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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emi Jul 31. 2023

30년 만에 찾은 미술학원

아이와 함께 그림 그리기

 미술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딸이 오래 다닌 미술학원에서 성인반이 있다는 이야기는 예전부터 들었다. 그러나 나까지 미술학원을 다닐 시간적 그리고 금전적 여유가 없어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큰마음먹고 다니시 시작한 지 3달이 조금 넘어간다.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미술학원은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나는 집 앞 미술학원을 다니고 싶다고 졸라서 다니게 되었다. 그전까지 나는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화가가 될 줄 알았다. 그러나 미술학원을 다니면서 미술을 사랑하던 마음이 지우개로 지우듯 희미해져 갔다.

 그 당시에 다녔던 미술학원은 아마 입시 미술학원이었나 보다. 지금은 미술학원들이 그리기 뿐 아니라 만들기도 하며 재미나게 수업을 하는 곳이 많다. 그러나 내가 다닌 미술학원은 가운데 테이블에 사과, 꽃병, 보자기 등을 놓고 360도로 자리를 옮겨가면서 계속 같은 그림을 그렸다. 어떤 날은 연필로만 그리고 어떤 날은 수채화를 하고. 늘 반복이었다.

 그렇게 몇 달을 다니다가 결국 나는 학원을 그만두었다. 그때는 어려서 그런지, 화가가 되려면 다 저렇게 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러면서 나는 그림 그리는 것에 흥미를 읽기 시작했고 심지어 늘 선생님에게 지적만 당했던 나는 미술에 소질이 없다고 생각하고 일찌감치 화가의 길을 포기했다.


 그렇게 다시는 연필을 잡지 않고 미술과는 먼 삶을 살게 되었다.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 딸이 그림을 그리며 미술학원을 다니고 싶다고 말할 때 한참을 고민했다. 그리고 실제로 한참을 보내지 않고 집에서 그림을 그리게 했다. 하지만 점점 아이도 크면서 미술학원에 대한 욕구가 커지고 아이를 설득시킬 나의 논리는 점점 작아졌다. 그래서 보내게 된 미술학원이었다. 다행히 그 미술학원은 내가 다녔던 곳과는 다르고 아이 또한 너무나 즐겁게 지금까지 4년 넘게 다니고 있다. 아이가 즐겁게 다니는 것을 보며, 나도 다시 용기를 내어 30년 만에 미술학원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나의 요구는 단 하나였다.


집에서는 그리지 못할 다양한 재료로 다양한 그림을 그려 보고 싶어요.


 그래서 선생님은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을 내가 스스로 정하게 하고 재료는 함께 고민해 주셨다. 성인반은 보통 1,2명이 수업을 해서 학원 전체를 거의 혼자 대관해서 쓰는 느낌이다. 그래서 그런지 집중이 잘 된다. 그 고요함. 살짝 클래식이 흐르며 하얀 도화지 앞에 앉아 무엇을 그릴까 고민하는 시간. 그리고 곳곳에서 묻어 나오는 미술도구 냄새들. 내가 사랑하는 시간이다.


  첫 달은 인물화를 연습하고 수채화로 물맛을 배워갔다. 그리고 전시회 작품을 위해 콜라주를 도전해 보았다. 먼저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스케치해 갔다. 그러나 늘 스케치대로 그림은 완성되지 않는 법. 그리다 보면 구도가 바뀌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스케치한 종이를 집에 놓고 오는 바람에 내 기억에만 의존해서 그리기도 했다. 스케치 완성 후 처음으로 아크릴 물감을 쓸 때 설렘이 아직도 생각난다. 수채화와는 또 다른 맛의 아크릴. 꾸덕하면서도 붓의 터치가 남으면서 그것 또한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된다.

 그렇게 하나하나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며 그림을 완성해 갔다. 작은 아이들은 라인 없는 수채화로 그리고 곳곳에는 잡지 등을 잘라서 붙였다. 그리고 유명 화가의 그림을 따라 그리는 오마주를 하며 보는 재미를 더해 보았다. 콜라주를 하면서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했을까’ 후회한 적도 많았다. 왜냐하면 그림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만들고 붙이고 오리기를 무한 반복했다. 그러면서 과연 이 작업이 끝은 나긴 할까, 도대체 완성이란 있는 걸까 불안했다.

 약 2달에 걸친 콜라주 작업은 다행히 끝이 났다. 아니 끝을 냈다. 보면 볼수록 더 고치고 싶고 더 그리고 싶은 내 마음을 눌러본다. 내가 무슨 대단한 전시회를 나가는 것도 아니고 대회에 나가는 것도 아닌데, 즐기면 되지. 왜 자꾸 욕심을 내는지. 하지만 처음으로 이렇게 큰 캔버스에 스케치를 하고 다양한 재료 및 기법을 쓰며 작품 하나를 완성했다. 이 뿌듯함은 이를 말할 수 없다. 왜 아이가 자꾸 미술학원에 가고 싶다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엄마, 미술학원에 가야 집중해서 그림을 그릴 수 있어.
집에는 정신이 없잖아.
근데 미술학원은 딱 그림만 그릴 수 있어.

 아이가 그렇게 말할 때 핑계를 대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렇게 나도 다녀보니 미술학원에서만 그림을 그리게 되지, 집에서는 그림을 그리기 참 어렵다. 아이패드로 그림 그리기까지는 가능하나, 미술도구를 하나 둘 꺼내서 그림을 그리기란 쉽지 않음을 깨달았다. 아이는 방학이라고 미술학원을 하루 더 가고 싶다고 해서 현재 주 3일 다니고 있다. 사실 금액적으로 부담되기는 하다. 나까지 다니고 있으니 미술학원에만 얼마를 내고 있는지… 그래서 더 열심히 본업으로 돈을 벌어야겠다고 굳게 다짐한다.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기보다는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하루빨리 경제적 자유를 이루고 싶다. 좋아하는 일이 돈벌이 수단으로 되면 그 마음을 지금처럼 순수하게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꿈을 꾼다. 아이가 프랑스 등 유럽 국가의 미술대학에 입학하여 아이 핑계를 대고 아이와 함께 외국 가서 어깨 너머 그림을 배우는 꿈을. 딸에게 나의 꿈을 투영하는 것이 아니라, 딸과 함께 나의 꿈을 꾸고 이루고 싶다. 아이의 말대로, 바게트 빵과 커피를 들고 프랑스 곳곳을 함께 그림 그리며 사는 삶을 꿈꾸어 본다. 그때까지 나의 할 일은 일단 건강하기. 그리고 돈 걱정 없이 아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그리고 내 꿈도 펼칠 수 있도록 경제적 자유를 이루는 것. 그런데 아이가 미술을 그만두면 나는 어떻게 하지? 플랜 B도 세워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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