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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emi May 15. 2023

아들의 일기를 몰래 훔쳐보다

사춘기를 시작한 초등학생 아들을 보며

 초등학교 5학년이 된 아들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 우리 가족은 하브루타를 통해 소통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남편은 우리 아들은 사춘기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다르다. 3년 동안 아주 요란하게 사춘기를 보냈던 나의 경험에 따르면, 사춘기는 나도 모르게 이유 없이 나를 덮치는 자연재해와 같은 것으로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중학교 1학년이 되자마자 사춘기를 겪었다. 그 당시의 나는 사춘기인지도 모르고 보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기가 나에게는 사춘기였던 것이다. 말 잘 듣던 큰딸이었던 나는 사춘기를 3년 동안 요란하게 보냈다. 부모님의 엄청난 기대를 한 몸에 받고 공부만 하던 나는 학원에 간다고 하고 놀이터나 아파트 지하에 숨어 지냈다. 학원에서 아이가 오지 않았다는 전화를 받은 엄마는 온 동네를 다 찾아다니느라 바쁘셨다. 그 시기 나는 삐딱선이었다. 나는 그 당시 나처럼 외국에서 살다 온 친구들과 어울려 지냈다. 미국, 호주 등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온 친구들이었는데, 그 아이들은 나보다 조금 더 많은 것(?)에 눈을 빨리 떴던 친구들이다. 그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처음으로 19금 영화도 보면서 성에 눈을 떴다. 그뿐 아니라 3층짜리 상가 옥상에 올라가서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숨고 아파트의 다른 집 초인종을 누르고 도망 다니며 놀았다. 동네에서는 마치 몰려다니는 나쁜 아이들로 보였을 것이다.


 그렇게 신나게 바깥에서 떠들고 놀고 온 나는 집에 와서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학원을 왜 가지 않았냐는 엄마의 말도 무시하고 아버지가 퇴근하고 집에 오시면 방문을 잠그고 들어갔다. 화장실에 있는 부모님 칫솔은 다 던져 버리고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렇게 3년을 아주 요란하게 사춘기를 보내고 마치 거짓말처럼 고등학생이 되니 예전의 나로 돌아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다. 가끔은 그때 그 친구들이랑 어울려서 그랬나? 싶기도 하지만, 그것은 남 탓일 뿐 분명 나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니다, 그냥 나에게 덮쳐온 자연재해였던 것이다.


그렇게 사춘기를 보낸 나는 우리 아이들이 사춘기를 겪을 것에 대해 예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늘 우리 엄마가 했던 말. "너도 똑같이 너네 애들한테 당해봐야 해."

 그래, 나도 당해야지. 그 말을 늘 되새겨왔다. 그런데 요즘 '그날'이 점점 다가오는 낌새가 보인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된 아들. 예전의 나처럼 눈에 띄는 변화는 아니지만 4학년때와는 다른 모습이 조금씩 보이고 있다. 자기 방이 있지만 자기 방에서 생활을 한 적이 없었는데, 요즘 부쩍 방에서 혼자 무엇을 하는지 모르지만 한참 머무른다. 아직 다행인 것은 문을 안 닫고 열고 있다는 점이다. 휴대폰이나 태블릿으로 무언가를 할 줄 알았지만 다행히 휴대폰과 태블릿은 거실에 있다. 뭐 해?라고 불쑥 방을 들여다보고 싶지만 참는다. 그냥 그 시간을 존중해줘야 한다. 왜냐하면 그 시절의 나도 그것을 원했으니까 말이다.


 워낙 말이 많지 않았던 아들인데 부쩍 더 말이 없어졌다. 미주알 고주말 학교에서 있었던 일, 친구 이야기 등을 잘했지만 빈도가 줄고 있으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본인의 감정을 잘 말하지 않게 되었다. 뭔가 말하고 싶은 것 같은 표정이지만 말을 하지 않는 순간들. 그 순간들이 부쩍 늘었다. 나는 그래서 생각했다. 그래, 지금은 묻지 말고 더 들어주자. 아주 귀하디 귀한 아들의 한 마디라도 더 귀 기울여 들어주자,라고 말이다.


 그리고 얼마 전, 정말 고의가 아니라 우연으로 아들의 태블릿을 볼 일이 있었는데 보지 말아야 할 판도라의 상자와 마주했다. 바로 아들의 일기. 아들은 일기를 태블릿에 적어 두었는데, 태블릿을 열자마자 일기장이 열렸다. 나는 3초 고민했다. 볼까? 말까? 나는 참을 수 없는 유혹에 넘어가서 결국 아들의 일기를 몇 개 훔쳐보았다. 그중 가장 눈에 띈 문장이 있었다.


