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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emi Dec 12. 2022

아이들과 함께 한 2박 3일 겨울 부산여행

서울 촌년, 해운대에 반하다

제2의 도시 부산, 대학생 때 친구들과 해수욕장에 놀러 간 것이 마지막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부산은 해운대 바닷가에서 청춘을 불태우며 뜨거운 여름날을 함께 한 곳,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게 내 기억 속에서 잊혔던 부산, 20년 만에 가족 워크숍으로 다시 부산 땅을 밟게 되었다. 흐릿 흐릿한 내 기억 속의 부산의 모습. 정말 180도 탈바꿈한 해운대가 나를 반겨줬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게 언제 적 일인데, 하며 지나간 세월이 아쉽기도 했다.


우리 가족의 숙소는 한화리조트. 아쉽게도 미리 오션뷰를 예약하지 못해, 정면이 아닌 측면으로 바닷가가 보였다. 처음에는 아쉬워했지만 이내 작은 창문 사이에서 보이는 바다마저도 너무나 낭만적이었다.




제일 먼저 간 곳은 흰여울 문화마을. 왜 이곳에 영화 촬영지인지, 가보면 한눈에 알 수 있다. 바다를 바라보며 작은 집, 가게들이 너무나 운치 있게 줄지어 있다. 곳곳 계단과 벽에 그림이 그려져 있고 가게들 또한 자신들만이 가진 예술성을 뽐내고 있다. 얼핏 보면 흰색과 파란색 지붕이 눈에 띄어 산토리니 같은 느낌도 든다.


천천히 바다를 보며 골목골목을 걷다가 마음에 드는 카페에 들어가 커피 한잔을 하는 여유. 서울에서는 느껴볼 수 없는 맛이다. 그리고 다시 걷다 보면 작은 기념품 가게가 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부산의 산토리니 같은 곳. 그리고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가면 떠오르는 영화의 명장면들이 있을 것이다. 특히 노을질 때 가면 좋을 것 같다. 루프탑이 있는 카페에 앉아, 커피 한잔 마시며 노을을 보면 모든 근심 걱정이 다 날아갈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제일 좋아했던 광안리 해수욕장. 해운대 해수욕장과 달리 광안리 해수욕장은 개인적으로 인공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수평선 대신 반짝이는 다리가 보여, 개인적으로 답답해 보이기도 했지만 사람들은 그 맛에 광안리는 가는가 보다. 주변에 수많은 음식점과 카페, 술집의 화려한 일루미네이션이 바다에 비추며 더욱 화려함을 자랑하는 광안리 해수욕장. 해운대처럼 길게 뻗은 해수욕장이 아니라 반원 모양으로 생겨, 한눈에 다 보이면서 안정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수온은 보통 2개월 정도 느린 탓인지, 아이들은 발을 담가도 추워하지 않았다. 한여름의 광안리는 (와보진 않았지만) 왠지 젊은이들로 인해 북적될 것 같은데, 지금은 겨울이라 그런지 너무 한적해서 너무 좋았다. 아이들은 1시간 정도 파도를 느끼며 신나게 노는 동안 나는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옆을 돌아보니 어떤 2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여성분이 모래에 풀썩 주저앉아 음악을 듣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퇴근 후 바람 쐬러 이렇게 매일 바다를 바라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왠지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을 것만 같았다. 매일 받는 스트레스를 이 파도에 다 흘려보낼 수 있지 않을까? 바다는 늘 우리를 위로해주려고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불교 신자도 아닌데 늘 여행을 가다 보면 그곳 유명한 절에 방문하게 된다. 부산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해동용궁사를 찾았다. 처음 해동용궁사를 봤을 때 눈을 의심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를 바라보며 절벽에 절이 있다니. 이곳에서 기도하면 왠지 정말 다 들어주실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일출로 유명하다고 하지만 낮에 가도 그 아름다움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바다를 등지고 서 있는 지장보살 등 부산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취였다. 경건한 마음으로 절을 드리고 나오니 마음이 쫙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여행 오기 전 회사일로 너무나 힘들어하던 남편도 이곳에서 기도를 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고 한다. 그래, 뭐 그렇게 힘들게 사니. 적당히 살자. 지금을 즐길 줄도 알아야지. 조금만 욕심을 내려놓게나. (ㅎㅎㅎ)


TV에서만 보던 해변열차라는 것 또한 부산에 와서 처음 타 봤다. KTX를 타고 부산에 오고 싶었으나, 여러 이유로 차로 오게 되면서 아이들이 제일 아쉬워했던 것이 기차였다. 그나마 해변열차를 타서 조금은 마음이 풀리는 듯했다.


송정에서 출발하여 미포까지 가는 열차로, 그냥 열차와 캡슐이 있는데 우리는 열차를 선택했다. 전 좌석이 창밖을 바라보며 부산 바다를 보며 달리는 열차로, 30분 정도 가면 송정에서 해운대가 있는 곳까지 도착한다. 자유이용권을 끊으면 중간에 몇 정거장에서 하차를 해도 된다. 기차를 타며 보는 부산 바다는 정말 아름다웠다. 운전을 하다 보면 잘 보지 못하는데 이렇게 기차를 타니 온전히 부산 바다가 잘 보였다.

