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aemi Mar 20. 2023

아이와 함께 일기를 써요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즐거움

 나는 일기를 쓴 지 650일을 앞두고 있다. 그리고 아들과 딸은 일기를 (매일) 쓴 지 19일이 지났다. 나는 궁금했다. 일기를 쓰면서 아이들이 느낀 변화는 무엇인지.


너네는 일기를 매일 써 보니 어때?


 나의 성향을 닮은 아들이 먼저 말을 꺼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적어 보니
누군가에게 위로받는 것 같아요.


 그렇다. 일기를 써 본 자만이 안다. 어른이 왜 일기를 써? 일기는 아이들이 학교 숙제로 쓰는 것 아니야? 그것은 일기를 꾸준히 써보지 못해서 모르는 것이다. 일기를 쓰기 시작하면 그만두지 못할 정도로 중독성이 있는데 말이다.


 일기에 무엇을 써야 할까? 처음 일기를 쓰게 되면 고민이 된다. 나의 경우는 매우 소소한 나의 일상, 나의 감정, 나의 생각을 담고 있다. 사실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흔히들 알려진 일기 중에는 안네의 일기, 난중일기, 그리고 병자록을 바탕으로 적은 호란일기 등이 있는데, 이들 일기도 사실은 소소한 그들의 일상과 생각을 담았을 뿐이다. 그렇게 나는 아이들에게 편한 마음으로 일기를 쓰고, 또한 학교 숙제가 아니니 아무도 너희들의 일기를 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떤 날은 한 줄만 써도 된다고 했고 그림만 그려도 된다고 했다. 그렇게 아이들도 날짜를 새어가면서 일기를 같이 쓰고 있다.


 어찌 되었든 나는 일기를 600일 넘게 쓰면서 느낀 점을 우리 아이들은 거의 20일 만에 깨달은 것이다. 그렇다, 일기는 '나와의 대화'시간이다. 처음에는 무엇을 써야 할지, 한참을 생각하던 시기가 있다. 일기를 쓰는데 30분이 걸리던 날들도 있었다. 그러나 일기를 매일 쓰다 보면 나에게 필요한 '나만의 일기 쓰기 방법'이 만들어진다. 내가 이렇게 일기를 쓰면 내 마음이 편안하네? 이렇게 쓰면 속이 시원하네? 깨닫는 시점이 온다. 그렇게 매일의 나를 기록하는 나만의 방법을 찾게 되면, 일기를 쓰는 일이 즐겁고 전혀 힘들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일기를 쓰고 나면 분명 일기를 쓰기 전보다 쓴 후의 내가 더 성장해 있기 때문이다.


 오늘 있었던 나의 일상 중 감사한 일을 적어본다. 아이들이 나에게 커피를 사다 준 일, 남편이 오다가 꽃을 주워온 일. 오늘 가장 속상했던 일을 떠올려 본다. 설거지하다가 그릇을 깬 일,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았던 일. 오늘 가장 기뻤던 순간을 생각해 본다. 처음 해 본 요리가 맛있어서 아이들에게 칭찬받은 일, 통역을 잘한다는 칭찬을 들었던 일. 이렇게 일상 중 내 마음에 머물렀던 순간을 적다 보면 작은 일도 감사하게 되면서 내일은 그 마음을 다른 누군가에게도 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 속상했던 일을 적다 보면 그때는 슬프고 화가 났다면 글자로 적으면서 나를 객관화해서 봄으로써 스스로 위로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다음에는 더 잘해보자!라는 에너지가 생긴다.


 바쁜 일상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잠시 멈춘다. 그리고 나의 일상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그러다 보면 보이는 것들,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그것을 생각에 머물지 않고 글로써 남긴다. 그렇게 글로 적은 내 마음, 내 생각은 휘발되지 않고 장기기억으로 넘어간다. 그렇게 나의 머릿속에, 나의 마음속에 오래 남는다. 각인된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꾸욱 꾸욱 연필로 적어 내려간다. 그러면 하루하루가 쌓여 언젠가 나에게로 빛으로 돌아온다. 그 빛이 나를 이끌어줄 것이다. 600일 넘게 일기를 쓰면서 깨달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도 학교 숙제인 일기 쓰기가 아닌, 자신을 빛으로 이끌어 줄 일기를 매일 쓰길 바란다. 다행히 아이들은 첫 발을 내디뎠다. 우리 아이들도 나처럼 매일 일기를 써서 함께 일기를 쓴 날짜를 비교해 가면서 서로 자극받아 오래오래 함께 일기를 쓰길 바란다. 그러다 보면 나 또는 아이들도 '어른의 일기'를 쓴 김애리 작가처럼, 20년을 일기를 써서 책도 쓰고 세바시에 나가서 강의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엄마, 김애리 작가는 18살 때부터 썼다는데
나는 11살부터 썼으니 더 많이 쓸 수 있겠네?

 함께 김애리 작가님의 세바시 영상을 보고 아들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내가 덧붙였다.

지금은 너랑 나도 일기 날짜가 600일 정도 차이 나지만, 나중에 누가 알아?
 너랑 나의 일기 날짜가 같아질지?

 600일을 어떻게 잡냐며 우는 소리를 하는 아들. 물론 나는 따라 잡힐 일 없을 거라고 확신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아들이 나를 따라잡길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함께 일기를 쓰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어른이라고 아이들보다 잘난 것 하나 없다는 것을 자식을 낳아 키워보니 알게 되었다. 나도 아이들처럼 선생님(또는 상사)에게 혼나는 것이 무섭고, 처음 무언가를 도전할 때 두렵다. 그리고 남들 앞에서 창피당하는 것이 싫고 내가 원하던 것을 못 이루었을 때 눈물이 나곤 한다. 나는 우리 아이들과 똑같다. 어른이라고 잘하는 것은 없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이들과 함께 고전 책도 읽고 필사도 함께 한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것이 즐겁다. 여기에 함께 일기 쓰기도 늘었다. 앞으로 아이들과 또 어떤 성장을 이룰지, 참으로 기대가 된다. 함께 성장하는 이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다.

작가의 이전글 삐- 삐- 삐- 경고등이 울리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