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aemi May 03. 2023

아빠, 이제는 나만 믿어!

부모님 이사 프로젝트의 위원장이 되다

딸아, 네가 위원장이 되어 엄마 아빠 이사 갈 집 잘 구해줘.
투자한다고 생각해.
어차피 엄마 아빠 죽으면 너네가 다 가지게 될 테니.


 1995년부터 지금까지, 약 30년을 한 동네서 사셨던 부모님이 큰 결심을 내리셨다. 당시에는 이 동네가 이렇게까지 개발될 줄 몰랐는데, 어찌어찌 살다 보니 대한민국 교육메카로 자리 잡으며 부동산 가격이 껑충 뛰었다. 누군가는 부모님을 보고 부러워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냥 30년 전부터 한 집에서 '살았을 뿐'이다. 이사 갈 생각도 하지 못하고 말이다.


 큰 딸이 결혼하고 아이를 봐줘야 해서, 그리고 둘째 딸도 결혼하며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살다 보니 어느덧 그렇게 시간이 흘렀던 것이다. 이제 손주들이 어느 정도 크니 더 이상 지금의 덩어리가 큰 집에 살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벌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각종 세금을 내느라 허덕이고 보험금마저 점점 오른다. 그리고 점점 집은 노후화되어 여기저기 고치느라 힘이 든다. 4인 가족이 살기에 충분했던 집이 이제는 두 분이 사시기에는 청소하기 버거울 정도로 크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제야 두 분의 삶을 돌아볼 여유가 생기셨는지, 아니면 이젠 정말로 노후를 생각해야 할 시기인지. 여러 이유로 30년 동안 살던 동네를 떠나시기 위해, 큰 딸인 나에게 미션을 던저주신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두 분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있으셨다. 아버지는 동네 따위는 중요하지 않고 최대한 저렴한 집을 원하셨다. 그러나 어머니는 따져야 할 것이 많았다. 일단 딸들 집이랑 멀면 안 된다, 손주들이 놀러 오려면 30평대 초반은 돼야 한다, 부엌이 넓어야 한다 등등. 그러다 보니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부모님의 의견. 절충시키는 것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우선 위원장이 된 나는 일단 어느 동네를  원하시는지 파악 후, 해당 동네 부동산을 손품을 팔아 먼저 정보를 취합했다. 그리고 부동산에 전화를 쫙 돌려 보았다. 그리고 하루 날짜를 정해 매물을 볼 수 있도록 세팅을 했다. 그리고 부모님께 오전, 오후 각각 보러 갈 집에 대한 정보를 드리고 관련 기사의 링크도 보내 드렸다.


 그렇게 부모님과 동생, 그리고 나는 해당 지역 부동산에서 아침 9시 50분에 만나기로 했다.

위원장님만 믿습니다~

 아빠는 나를 보자마자 위원장님이라 부른다. 어깨가 더 무거워지는 순간이다. 오전에는 숲세권에 해당하는 아파트를 둘러보았다. 지하철역이 있는 그 동네는 나 또한 아이들과 자주 가는 동네라서 지리는 빠싹했다. 사실 나도 언젠가 이곳으로 이사 오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던 동네이다. 산자락에 조용히 자리 잡은 동네여서 그런지 아파트마다 바람이 잘 통하고 뷰가 너무 좋았다. 부모님도 집도 깨끗하고 동네도 조용하다고 좋아하셨다.


아, 그런데 너무 조용해서... 심심할 것 같아. 뭐 하고 살지?

 평생 시내에서만 살던 부모님 눈에는 이곳에서 뭐 하고 살아야 할지 고민이 되나 보다. 지금 사는 곳은 버스 타고 코엑스나 롯데몰도 갈 수 있다. 그래서 종종 두 분이 점심 먹고 영화 보러 다니시는 것이 유일한 낙이셨다. 그러나 지금 본 동네는 사방이 산이다. 물론 옆에 도서관도 있고 주민센터도 있고 성당도 있고, 무엇보다 산이 가까우니 등산하면 되지!라고 나는 말했지만, 두 분 다 갸우뚱하신다. 4개의 매물을 보며 동네를 걸으며 임장을 하고 나니 1500보를 걸었다며 힘들어하시는 것 같아서, 바로 점심 먹으러 향했다. 산 밑이라 그런지 맛집이 많았고 그중 줄 서서 먹는 곤드레밥 집을 모시고 갔더니 엄지 척! 맛있게 드셔주셨다. 위원장인 나는 계산을 끝냈더니, "역시 위원장님은 다르네~"라며 부른 배룰 두드리시며 아빠가 내 어깨를 툭 툭 쳐주셨다.


 숲세권의 동네를 본 후 부모님을 모시고 내가 사는 동네로 왔다. 사실 우리 동네에 대한 나의 만족도가 높아서 한번 구경하시라고 모시고 왔다. 어차피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이 동네에서 살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 동네에서 사신다면 집값이 떨어질 염려도 없고 그렇게 시끄럽지도 그렇게 조용하지도 않은 곳이라 한번 보여드리고 싶었다. 물론 우리 집에 가끔 오시면서 어느 정도 동네에 대한 이해도는 있으셨다.


 사모님~ 502동에도 매물이 있어요~ 19층에요~


 헉! 내가 사는 동이 아니던가? 갑자기 아빠가 "좋죠~ 딸한테 김치 주러 가기도 편하고 허허허"라며 웃는 것이 아닌가? 엄마는 "에이, 딸이 불편해할 거예요~"라고 썩소를 지으셨다. 나는 마음속으로는 부모님이랑 같은 동에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티는 내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미 오래전에... 내가 출근을 해야 해서 큰아이를 봐주셨었는데, 그때 죄송스러운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또다시 뭔가 부모님에게 짐이 되고 싶진 않았다.


 숲세권 동네에 비해 우리 동네가 좋다며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시고는 집으로 돌아가셨다. 집에 도착하시고는 카톡을 보내셨다.

위원장님 덕분에~ 맛집도 가고~
 집도 보고~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약 10년 전. 신혼집을 구하기 위해 부모님을 모시고 집을 보러 다니던 때가 생각났다. 그때는 지금보다 부모님이 더 젊었던 것 같다. 아무것도 모르던 나를 데리고 부동산과 이야기하며 집을 자세히 보고 설명을 주시던 부모님이었는데... 지금은 역할이 반대가 되어 부모님이 나를 의지하고 계신다. 부모님의 작아진 것 같은 모습에 짠하면서도 어느덧 진짜 어른이 된 것만 같은 나의 모습에도 조금 놀라웠다. 이제는 내가 부모님을 챙겨야 하는 나이라는 것을 몸소 느꼈다.


 나이 마흔 인 딸네 집에 김치를 주러 자전거를 타고 30분을 달려오시는 아빠. 그리고 아직도 엄마표 장조림만 보면 환장하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장조림을 해 주시는 엄마. 여전히 나는 엄마 아빠의 철없는 딸이라고 생각했는데, 부모님의 이사를 통해 조금이라도 효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누구보다 기쁘다. 이제 시작이다. 어느 정도 동네를 둘러보았으니, 일단 지금 살고 계시는 집이 팔려야 한다. 그러고 나서 본격적으로 나의 실력을 발휘해야겠다. 이제부터는 부모님의 앞날을 챙겨드려야 한다는 것을 늘 기억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에바 알머슨에게 경의를 표하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