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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emi Jun 26. 2023

"엄마, 출장 다녀올게"

 몇 년 만의 출장이던가. 아마 2019년, 춘천으로 통역 때문에 출장을 간 것이 마지막이었다. 5년 만에 나는 홀로 제주도로 출장을 간다.


 나는 엄마들의 성장유치원, 킨더줄리에서 리더를 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두 개 있다. 하나는 그림책을 갖고 하브루타로 대화하는 [마음수영], 그리고 또 하는 경제적 자유를 꿈꾸며 함께 부동산 책을 읽는 부동산 독서 모임 [부크부크]. 이 두 모임의 리더를 맡고 있는데, 킨더줄리에서 처음으로 워크숍을 열어 참여하게 되었다.


 여행의 클라이맥스는 사실 여행 전, 계획을 짜면서 시작된다. 나는 비행기표를 검색하며 이미 마음은 제주 함덕 해수욕장(그냥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해수욕장이다)에 가 있었다. 혼자 처음 가는 제주도. 처녀 때도 혼자 간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가방을 싸면서 나는 제주 오름에 이미 오르고 있는 것처럼 몸이 가벼웠다. 혼자 가니 짐도 별로 없을 뿐 아니라, 심지어 멋을 부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저옷 다 집어넣어 본다. (가져간 옷의 반도 못입었다는 것이 함정.)


 아침 9시 25분의 김포 출발 제주행 비행 편을 타기 위해 나는 새벽 6시에 일어나 세수만 대충 하고 택시를 탔다. 9호선 급행을 타기 위해 신논현역까지 간 후 거기서부터 지하철을 탔는데, 아침 출근시간이라 그런지 많은 사람으로 북쩍였다. 김포 공항에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와는 달리 다행히 그렇게까지 많지 않아 여유롭게 출국 심사까지 마쳤다. 나는 사실 김포공항에서 화장품이나 있음 사려고 했었는데 전혀 면세품이 없다는 것을 도착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정말 서울 촌년스럽다. 나는 커피 한잔을 사 들고 비행기가 날아다니는 창가에 앉아 숨을 돌렸다. 그 시간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전날부터 애들을 친정에 보내기 위해, 그리고 주말 동안 남편에게 부탁할 빨래방 일 등... 정신없이 챙겨주고 내 한 몸 비행기를 타기 위해 지금까지 정신없이 달려왔다. 커피 한잔이 내 몸 구석구석 퍼지면서 몸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그리고 내 첫 여행에 향기마저 더해 주었다.


 50분의 비행을 마치고 내린 제주도. 킨더줄리 워크숍을 가기 전에 나는 제주 사는 친구와 만났다.


뭐 하고 싶은 거 있어?

응, 있어! 나 바나나보트 타고 싶어!


 결혼 후 한번도 타본 적이 없던  바나나보트. 아이 낳고는 아이들 태우느라 내가 타고 싶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던 바나나보트. 그러나 제주의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를 보니 안 탈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꼭 그 친구와 바나나보트가 타고 싶었다.


 아주미 둘은 바나나보트를 타기 위해 이호 해수욕장까지 갔다. 우리는 종류가 다른 2개의 보트를 연달아 탔다. 타본 사람만이 아는 제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바나나맛이다. (웃음) 둘 다 필사적으로 바다에 빠지지 않기 위해 서로 꽉 붙잡으라고, 알아듣지도 못할 말로 소리 지르며 눈물 콧물 다 빼며 배꼽 빠지게 신나게 탔다. 다 타고 내리니 운전해 주신 기사님이 하시는 말.


술 드신 거 진짜 아니죠?


 우리가 술 취한 것처럼 보였나 보다. 무슨 말씀이세요, 저 아침에 커피 한잔 겨우 마셨는걸요.(ㅎㅎㅎ)



 제주 사는 친구 덕에 도민이 가는 맛집에서 배부르게 먹고 커피 한잔 후, 내가 좋아하는 이수 작가의 특별전을 보고 헤어졌다. 나는 다시 택시에 몸을 실어 킨더줄리 워크숍 장소로 이동했다. 사실 워크숍에 아이들을 데리고 와도 된다는 줄리님의 배려가 있었지만 나는 아이들을 친정에 맡겨 놓고 혼자 몸으로 왔다. 나 말고 다른 분들 중 아이들을 데리고 온 메이트님들도 계셨다. 그렇게 우리는 6명의 리더들과 아이들 3명이 함께 2박 3일 워크숍이 시작되었다.


