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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에 대한 조금은 다른 생각

생각, 희망, 에세이, 생각의 연상가지

by 바드 단테

*. 예전 블로그에 적었던 글(2012)을 바탕으로 다시 정리하여 올립니다. 이점 양해 바랍니다.


dkrnl.gif - 아귀 형님 (출처 : 영화 '타짜'중에서)


"생각이 많으면 그 인생 고달퍼~" 라고 아귀 형님은 말했다. 난 생각이 많은 편이다. 그것이 별로 시덥지 않는 생각이건, 중요한 것에 대한 생각이건. 작은 하나에서 시작한 생각은 이내 수갈래, 수십 갈래의 가지로 뻗어가곤 한다. 난 이것을 [생각의 연상가지]라고 부른다. 좋은 현상은 아닌 것 같지만, 이 생각이란 녀석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자기 마음대로 하고야 마는 녀석이다. 한때는 뻗어가는 생각의 가지를 막아보려 했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그만두었다.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 하면 더 끈질기게 달려드는 녀석이라 그냥 두기로 했다. 그러다 간간히 생각의 연상가지 위에서 놀아버리기로 했다.


내가 종종 "웃자고 벌인 일에 죽자고 달려든 꼴"이 되는 건 여기서 너무 신나게 놀다가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다. 다른 사람에게도 자신만의 '생각의 연상가지'가 있을 것 같다. 뭐, 난 좀 유별나다 싶을 때가 있지만.


오늘 이야기할 [희망]도 이렇게 생각의 연상가지에서 놀다가 떠오른 이야기다.



◎ 희망에 대한 조금은 다른 생각


"희망(希望) : 어떤 일을 이루거나 하기를 바람. 앞으로 잘될 수 있는 가능성"


희망의 사전적 의미다. 인간은 항상 무언가를 꿈꾸고, 그것을 이루고자 노력한다. 이것은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이자, 삶을 지속하는 원동력이다. 지금은 힘들고, 좌절했을지라도 앞으로 잘될 것이라는 가능성이 있다면, 인간은 그 가능성에 모든 것을 건다. 지구상에 인간이 탄생하고, 지금에 이르는 그 오랜 여정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어쩌면 '희망'일지도 모르겠다. 최소한 인간이 지나온 여정 전부를 대변하지는 못한다 해도,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큰 힘을 주었던 단어는 될꺼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실패와 좌절에 빠질 때마다 '희망'을 떠올렸다. 그리고 성공한 수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이야기했다. 헬렌켈러는 희망을 '사람을 성공으로 이끄는 신앙'이라 표현했고, 나폴레옹은 희망을 '자신이 지닌 가장 비장의 무기'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이야기한다.


특히 꿈을 가진 사람이라면, 더욱 희망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꿈을 향한 인간의 끝없는 의지, 그 꺾이지 않는 마음을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언제부터인가 희망은 꿈을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급기야 희망은 꿈과 듀엣을 이루어 "좌절극복 패키지"로서 인간의 필수 구매품이 되었다. 이 "좌절극복 패키지(이하 패키지)"는 성경조차도 비벼보지도 못할 만큼 인류 최고의 히트상품이 되었다. 이제 인간은 삶의 거의 모든 순간에 이 패키지를 꺼내 사용하고 있다. 물론 나도 이 패키지를 가지고 있고, 수없이 많이 사용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는 이 패키지에 들어있는 "희망"이란 녀석이 다르게 보였다. 가만히 떠올려보면 사춘기가 지난 학창 시절부터였던 것 같다. 태어나서 고작 십몇년을 살았을 뿐이었지만, 그때까지 내가 사용한 패키지는 그 수를 셀 수가 없었다. 당연히 '희망'이란 녀석도 무척 자주 만났는데, 이상하게 이 녀석을 사용할 때면 뭔가 껄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난 이 녀석의 정체가 궁금했고, 급기야 이 녀석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후로 난 종종 희망이란 녀석의 뒤를 캐고 다니는 중이다. 물론 그러면서도 난 지금까지 이 패키지를 끊지 못했지만.


