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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emi Dec 09. 2021

오늘 남편과 10년 재계약을 했습니다.

코로나 속 슬기로운 부부 생활

“오늘 가족 하브루타 시간에는 엄마 아빠가 결혼 재계약을 할지 말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거야.”


 아이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로 나와 남편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우리 집에는 수많은 계약서들이 있다. 결혼할 때 쓴 전세 계약서부터 내 집 마련했던 매매계약서, 그 외 부동산 투자를 하며 차곡차곡 쌓은 계약서들. 거기에 우리는 부부의 계약서를 하나 더 추가하기로 했다.


 작년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면서 남편이 100% 재택근무를 하고 아이들 또한 학교에 가지 못했다. 나도 집에서 일하며 아이들을 돌보고 매끼 밥을 챙겨주다 보니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다. 남편이 회사에 출근하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면 나는 내 본업과 부업을 넘나들며 일을 했다. 그렇게 각자의 시간을 보내다가 평일 저녁 또는 주말에 웃으며 만났던 우리 가족의 일상이 송두리째 흔들렸던 시기였다. 집에 아이들이 내내 있다 보니 시끄러울 수밖에 없었고 남편은 정신없는 집에서 일을 하다 보니 늘 예민했고 인상을 쓰고 있었다. 아이들은 그런 아빠의 눈치를 보며 하루하루 보냈다. 나는 나 대로 집에서 일하며 남편과 아이들의 끼니를 챙기느라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몰랐다. 그렇다고 스트레스를 풀 수도 없었다. 그 누구도 만나지 못했고 나가는 것도 두려웠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서로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되었다. 코로나 때문인지, 아니면 권태기였는지 모르지만 우리 부부는 매일같이 싸우며 결혼 10년 만에 위기에 부딪혔다.


 이렇게 서로가 안 맞았던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아마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던 것 같았다. 서로 코로나 때문에 예민해진 탓일까?라고 생각하기에는 우리 부부의 위기는 장기전이 되었다. 매일 같이 싸우는 우리 부부의 모습을 보고 아이들 또한 늘 불안했다. 이러다가 정말 이혼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결혼 10년 만에 처음 생각했다. 아마 남편도 우리의 위기가 그냥 잠잠해질 것 같지 않은지, 어느 날 나에게 한 권의 책을 건네주었다.

‘결혼 10년마다 계약하기’

 집에 계약서가 넘쳐나는데 우리까지 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처음 표지를 보고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지만 남편의 노력이 가상해서 한번 읽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책은 쉽게 읽혔다. 앞부분은 결혼하고 나서 10년은 이렇게 살아야 평화롭다는 내용이었고 후반부는 결혼 10주년 이후 부부의 삶에 관한 내용이었다.


 결혼 후 10년 동안은 각자 살아온 생활 방식을 맞추면서 가족 구성원을 늘리고 공동체를 꾸리는 시기이다. 사실 돌이켜보면 나 또한 결혼 후 롤러코스터라도 탄 것처럼 엄청난 속도로 달려왔다. 아이를 갖고 출산하여 키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육아로부터 풀려나면서 갑자기 시야에서 보이지 않았던 남편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 눈앞에 있는 남편은 나와 연애하던 그 남자가 아니었다. 자상함도 없고 로맨스와는 담을 쌓은 듯 보였다. 심지어 회사 일도 바쁜데 투자까지 하면서 주말에도 집을 비우기 일쑤였다. 점점 불만이 쌓이면서 나는 남편에 관한 관심을 끄게 되었다.


 남편이 건네준 책을 읽고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그동안 너무 내 생각만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 남편은 나에게 관심이 없을까, 연애하던 시절 남편의 모습은 어디 갔냐는 불평만 했다. 그러나 되돌아보니 나 또한 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아무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지금까지 우리는 서로 가정을 꾸리느라 바빴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컸기 때문에 새로운 부부 관계를 설계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미래와 남편이 생각하는 미래가 같은 방향을 보고 있는지 맞춰봐야 하는 시기이다. 만약 그 미래가 너무나 다른 방향으로 그려져 있다면 우리는 계약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부동산 계약을 할 때에도 내가 가진 자금으로 충분한지, 그리고 집 컨디션이 좋은지 확인한다. 그리고 집을 내놓는 사람 또한 계약이 성사되도록 청소도 해두고 집이 더 가치 있게 보이기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조건들이 딱 들어맞아야 비로소 계약이 성사된다. 어쩌면 부부 관계도 비슷하지 않을까? 부부라고 해서 마냥 모든 것을 다 이해해주고 받아들이면서 헌신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서로에게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며 앞으로도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야 한다. 그리고 나의 컨디션 또한 좋아야 하며 내가 제시하는 비전에 상대도 수긍해야 한다. 그래야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어 나갈 수 있다.


 무슨 부부 관계에 계약서까지 써야 하는지 이해를 못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오래 함께하다 보면 서로에게 무뎌지는 순간이 온다. 그럴 때 약간의 긴장감을 위해 이러한 부부 계약서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나 또한 남편이 이 책을 건네주면서부터 약간의 위기의식을 느꼈다. 이 사람은 당연히 나 아니면 못 살 거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더욱더 치열하게 제2의 인생에 대해 고민했다. 지금껏 남편에게 의지해왔던 나를 남편으로부터 분리시켜 나의 인생을 스스로 설계하고 있다. 나는 나대로의 비전, 그리고 인생 계획을 세우고 남편과는 교집합을 만들면 된다. 그 교집합에서 서로 생각하는 방향이 맞는다면 10년 단위로 재계약을 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서로에게 최선을 다할 것이고 자신도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할 것이다. 그러면서 서로의 인생을 응원해주고 지지해주면 된다.

“나는 엄마 아빠가 같이 살았으면 좋겠어요.”

“네, 저도요.

“그래, 너희들 의견은 잘 들었다. 아빠도 많이 고민해보았는데, 일단 10년은 더 살아보았으면 한다. 당신 생각은 어때?”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아이들까지 너무나 진지하게 우리 부부의 계약 성사에 임하고 있다. 우리 부부가 얼마나 많은 나날을 싸우고 고민을 거듭한 후 이렇게 계약서를 작성하는 이 자리에 앉아 있는지, 아이들은 아마 모를 것이다. 정말 계약이 성사되지 않으면 이혼하는 거냐며 둘째는 울먹이기까지 했다.

“엄마도 고민 많이 했는데, 일단 10년은 더 살아볼까 해.”

“와~~ 다행이다!”

 이렇게 우리 부부는 재계약이 성사되어 앞으로 10년은 함께하기로 하였다. 아마 앞으로도 우리 부부 생활은 그리 순탄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처음 맞이하는 중년의 모습을 서로 바라보며 제2의 인생을 다시 힘차게 걸어 나가야 한다. 여전히 우리 부부는 하루가 멀다고 싸우고 있지만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기에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서로에게 더 매력적인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나의 삶에 집중하고 있다. 물론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말이다. 10년 후 우리 부부의 재계약이 성사될지 여부는 아마 우리 부부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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