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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emi Dec 05. 2022

캠핑의 악몽에서 벗어나다.

서른아홉 시리즈 (11)

"이번 주말에 캠핑 갈래?"


동네 언니의 캠핑 제안은 벌써 다섯 번째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 거의 주말마다 캠핑을 떠나는 언니네 가족. 그런데 뭐가 그렇게 싫은지, 언니의 대답에 난 늘 '아니, 다음에'라고 말했다.

그만하면 더 이상 안 물어볼 것 같은데, 올해가 가기 전에 또 언니가 나에게 물었다.


"이번 주말에 캠핑 갈래?"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에 나의 대답은 달랐다. 왜 이번에는 '나랑 별 보러 가지 않을래?'라는 달콤한 제안처럼 들려왔을까? 아마 지금 나의 마음이 뭔가... 허전했나 보다. 30대의 마지막 달을 보내고 있다는 비장함 때문이었을까.


나는 그토록 캠핑을 왜 싫어했는지, 이번 캠핑을 통해 깨달았다. 에어매트를 깔고 집에서 가져간 매트리스도 깔고 전기장판까지, 깔 수 있는 것은 다 깔고 밤에 누웠다. 그랬더니 어렴풋이 30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나는 일본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그런데 초등학교 4학년 즈음, 당시 아빠가 다니던 회사의 자녀 중 외국에서 사는 친구들을 한국에 불러 2주 함께 한국에 대해 알아보는 캠프에 가게 되었다. 글로벌 회사라 그런지 미국, 캐나다, 러시아, 중국 등 다양한 나라에서 주재원 자녀들이 다 한국에 모인 것이다. 2주 동안 함께 지내면서 한국에 대해 배우는 것이었는데, 왜 캠핑을 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그 당시 나는 시커멓고 뚱뚱했다. 그런데 같이 온 친구들은 서양 물을 먹어서 그런지, 분명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세련되었다. 그리고 멋들어지게 자기네끼리 영어를 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그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했다. 2주가 나에게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캠핑에 가서 잠을 자는데, 그 누구도 나와 자려하지 않아서 선생님이랑 잤던,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유난히 바닥이 딱딱했고, 밑에 깔린 돌이 온몸에 느껴졌다. 마치 뾰족뾰족한 돌 끝이 내 온몸을 찌르는 것처럼 아팠다.


한숨도 못 잤다. 아니, 2주 내내 거의 잠을 못 잤다. 나는 처음으로 부모와 떨어져서 긴 여행을 왔고, 처음으로 한국이라는 모국에 대해 배우러 왔는데, 나에게는 그저 '악몽'으로만 남았다. 그리고 조국에 대한 좋은 인상을 받지 못한 채, 다시 가족이 있는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때의 악몽 때문이었나 보다. 그토록 캠핑을 싫어했던 것이.


그러나 이번 캠핑으로 인해 그때의 악몽에서 조금 벗어난 것 같다. 같이 간 언니네는 워낙 캠핑을 좋아해서 그런지, 없는 물건이 없는 만물상이었다. 우리는 집에서 덮고 자는 이불 빼고 모든 것을 다 언니한테 빌려서 갔다. 심지어 텐트마저도! 캠핑 가서 해 먹으면 맛있는 요리를 다 만들어주며, 우리가 조금이라도 불편하지 않게 모든 것을 내주었다. 정말 내 몸 하나만 가지고 가서 2박 3일 너무나 잘 지내다 온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바닥에 딱딱한 느낌도, 뾰족한 돌이 나의 몸을 찌른 느낌도 전혀 느낄 일 없이 나는 아주 편안하게 두밤을 잘 수 있었다.


어쩌면 트라우마였을지도 모른다. 그 트라우마를 지금껏 열심히 피해 다녔다. 캠핑을 가고 싶어 하던 남편은 내 눈치를 보고 캠핑의자, 캠핑 테이블 등만 소소하게 구매를 했다. 그러나 이번에 캠핑을 가며 너무나 좋아하던 아이들, 그리고 '난 캠핑을 하니 스트레스 풀리네'라고 말하는 남편을 보고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모두가 좋아할 일이었다면, 그리고 나 또한 조금 더 일찍 악몽과 마주했더라면 조금 더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늘 캠핑을 가자고 조르던 남편도 나의 이틀 동안의 표정을 살피더니 앞으로의 캠핑의 가능성을 엿보았나 보다. "우리도 에어텐트로 사자, 살 거면."

예전의 나였다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을 텐데, "많이 비쌀 텐데~"라고 맞받아쳤다. 이렇게 가끔 캠핑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아주 조금, 개미만큼 들었다.


나이는 마흔을 앞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더 성장해야 함을 여실히 느꼈다. 나도 초등학생 아이들과 다를 것이 없다. 다 똑같은 인간일 뿐인데. 늘 아이들에게 새로운 도전을 하라고 강조했던 나 자신이 부끄럽다. 나부터 잘하자. 나나 성장하자. 그렇게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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