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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emi Dec 19. 2022

엄마들의 송년회

나는 누군가와 함께 할 때 더 빛이 난다

"여보, 나 이번 토요일에 하루 종일 송년회 모임이 있어. 일요일도 결혼식 있고. 아이들 부탁해요."


1달 전부터 나는 이날만을 기다려왔다. 이맘때만 되면 남편이 회사에서의 송년회, 재테크 모임에서의 연말 모임 등 다닐 때 나는 부러웠다. 늦은 시간까지 술자리를 하고 맛있는 레스토랑을 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던 남편. 나는 회사를 다니는 것도 아니고, 친구들도 아이들이 어리다 보니 송년회는 꿈도 꾸지 못했다. 그래서 나에게도 송년회 약속이 만들어지면서 이날만을 손꼽아 기다려왔다.


내가 몸담고 있는 킨더줄리라는 곳은 엄마들의 성장을 돕는 줄리님이라는 훈장님이 운영하는 공간이다. 나는 그곳에서 그림일기를 시작으로 그림 그리기,  고전 독서모임, 그리고 나의 하브루타 수업 등 소소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곳에서 송년회를 연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준비위원회를 하겠다고 손을 들었다. 소속감이 없던 나에게 킨더줄리라는 곳은 따뜻한 친정과 같은, 소속감을 주는 곳이었기 때문에 송년회 준비도 함께 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스텝이라도 해야 꼭 그날 무슨 일이 있어도 나갈 것만 같았다.


송년회 스텝을 하며 나는 너무 신나 있었다. 단톡방이 생기면서 줌 미팅에 참여하고 각자 아이디어를 내면서 준비해야 할 것을 분담했다. 송년회 장소 섭외부터 인원 확인, 식사 및 간식 준비, 장식 선택, 시간표 짜기, 초대장 만들기 등 4명의 스텝들이 서로 자신이 잘하는 분야를 뽐내며 하나하나 준비하기 시작했다.


20대 때 직장인 시절, 운동회 및 송년회 등을 준비하던 추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내가 전두 지휘하며 동료들과 함께 준비를 했었다. 퇴근 후 회의실에 모여서 함께 간식을 먹으며 준비하던 그 시절. 월급을 더 받는 것도 아닌데, 자진해서 즐겁게 운동회를 준비했다. 그 당시에는 계열사까지 다 오는 운동회라 사장님 등 VIP를 포함해 거의 100명 이상의 직원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자리라 스케일이 남달랐다. 사회자도 섭외해야 하고 경품도 어마 무시하게 준비해야 했다.


회사를 다니며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간 중 하나이다. 동료들과 함께 밤늦게까지 운동회 준비를 하던 시간, 운동회 당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무사히 마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추억. 그 기억 때문일까? 이번에 송년회 준비도 하면서 (물론 많은 준비를 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너무 즐거웠다. 그리고 다시 깨달았다. 나는 혼자 무언가를 할 때보다 누군가와 함께 합을 맞출 때 더 즐거워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때 더 나의 재능이 발휘된다는 사실을.


그렇게 1달 동안 준비한 킨더줄리 송년회 날. 하늘이 주신 선물일까? 아침에 눈을 뜨니 눈이 펑펑 오고 있었다. 걱정이 앞섰다. 경주, 서산 등 멀리서 오는 메이트님들이 무사히 올 수 있을까? 나는 서둘러 준비를 하고 일찍 집을 나섰다.

"엄마, 옷 이쁘다~ 엄마, 그 옷 꼭 나한테 물려줘야 해! 나 어른되서 입을 거니까!"

오랜만에 차려입은 내 모습을 딸은 내내 옆에서 졸졸 쫓아다니면서 종알거린다. 드레스코드가 검정이었던 송년회 모임에 입고 갈 옷을 찾아보니 너무 옛날 옷이라 그런지, 입을 수가 없었다. 내가 언제 원피스, 드레스를 입었던가. 이럴 때 아니면 옷 살일도 없을 텐데... 그래서 큰맘 먹고 준비한 옷이었다. 다만 날이 너무 추워서 그 위에 패딩을 껴입고 출발했다.


다행히 제일 먼저 도착하여 문을 열고 난방을 켰다. 준비해온 이름표를 세팅한 후 커피 한잔 하고 있으니, 하나 둘 메이트님들이 도착했다. 정말 신기하게도 원래 오시기로 한 20명이 모두 참석했다. 눈이 펑펑 오는데도 불구하고 멀리서 모두 귀한 발걸음을 해주셨다. 그렇게 우리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찐하게 엄마들의 송년회 시간을 가졌다.


날이 추워서 점심으로 무엇을 먹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준비한 김밥이 맛있다며 다 좋아해 주셨다. 퀴즈 타임을 준비하면서 부끄러움이 많으신 메이트님들이 문제를 풀지 않으면 어쩌지 걱정했으나, 걱정과는 달리 모두 열정적으로 임해주셨다.

"몇 년만의 마니또에요~ 너무 설렜어요."

초등학생 때나 하던 마니또. 우리 엄마들도 누군가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받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준비했는데, 다들 너무 좋아하셨다.


분명 모두가 나와 같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결이 맞는 사람들과 한 해를 함께 마무리하며, 남편처럼 나도 송년회를 갈 거야! 하고 집을 나오고 싶었을 것 같다. 평소에 입지 않는 블랙 드레스로 아름답게 꾸미고 손목에는 꽃팔찌까지 달았다. 우리는 마치 여고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내내 웃으며 수다 떨고 사진 찍느라 바빴다. 2022년의 마무리를 엄마가 아닌 내 이름 석자로 온전히 보낼 수 있었음에 감사한 시간이었다.


5시에 끝나고 집에 오니 남편은 녹초가 되어 있었다. 사실 딸아이가 아파서 오전에 병원에 데려갔고, 내내 열이 나는 딸을 위해 죽 끓여주고 얼음찜질해주느라 바빴던 모양이다. 그리고 중간에 또 빨래방에 일이 있어 눈길을 뚫고 다녀왔다는 남편. 너무 고마워서 부랴부랴 저녁 준비를 했다. 엄마들은 알 것이다. 꼭 약속을 잡으면 아이가 아프다는 것을. 1년에 1번 있는 송년회 모임. 그 정도는 매년 허락되겠지?


나는 벌써부터 내년 송년회가 기대가 된다. 올해 송년회는 처음 준비를 했기 때문에 아쉬움도 많이 남는다. 그래서 내년에는 더 빈틈없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시간을 통해 나는 또다시 잊고 있었던 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다. 나는 누군가의 엄마이기도 하지만, 내 이름 석자로 사는 것이 이렇게 즐겁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에게 이러한 따뜻한 소속감, 그리고 귀한 시간을 주신 킨더줄리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앞으로 이곳에서 나는 더 열심히 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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