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발레 사진 찍은 여자야

by 오늘

결국 일을 냈다.


스튜디오에서 발레 촬영을 마쳤다. 너무도 생생한데 한편으로 꿈인가 싶다. 내가 발레 사진을 찍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주변 풍경이 다른 나라 같이 보였다. 새로 태어난 기분이었다. 평생 처음 해보는 일이었다. 뿌듯하고 대견스럽다. 기대보다 훨씬 만족스럽다.


발레 사진을 찍는 건 가볍게 시작했다. 작년에 매년 책 한 권을 써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책도 안 읽고 일기도 쓰지 않는 내가 책을 쓰다니, 엄청 기발하고 멋진 계획이라고 생각하며 우쭐해졌다. 머릿속에서 계획을 세우는 일은 정말 신난다. 그대로 이루어질 걸 상상하면 도파민이 마구 뿜어 나오는지 기분이 최고다. 이번에는 생각에 그치지 않으려고 나름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았다. 아무리 짧은 책이라도 글만으로는 분량을 채울 수 없을 거다. 사진을 넣자. 과감하게 전신사진도 넣자. 내 특기인 잔머리가 굴러갔다. 화보집을 만들자. 하지만 내가 아이돌도 아니고 유명인도 아닌데 누가 쳐다나 볼까. 남다르게 가자. 이전에 없던 것으로 하자. 뭔가 멋있어 보이는데 남들이 하지 않는 거로 하자. 그래서 발레를 선택했다.


나는 발레리나 이미지와 연관되는 게 전혀 없다. 뼈대는 굵고 살집도 많고 머리 크고 팔다리는 길지 않다. 유

연하기는커녕 뻣뻣해서 지금 몸을 구부려도 가슴과 허벅지가 멀리 떨어져 있다. 자세는 구부정하고 가끔 걸을 때 뒤뚱거리기도 한다. 발레를 오래 해도 내 몸은 발레 이미지의 그림자에도 한참 못 미칠 것이다. 그래서 가능한 한 빨리 시작하고 6개월 후에 촬영하려고 했다. 발레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찍은 거라고 하면 오히려 감탄할지도 모르니까. 아무튼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거 같았다.


솔직히 여기까지만 신났었다. 날짜가 다가올수록, 제정신이 든 건지, 부끄러움이 밀려오고 자신감이 뚝뚝 떨어졌다. 내가 뭐라고. 내가 뭐 하는 거지? 너무 오버 아닌가? 나는 왜 쓸데없이 일을 만들지? 결국 연말로 연기하고 다시 구정 뒤로 연기했다. 더 이상 예약을 미루기가 민망했다. 찍으려니 자신이 없고 안 찍자니 아쉬웠다. 이번에 안 찍으면 다신 못 찍을 거 같았다. 지금 돌이켜봐도 정말 간발의 차이로 실행에 옮긴 거다. 아직도 그때 주저하던 게 생생하다. 촬영을 피하려고 핑곗거리를 찾고 또 찾았었다. 그걸 뚫고 해냈다는 게 제일 대견스럽다. 겨우 마음을 추슬러도 불안과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냥 서 있는 사진 찍자. 있는 그대로 찍자. 처음에 가볍게 생각했던 대로 하자. 그게 더 좋은 사진 될 거야. 그런 게 재미있을 거야. 나 스스로 다독였다. 구정 직후라 살은 더 찌고 부었지만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신기하게도 촬영은 재밌고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역시 사진작가님 도움을 톡톡히 봤다. 만약 사진이 괜찮다면 그건 작가님 덕분이다. 초보자에게 자신감을 북돋아 준 발레 선생님도 고맙다. 딸이 챙겨주고 지지해 준 것도 새삼 정말 고마웠다. 처음 책 내겠다고 말했을 때 격려해 준 친구들도 고맙다.

아! 무슨 대한민국 무용제 수상 소감인가? 내 안에 많은 수다들이 왁자지껄했다.


'나, 발레 사진 찍은 여자야!'


불어오는 바람이 콧구멍에 들어오며 살짝 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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