faris-mohammed-nYGVN45DOHg-unsplash.jpg - 철근 속에서 피어난 희망 (출처 : https://unsplash.com/ko/%EC%82%AC%EC%A7%84/nYGVN45DOHg )


사람이 가장 마지막까지 손에서 놓지 못하는 것이 '희망'이다. 그렇기에 시련과 절망, 좌절을 경험한 사람은 언제나 그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고 하고, 그 희망에 모든 것을 건다. 아쉽게도 이 '희망'이란 녀석은 의외로 잔인하다. 희망이 자신의 앞에 던져지면, 그 사람은 다른 해결방법이나 탈출구를 찾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오직 자신의 앞에 던져진 희망에만 매달린다. 그러나 그 끝은 희망이 보여준 것과 다른 경우가 많다. 아니, 아무것도 아닌 경우가 정말 많았다.

물론 '희망'을 가져서 성공했다는 사람의 이야기는 많다. 그런데 조금 시선을 바꿔서 보면, '희망'을 가져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원래 그렇게 될 일이었던 경우도 많다. 성공을 한 것은 그가 가진 능력이나 자신에 대한 믿음, 타이밍이 맞게 떨어진 결과다. 그 사이 어딘가 즈음에 희망이란 이름으로 포장될 꺼리가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희망을 가지니 성공으로 이어졌다고 보는 건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희망에 기대는 건 앞서 말했듯, 희망으로 포장된 성공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희망은 포장에 사용하기 참 좋은 예쁜 재료다. 나도 희망을 가지면, 그 사람과 같은 희망만 품으면.. 지금의 자신이 변하고, 부자가 되고, 성공할 수 있다고 믿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게 '희망'을 품었던 사람들 중 과연 그 '희망'으로 성공을 이룬 사람은 얼마나 될까? 또, '희망'이란 이름에 기대었다가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은 얼마나 될까? 희망은 자신을 품은 인간을 성공과 나락 중 어느 쪽으로 더 많이 인도했을까?

돈을 많이 번 재벌들,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는 스포츠 스타들, 그리고 어린아이들의 동경의 대상이 되는 성공한 연예인들.. 이들은 성공과 희망이란 단어와 참 많이 연결되는 이들이다.


성공한 재벌들이 많을까? 아니면, 재벌처럼 희망을 품었다가 1원 한 푼 손에 쥐지 못하고, 그 1원에 목숨을 내맡기는 사람이 많을까?

이름난 스포츠 스타들이 많을까? 아니면, 스포츠 스타처럼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은 채, 재능도, 돈도, 사람도 잃고 자신이 누구인지도 잊어버린 사람들이 많을까?


성공한 연예인이 많을까? 아니면, 희망의 이름으로 몸과 마음에 온갖 상처를 입고, 스타는 커녕 오늘의 먹을 밥을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을까?

물론 이것은 일반화를 시킬 수도 없고, 일반화를 해서도 안된다. 다만, 한번 즈음은 생각을 해보는 건 어떤가 하는 거다.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 말이다. 익숙한 것을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보면, 정말 뜻하지 않은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인간이란 존재는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ahmed-hasan-Lvon5hPT818-unsplash.jpg - 희망이 눈앞에 있을 때, 당신은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출처 : https://unsplash.com/ko/@carsive)


사막의 모래알 한 줌도 안 되는 성공을 보고, 그들이 희망으로 포장하는 것을 보며, 자신도 희망을 가지면 될꺼라고 믿어버린다. 그 모래알 한 줌에서 조금만 시선을 돌려도 끝없이 펼쳐진 사막으로 가득한데 말이다. 사막에서 가장 중요한 건 모래알 한 줌의 성공이 아니라, 당장 살아남기 위한 '물'이다. 그리고 그 물은 내가 생각하고, 내가 움직여야 얻을 수 있다. 희망이 오아시스를 보여줄 수 도 있지만, 실제로 필요한 물을 주지는 않는다. 그 물을 찾고, 구하는 건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희망은 사실 잔인하다. 난 우리가 희망을 경계하고, 전적으로 믿거나 기대지는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희망을 믿고 기대는 순간, 그 희망은 당신을 야금야금 갉아먹다가 어느 한순간 꿀꺽 삼켜버릴지도 모른다. 당신이 희망에게 먹혀버리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게 되었을 때 말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희망과 관련된 아주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바로 '판도라의 상자'다.


