카페에서 나오자마자 또 사업 분석 중이시다. 왜, 이제는 만화카페까지 차릴 생각인가? 그래도 왠지 다른 빨래방이나 고시원보다 마음이 끌리긴 하다. 내가 그 매니저를 하면 실컷 만화책을 볼 수 있을 거라는 달콤한 상상을 잠깐 해 본다.


 우리는 6만 원 대의 금액으로 3시간 즐거운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시원한 곳에서 배 깔고 실컷 만화책을 보면서 맛있는 밥도 먹었다. 무엇보다 나는 밥을 안 차려서, 설거지도 하지 않아서 너무 행복했다. 예전에는 만화카페에서 쓴 돈이 아까웠는데 이 날만큼은 6만 원이 아깝지 않았다. 여름휴가 대신이라고 생각해서겠지? 노안 때문에 잠깐 서글펐지만 나름 나쁘지 않은 여름휴가였다. 조만간 남편이 또 만화방 플렉스 해주시는 날이 오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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