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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emi Jun 12. 2023

나의 직업 정체성

나이 마흔이지만 아직도 더 자라야 합니다:)

 나이 마흔이 되도록 청개구리 같은 마음은 없어지지 않는가 보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N잡러로 산다. 나 또한 잡다한 일에 몸을 담그고 살고 있다. 대학원을 갓 졸업했을 때는 나의 '직업'은 통역사라고 생각을 했고 누군가 나에게 '뭐 하시는 분이세요?'라고 물으면 '통역사'라고 말은 하고 다녔다. 그러나 점점 나의 하루, 또는 한 달, 나아가 일 년이라는 기간 동안 내가 '통역사'로 사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나는 그 직업에 대해 어떤 마음으로 대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가끔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다.


 물론 나의 수입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통역으로부터 얻는 수익이다. 그리고 통역할 때 가장 뿌듯하고 '나'로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통역할 때 재미있고 즐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하루 중 통역에 쏟고 있는 나의 시간과 열정을 보면 점점 통역사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졌었다. 물론 요즘은 조금 바쁜 시기라서 하루에 평균 1-2건의 통역을 소화하고 있어, 내가 통역사임을 실감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 또한 매일 똑같은 일의 반복이듯, 회의 전 자료를 한번 훑고 바로 투입되다 보니 나의 실력 향상은 뒷전이다. 그냥 하루하루 들어오는 회의를 소화하느라 바쁘다. 큰 꿈을 안고 대학원에 들어갔지만, 지금은 그냥 밥벌이로 전락해 버린 것 같이 느껴졌다. 물론 이마저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배부른 소리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일이 들어오고 문제없이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음은 참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나의 온 정신이 최근 몇 년 동안 빨래방을 오픈할 때는 빨래방, 빨래방이 안정되니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그림을 그리다 보니 그림책에 욕심이 났고, 그림책을 읽다 보니 그걸로 수업도 열고 싶고 그림도 더 잘 그리고 싶은 욕심이 하나 둘 생겼다. 그렇게 하나 둘 일이 많아지다 보니 경제적 자유가 더 절실해져서 부동산 공부도 더 열심히 하게 되었다. 회사에 다니지는 않지만 프리랜서로 혼자 쳐내야 할 일들이 태산이다. 자영업자로 신경 써야 할 일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사이사이에 아이 둘을 챙기고 나의 건강도 챙기기 위해 매일 운동을 한다. 그렇게 자아 정체성이 혼미한 상태에서 하루하루를 바삐 살다 보니, 가끔은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헷갈릴 때가 온다.


 그러던 중, 얼마 전에 오프라인 통역이 들어왔다. 매일 하는 통역은 집에서 줌을 통해 화면도 끄고 나의 목소리만으로 통역하는 회의였는데, 정말 몇 년 만에 오프라인 통역이 들어온 것이다. 통대를 나오면 보통 동기들을 통해 일이 들어오는데, 이번에도 정말 몇 년 만에 동기가 연락이 와서는 '동시통역 일 해볼래?'라고 제안을 해 왔다. 내가 매일 하는 통역도 동시통역이지만, 이번에 들어온 것은 호텔에서 이루어지는 한일 관계자들 간의 발족식이었던 것이다. 그 카톡을 보자마자 나는 심장이 몸 밖으로 터져 나와 지구 밖으로까지 날아가는 줄 알았다. '심장아 나대지 마'라는 말을 이럴 때 쓸 줄은 몰랐다. 나는 한참을 고민했다.


 내가 과연 그 동시통역을 해낼 수 있을 것인가? 심지어 내가 하던 통역 분야와 전혀 다른 분야였다. 그렇게 몇 년 동안 꿈꾸던 일이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할 수 있을까? 안 하고 싶은데...'라는 마음의 소리를 듣고 말았다. 내가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면 경험 삼아 해 볼 수도 있는 일이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고 일을 하고 돈을 받으면 안 되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미 졸업한 지 10년이 지난, 남들이 보기에는 연차만 봐서는 베타랑 통역사라고 생각할 텐데, 내가 과연 그 돈을 받고 일할 만한 사람인가?라고 몇 시간을 고민했다. 학교 얼굴에 먹칠을 하면 안 되는데. 소개해준 동기한테 부끄러우면 안 되는데. 오만가지 걱정 구름이 나를 뒤덮었다.


 그렇게 검정 먹구름에 둘러싸여 고민하던 찰나! 아이들한테 새로운 것을 늘 도전해 보라고 말하던 나 자신이 떠올랐다. 실패해도 괜찮아. 경험이 값진 거야. 경험해야 성장해. 물론 나는 돈을 받고 일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더 막중한 책임을 갖고 임해야 한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엄마도 두렵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임해보자. 그렇게 나는 이번 일을 하기로 결정하게 되었다.


 나이 마흔이 되어도 두려운 것이 여전히 있다. 해 보지도 않고 처음부터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나도 여전히 성장하고 있는, 그 과정 중에 있는 한 '인간'일뿐이다. 그토록 꿈꾸던 일이 지금 눈앞에 왔다면, 최선을 다해 준비를 하면 된다. 지금껏 집에서 열심히 통역해 온 나의 그 하루하루를 믿고, 나는 할 수 있다고 새기면서 임하면 된다.


 아이들과 하브루타 시간에 이 일에 대해 함께 나누었다. 아이들은 '엄마 멋지다~ 그거 엄청 어려운 거지?'라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남편은 '우리 엄마 일하는 거 보러 갈까?'라고 누구보다 기뻐해 주었다. 나의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던 시기에, 가끔 이러한 긴장감과 자극은 나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꼭 정체성이 하나여야 할까?라는 질문도 하게 되었다. 어쩌면 더이상 나의 주 직업은 '통역사'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아니, 집착하지 않으려고 한다. 무엇이면 어떠하리. 그때그때 카멜레온처럼 바뀌어도, 인생 참 재미있지 않을까? 남들은 내가 무엇이든 다 척척 해내는 줄 알지만 나 또한 도망치고 싶은 일들이 있고 내적 갈등을 겪으며 해내고 있다. 가족들은 알 것이다. 이번에도 도망가고 싶은 마음 한 가득이었지만, 내뱉은 말들이 있었기에 해내려고 한다.


 늘 가족에게 감사하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성장시키는 자극제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이들보다 나은 점도 없고 아이들에게 배울 점도 많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나는 아이들 덕분에 한 뼘 성장할 수 있었다. 청개구리 같은 엄마이어도, 여전히 겁쟁이 엄마이어도 늘 응원해 주는 가족들이 있기에 나는 계속해서 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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