"판도라가 신들이 보낸 상자를 열었다. 질병, 전쟁, 기근, 아픔 등 인간에게 해가 되는 모든 것들이 상자 밖으로 튀어나갔다. 그로부터 인간은 온갖 고난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때 상자의 가장 밑바닥에 남아있던 것은 바로 '희망'이다."


이 이야기를 접한 사람들은 대체로 이렇게 말한다. 마지막까지 남은 것이 희망이기에, 우리는 그 희망을 품고, 또 그 희망에 기대어 살아가는 거라고 말이다. 글쎄다.. 난 그들에게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고 조심스레 말해주고 싶다.

Pandora_-_John_William_Waterhouse.jpg - 판도라의 상자,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그림(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Pandora%27s_box)


우리가 희망보다 먼저 봐야 할 것은 판도라가 열어버린 '상자'의 정체다. 판도라의 상자는 처음부터 신들이 인간에게 해로운 것만을 모으고 모아서 상자에 가득 담아 인간에게 선물한 거다. 즉, 애초에 인간에게 득이 될 녀석은 단 하나도 들어있지 않았다.(!!) 그런 상자의 가장 밑바닥에서 마지막까지 그 무거운 몸을 움직이지 않은 것이 바로 '희망'이란 녀석이다.


그 상자에서 스스로 움직이지 못할 만큼, 아니 스스로 움직일 필요조차 없을 만큼 인간에게 해가 되는 가장 최강의 해악이 바로 '희망'이었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상자를 열자마자 다른 해악들이 뛰쳐나온 이유가 '희망'때문 인건지도 모르겠다. 질병, 전쟁, 기근, 아픔.. 그 모든 해악들조차도 도저히 같이 있을 수 없고, 도저히 같이 있기 싫었던 가장 극악한 존재가 '희망'은 아니었을까?


희망은 언제나 달콤하다. 항상 필요한 순간에 나타나 거부하지 못하게 아주 달달한 향기를 뿜는다. 그러나 희망은 그 단맛이 진짜 단맛인지, 아니면 쓰디쓴 독약의 맛인지는 결코 알려주지 않는다. 판도라의 상자 속에 있던 해악들은 이것을 잘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희망의 뒤를 캐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우리의 삶에서 희망이 필요한 순간도 분명히 존재는 한다는 것이다. 바로 그 순간, 희망은 자신이 지닌 의미와 같은 힘을 발휘했다. 그리고 정말 하늘에서 내려준 동아줄의 역할을 했다. 다만 유감스럽게도 희망이 정말 이름값을 하는 순간은 우리의 삶에서 극히 일부분이고, 정말 찰나의 순간이다. 그 순간을 제외하면 희망은 그 이름값을 전혀 하지 않는다. 그러다 '혹시...'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희망은 자신이 일을 해야 하는 그 순간을 제외하면 오히려 독으로, 해악으로 작용했다.


"희망은 처음부터 양날의 칼이었다."


이것이 지금까지 내가 희망의 뒤를 캐고 다니며 내린 중간 조사 결과다. 희망은 정말로 자신이 필요한 그 찰나의 순간이 아니면, 결코 일을 하려 들지 않았다. 그런 희망을 우리 인간은 마치 과자봉지에서 과자를 꺼내듯 너무도 쉽게 꺼내 휘둘렀다. 지금은 이래서, 다음에는 저래서.. 희망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마구 휘둘렀다. 물론 애초에 희망이란 녀석이 '난 위험한 놈'이라고 이야기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겠지만, 희망은 그에 대해서는 철저히 입을 다물었다.


