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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emi Dec 13. 2021

오늘도 내 영혼은 빨래방에 출근한다.

- 나는 TV 대신 CCTV를 본다.

 우리 집에는 TV가 없다. 다행히 나와 남편은 그리 TV 시청을 좋아하지 않기에 사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다. 그러다가 작년 우리는 처음으로 무인 빨래방을 열면서 본의 아니게 남들이 TV를 보듯이 CCTV를 시청하게 되었다.


 요즘 길을 가다 보면 편의점만큼 흔히 보이는 것이 무인 빨래방이다. 무인 빨래방을 한 번도 이용해 보지 않은 내가 무인 빨래방을 하게 된 계기는 ‘무인’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매력 때문이었다. 나는 아직 어린 자녀가 있고 본업도 따로 있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는 없었고 남편도 회사를 다니기에 무인 사업이 우리에게는 적합했다. 무인 빨래방을 하기로 마음먹고 몇 군데 프랜차이즈 영업 사원과 미팅을 가질 때만 해도 영업사원의 달콤한 말을 믿었다. “한 달에 500만 원의 매출이 나고 300만 원 이상 가져가실 거예요.” 그러나 그 숫자는 꿈의 숫자였다. 내가 실제로 무인 빨래방을 운영하면서 몇몇 점주님들과도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500이라는 숫자는 쉽게 나오는 숫자가 아니었다. 그래도 매일 매장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이 어디냐며 스스로 위로를 하고 있다.


 빨래방을 운영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 아이러니하게도 ‘무인’이라는 점이었다. 매장에 내가 나가지 않을 뿐 늘 CCTV로 지키고 있어야 했다. 무인이다 보니 CCTV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처음에는 TV를 켜 놓은 듯 CCTV를 켜 놓았었다. 손님이 들어오면 처음 오신 손님인지, 세탁기 사용을 힘들어하지 않는지 등을 보고 필요시 방송으로 안내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떤 손님이 쓰레기를 버리고 가면 혼자 화가 나기도 했고 빨래를 돌리지 않고 소파에 앉아서 수다만 떨고 가는 사람이 있으면 안절부절못했다. 그렇게 초창기에 24시간 CCTV만 보고 있었더니 정신이 이상해지는 것 같았다. 누군가를 계속 엿보고 있다는 느낌이 그렇게 스트레스가 될 줄 몰랐다. 몇 달 후, 매장에 동작이 감지되면 알림이 뜨는 기계를 하나 산 후 달았다. 손님이 들어오면 그때 알림을 보고 CCTV를 켰다. 진작에 그렇게 할걸 후회했다.


 무인 빨래방 점주들이 가입하는 카페가 있는데 거기서는 가끔 진상 손님 이야기로 이야기 꽃을 피운다. 무인 빨래방에서 갑자기 술판이 벌어지기도 하고 연인들의 애정 행각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매장 내 커피나 물티슈를 한가득 가져가는 손님들도 계신다. 또 날이 추워지면서 따뜻한 매장에서 노숙을 하는 분들도 늘어난다. 물론 동네마다 다르긴 하지만 한 두 번쯤은 모두가 겪는 일들이다. 아무래도 ‘무인’이다 보니 그런 것 같다.


 우리 매장에도 몇몇 불미스러운 일들이 있었다. 초반에 동네 고등학생들이 아지트처럼 가끔 와서 수다를 떨었다. 심지어 건조기 통에 들어가려고 했다. 그래서 바로 안내 방송으로 경고를 주었다. 하지만 며칠 후 다시 들어왔는데 잠시 내 눈을 의심했다. 어떤 학생이 전자 담배를 피우는 것이 아닌가? 정말 충격이었다. 그 장면을 본 남편은 매일 저녁, 퇴근하고 매장에 가서 잠복을 했다. 그 아이들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며칠 후, 그날도 남편이 잠복을 하고 있다가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매장 앞에서 그 아이들을 만난 것이다. 남편은 그 아이의 휴대폰을 뺏고 부모님 연락처와 학교 정보 등을 물어보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매장에 들어오면 경찰에 신고한다고 경고를 줬다. 다행히 그 이후 그 아이들은 우리 매장에 얼씬도 안 한다. ‘무인’이기 때문에 일어났던 일이다. 이러한 일이 일어난 후 더더욱 CCTV를 볼 수밖에 없었다.

 이 외에도 소소한 사건 사고들이 있었다. 동네 특성상 어르신들이 많이 계시는데 사실 잠깐 앉았다 가시는 것은 문제 되지 않는다. 처음에 남편도 ‘우리 빨래방이 동네 사랑방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런데 어느 주말 오후, 바쁜 시간 대에 할머니 두 분과 남자 한 분이 들어오시더니 가장 큰 소파에 앉으셔서 정말 4시간을 수다를 떨고 계셨다. 우리 매장은 10평 남짓의 작은 빨래방이기에 3명이 그렇게 소파에 앉아 계시면 빨래를 돌리는 손님들이 불편한 구조이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다른 손님들의 빨래를 막으면서 수다를 떨고 계셨다. 결국 남편이 불을 소등하고 ‘잠시 소방 점검으로 인해 불을 껐으니 잠시 후 다시 와주시길 바랍니다’라고 방송을 하고 나서야 나가셨다. 또 언젠가는 밤에 대리 기사 분이 매장에서 내내 엎드려서 잤다. 그런데 나가기 전에 CCTV를 한번 확인하더니 휴대폰 충전기를 슬쩍 가지고 갔다. 그 외에도 자기 집 쓰레기를 막 버리고 가는 손님, 분명 애완견 출입 금지라고 쓰여 있는데도 강아지를 데리고 당당하게 들어오는 손님 등. 모든 사람들이 다 나와 같은 마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나도 매장 운영을 한 지 1년 정도 지나니 예전보다는 CCTV를 덜 본다. 그럼에도 늘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시간대가 심야 시간대이다. 가끔 새벽에 빨래를 하시러 오는 여성분들이 계시는데 빨래방 손님이 아닌 남성분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불안해서 우리 매장에 안 오실 것이다. 그래서 새벽에는 더욱 알림에 귀를 기울인다. 물론 못 일어나는 날도 많다.


 무인 빨래방은 ‘무인’이기 때문에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결코 ‘무인’이 아니다. 내 몸이 매장에 없을 뿐, 영혼은 24시간 빨래방에 있는 느낌이다. 마음 같아서는 그 영혼도 빨래방에 안 갔으면 하는데 그게 잘 되지 않는다. 처음에는 이런저런 사람들 때문에 힘든 일도 있었지만 1년이 지나고 나니 어느 정도 진상 손님들은 걸러진 것 같고 나 또한 숙련이 되었는지 큰 불편함은 없다. 한 번은 매장 문을 이틀 닫은 적이 있었다. 알림도 오지 않고 CCTV를 보지 않아도 되었다. 그 해방감이 얼마나 컸는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내 삶에 얼마나 CCTV가 깊숙이 들어와 있었는지 실감한 이틀이었다. 나는 언제쯤 이 CCTV의 늪에서 빠질 수 있을까?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내 영혼은 빨래방에 출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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