 원래 워크숍이란 그런 거 아닌가? 나도 회사 다닐 때 몇 번 다녀봤다. 회의는 보통 1-2시간이면 끝이 나고 나머지는 친목도모의 시간이다. 우리는 제주에 와서 제주 맛을 음미하며 친목도모를 아주 단단히 했다. 앞으로 킨더줄리에서 하고 싶은 성장은 무엇인지, 나는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프로젝트를 하고 싶은지. 우리는 낮에는 신나게 제주의 삶은 만끽하다가 밤만 되면 이 고민을 하느라 바빴다.


 나는 이번 여행에 깨달은 것이 아이 없이 여행을 오면 이렇게 여유롭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아이들이랑 여행 다니다 보면 계획은 엄청 세우는데 그 계획대로 늘 되지 않는다. 변수가 생기기도 하고 지체되기도 한다. 그리고 늘 여행을 하면 돌아다니기보다는 빨리 숙소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오니, 시간도 왜 이렇게 넉넉한지. 뭘 해도 시간이 남아돈다. 그리고 저녁 시간이 다 되어도 숙소로 돌아가고 싶지 않고 어디라도 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이렇게  몇 년 만에 여행을 혼자 와보니 다시금 나를 돌아보게 된다.


 함께 온 리더님들의 아이들을 보며 우리 아이들이 생각이 안 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잠깐이었다. 지금은 다시 오지 않을 테니 즐기자. 그러다 둘째 날 밤, 남편에게 전화가 와서는.


다음부터는 2박 3일 말고 1박으로만 가.
2박 갈 때는 서로 깊은 대화를 하고 가자.


아니 왜? 아이들도 친정에 있어 힘들 것도 없는데. 텅 빈 집에 이틀 혼자 있는 게 외로웠던 것일까? 남편은 서운한 말투로 말을 했지만 나는 이렇게 해석했다.


아, 1박은 자주 가도 되겠군!


 벌써부터 마음이 들떴다. 왜냐하면 가을 워크숍은 여수라고 하니, 여수라면 1박은 무리 없이 가겠구나! 벌써부터 다음 워크숍에 대한 설렘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간 김에 마음수영 메이트님도 얼굴도장 찍고 와야겠구나! 하고 말이다.


 돌아오는 제주공항에서도 잠시나마 혼자 있을 시간이 있었다. 김포공항의 한적함과는 달리 제주 공항은 정말 좁긴 좁구나 생각했다. 너무나 많은 인파로 정신이 없어, 앉아 있을 의자를 찾기도 어려웠다. 겨우 자리는 잡았지만 빨리 비행기를 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잠깐의 꿈을 꾸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 서울에 두 발을 내디뎠다.


 근처 역까지 데리러 온 남편의 차를 타자마자 아이들이 하는 말.


엄마~ 다음에는 6박 7일로 가주세요~ 할머니 집에 더 있게요~


 얼마나 즐겁게 할머니집에서 지냈으면 나를 보자마자 저런 말을 할까, 살짝 서운도 했지만 이제는 그 서운함은 금방 반가움으로 바뀐다. 남편도 한마디 거둔다.


그래, 이제 더 많은 경험을 해봐. 해 봐야 알지.


 비록 이번 워크숍은 지난번 출장처럼 돈을 벌고 오지는 못했지만 돈보다 더 귀한 마음을 가득 채우고 온 일정이었다. 킨더줄리에서만 느낄 수 있는 배려, 따뜻함, 그리고 함께 할 수 있게 해주는 메이트님들로 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올 수 있었다. 그리고 더 나은 사람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비록 나는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는 직원은 아니지만 이렇게 나에게 소속감을 주는 킨더줄리에게 감사하고, 소속감과 함께 나를 믿고 나의 성장을 응원해 주는 킨더줄리가 있어 든든하다. 킨더줄리에서 내가 받은 것을 남에게도 베풀 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오늘도 잘 살아가고 싶다.


 이미 내 마음은 여수 밤바다의 포장마차에 앉아 있다. 함께 밤바다를 바라보며 잔을 기울일 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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