희망을 제대로 쓰고 싶다면 우리가 먼저 조심해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패키지에서 희망을 따로 빼서 다른 곳에 담아두던가, 아니면 패키지에 들어있는 희망이라는 녀석을 무시해 버리기 바란다. 이 희망이란 녀석은 아주 극악하고, 잔인한 녀석이지만 이렇게 무시해 버리면 의외의 모습을 보일 거다. 처음에는 '어라?' 하는 표정을 짓다가 다음에는 슬그머니 패키지 틈으로 나와서 나나 당신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질 거다. 그러면서 아주 달달한 향을 마구마구 뿜어낼지도 모른다. 아주 독하고 달달한 향기지만 속으면 안 된다. 솔직히 이렇게 말하는 나도 늘 여기서 당하지만. 제길.. 저 달달함은 도무지 쉽게 끊어내기가 힘들다. KF94 마스크를 써도, 다스베이더의 마스크를 써도 소용이 없었다.(취익~ 후! 취익~ 후!) 여기서부터는 순전히 자신의 의지에 달렸다. 다행히 아주 가끔 내가 저 달달함을 이겨낼 때가 있었다. 그러자 희망은 삐졌는지, 다시 패키지 안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더니 낮잠을 자버렸다. 여기까지 오면 거의 다 된 거다. 그때부터는 희망은 잠이나 자게 놔두고 당신의 삶을 살아가면 된다. 당신도 알게 될꺼다. 생각보다 희망의 도움 없이도 잘 살아가고 있었음을. 굳이 희망이 필요한 순간이 아니었음을 말이다.


그럼에도 예전처럼 희망을 꺼내고 싶은 순간에는 어떻게 해야 하냐고? 아직 연구가 더 필요하긴 하지만.. 그때는 당신 자신을 믿고, 행동해보길 바란다. 난 나와 당신, 우리가 믿고 의지해야 할 것은 우리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대체로 자신에 대한 믿음과 행동은 예전 희망을 상습적으로 꺼내던 순간에도 쓸모가 있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다거나 불안할 때는 패키지를 열어도 된다. 단, 희망에는 눈길도 주지 말고 그 옆에 있는 상자를 열기를 바란다.


miguel-bruna-TzVN0xQhWaQ-unsplash.jpg - 출처 : https://unsplash.com/ko/@mbrunacr


바로 "꿈"이 있는 상자다. 물론 꿈도 양날의 칼이지만, 적어도 희망처럼 무지막지하지는 않다. 그리고 꿈에는 안전장치가 걸려있다. 바로 '꿈을 향한 노력'이다. 패키지에 들어있는 꿈은 제대로 사용하려면, 꿈을 향한 당신의 노력으로 녹여야만 사용이 가능하다. 꿈은 그래도 아직은 기댈만하다. 그리고 꿈을 향한 당신의 노력은 믿을만하다. 난 이것이 충분히 희망을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삶을 살다가 정말 희망이 필요한 순간이 오면 그때는 패키지를 열 필요도 없다. 희망이 어느샌가 패키지 밖으로 튀어나와 당신의 손에 들려있을꺼다. 그때가 희망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간이니까. 솔직히 말해서 난 아직 이 상황은 직접 겪어보지 못했다. 그동안 희망의 뒤를 캐고 다니면서 어깨 너머로 보고 들었을 뿐이다. 난 지금도 희망을 자주 대면하고, 자주 싸우고, 자주 진다. 꿈을 꺼내야지 하면서 패키지를 열었다가 늘 희망이란 녀석에게 걸리기 일쑤다.




이건 그냥 나의 시덥지 않은 생각의 연상가지 중 하나에서 놀던 이야기다. 사실 내가 희망이란 녀석에게 당한 게 좀 많다. 그럼에도 나 또한 인간인지라, 또 패키지를 열고 희망이란 녀석과 서로의 패를 주고받으며 딜을 때리려고 할꺼다. 그래도 다행히 최소한 올인은 하지 않을 자신은 있다. 난 안전제일의 모험은 하지 않는 겁쟁이니까.



#생각, #에세이, #희망, #꿈, #좌절극복패키지, #당신자신이최고의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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