"나는 원영(가명) 이를 잊을 수가 없다."


 첫 줄부터 나는 클릭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드라마의 요약본을 적었나? 눈을 의심했다. 내가 아는 아들은, 지금껏 여자 애들이랑 잘 놀지도 않고 말도 잘 썩지 않는 아이였다. 길을 같이 가다가 같은 반 여자아이를 만나도 인사도 하지 않고 귀부터 빨개졌다. 담임 선생님과 상담 가서 늘 물어보는 말이, "여자 친구들이랑도 이야기하나요?"였는데 늘 대답은 한결같았다.

  "남자 친구들이랑만 놀고 잘 이야기를 안 하더라고요."


 그러던 아들이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을 일기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사실 충격받은 내 모습에 더 충격받았다. 남편은 늘 '너는 다른 집 엄마처럼, 아들한테 왜 집착을 안 해?' '남들은 보통 아들이랑 사랑하는 관계처럼 굴던데 넌 왜 그래?'라는 말을 했다. 맞다, 나는 아들은 아들일 뿐 남자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물론 아들을 사랑하지만, 아들을 마치 '남자친구'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런데 그런 아들이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다는 글을 보고 그날 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것은 질투와는 다른 차원의 것이다.(아마도 그럴 것이다. 아마도.) 이제 아들도 남자가 되고 있구나,라는 약간의 서운함이 가장 큰 것 같다. 전혀 티가 나지 않았는데, 일기에 만큼은 정말 솔직하게 본인의 감정을 쓰고 있다는 점. 하긴, 나도 일기에는 온갖 이야기를 다 적었던 것 같다. 그래, 다행이다. 너무 여자를 멀리(?)하길래 살짝 걱정했는데, 우리 아들도 남자긴 남자네하며 조금 마음이 놓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또 하나 다행(?)인 것은 아들이 좋아하는 그 여자친구를 나는 안다. 그 친구가 성당을 다녀서 종종 봤기 때문이다. 이미 나는 50점 합격 점수를 줬다(ㅋㅋㅋ). 그래서일까? 성당에 잘 안 가려고 했던 아들이 부쩍 성당에 열심히 가려고 한다. 무슨 벌써 시어머니인 마냥, 성당에서도 그 친구에게 자꾸 눈이 가고 주책맞게 한 마디라도 더 건네보는 나의 모습이 우습기까지 하다.



 조우종의 라디오를 듣다가 어떤 시청자가 이런 사연을 보냈다.

"딸이 처음으로 남자친구를 데리고 오는데, 머리도 염색해야 하고 입을 옷도 없어서 걱정이에요."

 처음에는 왜 저래,라고 생각했지만 금세 생각이 바뀌었다. 그래, 왠지 모르게 공감이 갔다. 나는 안타깝게도 부모님께 사귀던 남자친구를 한 번도 소개한 적이 없다. 결혼할 사람, 한 명만 보여드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하지 못한 나의 잘못인지, 아니면 한 번도 데리고 오라고 말씀 안 하신 부모님 잘못인지. 나는 그 점이 매우 안타깝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이들이 만나는 이성친구를 더 오픈해서 만나길 바란다. 뭐 굳이 볼 필요는 없겠지만, 왠지 궁금할 것 같다. 이제야 그 라디오 시청자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나는 한 번도 해 본 적 없지만 우리 아이들이 만약 이성친구를 데리고 온다면 나도 같은 마음이 들 것이다. 성당에서 우리 아들이 짝사랑하는 그 친구를 대할 때의 내 마음도 비슷한 것을 보면 말이다.



 나는 다행히(?) 그때 한번 일기를 훔쳐본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사실 조금 충격을 받아서인지, 또다시 일기를 볼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들을 존중해 줘야지,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도 우연한 한 번의 기회(?)로 인해 요즘 아들의 마음을 알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스스로 위로해 본다. 마냥 아이라고 생각했던 아들이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 섭섭하기도 하면서도 기쁘다. 그리고 또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말한다. 곧 사춘기를 겪을지도 모르니 마음 단디 먹자고 말이다. 사춘기를 겪었던 나를 떠올리며 옆에서 조용히 기다려주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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