미포 정거장에 내리면 바로 앞에 해운대가 보인다. 광안리와 다른 느낌으로 길게 해변이 보여 탁 트인 느낌이다. 아이들은 또다시 발을 담그고 놀며, 나와 남편은 커피 한잔을 사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힐링타임을 가졌다. 이곳에도 고층 아파트가 눈에 띄었는데, 또다시 궁금증이 발동한 나는 부동산 가격을 찾아보았다. 역시나! 한강뷰 아파트 가격이랑 같구나! 그래서일까? 여기 주민들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다 고급진 옷차림새, 흔하지 않은 강아지들을 데리고 슈퍼카를 타며 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사람들만 눈에 띄었을 수도 있다.


그렇게 해변열차를 타고 왕복을 하고 오니 반나절이 다 갔다. 덕분에 송정에서 해운대까지 기차를 타고 잘 놀다 왔다.


마지막 코스는 해상 케이블카. 아이들은 왜 이렇게 케이블카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여수 여행을 갔을 때도 케이블카를 탔고 얼마 전에 남산 케이블카도 타고 왔다. 이번에 해상 케이블카를 탄 후, '이제 케이블카는 그만 타자'고 약속했다.


해상 케이블카 중 바닥이 유리로 된 크리스털 케이블카를 탔다. 발 밑의 바다 색이 에메랄드 색이다. 처음에만 무섭지, 사실 계속 타다 보면 무섭지도 않고 그냥 케이블카와 다를 것이 없다. 아쉬웠던 것은 케이블카를 타고 가면 용궁 구름다리가 태풍 피해로 인해 복구 중이라 가지 못했다. 그 외에는 딱히 위에서 할 것이 없다. 아, 휴게소처럼 먹을 것만 많이 판다. 덕분에 거기서 아이들은 핫도그와 오묵 등 먹으며 아쉬움을 달랬다. 어린아이들이 가면 공룡 모형도 있고 작은 놀이터처럼 꾸며져 있어서 좋을 듯 하나, 초등학생 아이들에게는 조금 시시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바다를 매일 보며 사는 삶은 어떨까?


나는 2박 3일 내내 이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동안 수많은 바다를 다녀보았다. 우리나라 대표 동해바다인 강릉부터 시작해 속초, 그리고 서울에서 가까운 서해바다 인천, 그리고 저 멀리 섬나라 제주도. 그리고 해외 바다 또한 괌, 태국, 세부, 오키나와, 하와이 등 수영을 좋아하는 나는 바다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단 한 번도 바다를 매일 보며 사는 삶이 이토록 부럽고 그리웠던 적이 있던가? 제주도의 바다를 보면서도 너무 좋았지만, 1달 살기 정도면 될 것 같았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지금 사는 곳 또한 천이 흐르고 산이 보이는, 나름 서울 속에서도 숲세권이라 나름 만족하며 살고 있었는데. 한강 조망권의 아파트 또한 부러웠던 적이 없는데, 이상하게도 해운대를 바라보고 사는 부산 사람들의 삶이 궁금하고 부러웠다. 왠지 해변을 따라 조깅을 하고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해변도로를 달리는 차에서 여유가 느껴져서일지도 모르겠다.


부산에서 먹었던 회부터 시작해서 부산 어묵, 그리고 꼬막무침, 국제 시장 안의 순두부찌개, 부산 밀면 등 음식 또한 너무 다 맛있었다. 한 가지 못 먹은 부산 가래 떡볶이를 먹기 위해서라도 조만간 다시 부산을 찾을 예정이다.


해운대 매력에 빠져 극찬하던 나에게 부산에 사는 지인이 이런 말을 했다.

"해운대니까 좋아 보이는 거야. 다른 곳은 안 그래."

그래, 내가 어쩌면 서울의 한남동 고급 주택에 와서 구경한 후, 살고 싶다는 열망을 가진 것과 마찬가지일지도 모르겠다. 지인은 이런 말을 덧붙였다.

"분명 부산보다 서울이 일자리가 많아서 돈 벌기에는 서울이 더 좋겠지만, 돈을 쓰기에서는 부산이 더 좋아. 물가도 아무래도 서울보다 낫지. 그리고 집값도 서울 30평대 아파트 값으로 해운대 40평 이상의 아파트에서 살면서 매일 바다를 보는 삶을 살 수도 있지. 그리고 서울은 슈퍼카가 있어도 끌고 다닐 만한 곳도 없고 끌고 다니더라도 매연을 마시는 건데... 부산에선 해변을 바라보며 달릴 맛 나지. 요트도 하나씩 갖기 좋지. 바로 앞에 정박하면 되니까."


처음으로 간 부산 여행. 아이들은 실컷 바다에서 놀아서 너무 즐거웠다며, 떠나기 싫다고 아쉬워했다. 나 또한 2박 3일 동안 아무 연고도 없는 부산에서 살아 보고 싶다는 마음만 키우고 돌아왔다. 이번 부산 여행은 아이들이 가고 싶은 곳을 직접 유튜브를 보며 찾아서 일정을 짜서 떠난 여행이었고 2022년을 마무리하며 2023년을 앞으로 어떻게 보낼지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가족 워크숍이었다. 워크숍으로 새로운 여행지, 부산이라는 곳이 정말 안성맞춤이었다. 나에게 스스로 많은 질문을 던지게 해 준 여행이었던 것 같다. 부산병에 걸린 나는 아마 조만간 다시 부산을 찾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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