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드 단테 Mar 08. 2023

12.겨울을 사랑한 봄-셋 : 내가 왜 이러냐면..

북유럽 신화, 프레이, 스키르니르, 상사병, 고백

#. 내가 왜 이러냐면..


프레이는 진지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스키르니르, 내 말을 듣고서 웃지는 말아 줘. 실은.. 요즘 내 가슴 한구석이 뻥 뚫린 듯하기도 하고, 마치 거대한 산이 들어앉은 것 같기도 해. 그리고 그 시작에는 한.. 여자가 있어.]


 다른 이들이라면, 프레이의 대답을 듣고 허탈했을 것이다. 신들의 귀공자를 이토록 메마르게 만든 것이 여자 때문이라니. 그러나 스키르니르에게는 달랐고더욱 진지하게 친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녀를 처음 본 것은.. 오딘의 옥좌에 앉아서였어. 알아, 멋대로 앉아서는 안 되는 자리라는 거. 하지만 급히 처리할 업무가 있어서 어쩔 수 없었어. 그러다가 그녀를 보았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나를 설레게 한 것은 그녀가 처음이야. 자네는 알 거야. 내가 누군가에 쉽게 반하지 않는다는 걸.]


 프레이의 말이 잠시 멈추었다. 그러자 스키르니르가 말했다.


[물론이지. 네가 아무에게나 반하는 그런 남자가 아니란 것은 내가 보장해.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 것은 좋은 일이야. 아버님에게도, 나에게도 말하지 못할 일은 아니지. 그렇다는 건 다른 이유가 있는 거지?]


 프레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문제가 있어. 실은... 그녀가 거인족이야.]

[아!]


 스키르니르는 자신도 모르게 탄식했다. 프레이는 빼어난 외모만큼이나 온화한 성품을 지녔고, '신들의 귀공자'라 불렸다. 프레이는 젊은 신들 가운데 '발드르(Baldr : 영광)'와 더불어 가장 인기가 좋았다. 특히 그중에서도 신이건, 인간이건, 젊은 처녀라면 누구나 이 두 젊은 신에게 애정을 쏟았다. 그런 프레이가 사랑에 빠진 대상이 하필이면 거인족이라니..


- 흘리드스캴프에 앉은 프레이, 프레드릭 로렌스 그림(1908.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Freyr )


 여느 아사 신족이라면 거인족 처녀를 사랑하게 된 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프레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지금은 아사 신족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프레이는 반 신족 출신이다. 이미 뇨르드와 스카디의 일을 모든 신들이 알고 있다. 프레이야는 언제나 염문설이 끊이지 않았고, 오딘과의 사이도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런 상황에서 프레이마저 연애사로 문제가 된다면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프레이의 출신에 대한 이야기도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올 것이다.


  '역시 반 신족이구먼.', '출신은 못 속이는 거라지..', '애비도 그렇고, 여동생을 봐봐. 아주 그냥 남사스러워서..' 신들도, 인간들도 수근거릴 것이 뻔하다. 그동안 프레이는 아사 신족에 녹아들기 위해서 정말 노력했다. 자신의 성품보다도 더욱 친절하고, 성실한 모습을 보이고자 애썼다. 자신의 행동 하나, 하나가 가족과 모든 반 신족을 대표한다고 여겼다. 더욱이 뇨르드는 앞장서서 아사 신족과 맞서 싸웠고, 아스가르드에는 그 전쟁에서 가족을 잃은 이들도 많았다. 다행히 이 노력은 헛되지 않았고, 겨우 지금처럼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물론 프레이 혼자의 노력은 아니었다. 아버지 뇨르드도, 여동생 프레이야도 함께 노력해서 얻어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레이야는 원하건, 원하지 않건 염문에 휩싸여 지냈다. 뇨르드가 노아툰에서 보여준 능력에도 불구하고, 스카디와의 불편한 결혼생활로 인해 그 평판은 손상을 입었다.


[스키르니르, 나도 정말 힘들어! 미치겠다구! 이러면..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그녀 잊혀지지 않아. 하지만.. 나마저 이래버리면, 신들이 우리 가족을 뭘로 보겠어! 내 아버지와 프레이야.. 그리고 우리 반 신족을 어떻게 보겠냔 말이야! 그렇지 않아도 근친혼 문제로 가뜩이나 말도 많았는데... 하아...]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프레이였지만 이번만큼은 참지 못했다. 스키르니르도 프레이의 고민을 충분히 이해했다. 당연히 뇨르드에게도, 프레이야에게도 말하기 힘든 고민이다. 하지만 이렇게 마음고생을 한다고 일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프레이 혼자서는 이 일을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스키르니르가 친구의 고민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프레이가 그녀를 포기할 수 있었다면, 이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 그렇다면 프레이의 사랑이 이루어지게 돕는 편이 낫다. 어차피 수근거릴 사람은 그게 수근거리기 마련이다. 스키르니르가 단호하게 말했다.


[프레이, 잘 들어. 지금 중요한 건 너 자신이야. 신이건, 인간이건.. 다른 것들은 신경 쓰지 마. 오직 너 자신을 먼저 생각해. 너처럼 잘생기고 멋진 녀석에게 사랑하는 여자가 생겼다면, 이건 고민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기뻐해야 할 일이야. 난 그래. 난 지금 기뻐. 그동안 연애 한 번을 하지 않아서 이 녀석이 뭔 문제라도 생겼나 싶었거든. 이제는 안심이야. 아, 이 자식이 그래도 사내놈은 맞구나~ 하고 말이지.]


스키르니르의 말에 프레이가 피식하며 웃었다.


[신이건, 인간이건.. 다른 놈들이 뭐라고 하건 말건,  지금부터는 그딴 거 신경도 쓰지 마. 염병, 알 게 뭐야! 지들이 언제 너한테 여자 한 번 소개시켜줘 본 적이 있어? 그런 적도 없잖아! 수근거리려면 얼마든지 그러라고 해! 대체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에라~ 엿이나 쳐드쇼! 댁들이나 잘하셔, 염병할!]


스키르니르가 자신 있게 외쳤다. 그러자, 프레이가 스키르니르를 따라 중얼거렸다.


[.. 염병할?]


스키르니르가 친구의 어깨를 툭 치고는 창밖을 향해 소리쳤다.


[그래, 염병할! 알 게 뭐야!]

[염병할! 알 게 뭐야!!]


프레이도 스키르니르를 따라 창 밖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서로의 어깨를 잡은 두 친구는 한참 동안 크게 웃었다. 아마 듣는 이가 있었다면, 오밤중에 이게 뭔 소리인가 하고 놀랐을지도 모르지만.. 어찌 되었건, 이 순간 프레이도, 스키르니르도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았다. 스키르니르가 말했다.


[뒷일은 걱정하지 마. 어차피 별일 없을 테니까. 뭐, 일이 생기면 또 어때? 까짓 거 그때 가서 해결하면 되는 거야. 너 프레이야! 그리고 나 스키르니르가 떡하니 옆에 붙어있는데, 우리가 해결 못할 일이 뭐가 있겠어? 안 그래?]


스키르니르의 말에 프레이는 자신감을 얻었고, 마음을 정했다. 곧바로 프레이와 스키르니르는 사랑을 얻기 위한 모의에 들어갔다. 프레이는 그동안 그녀에 대해 알아낸 것들을 스키르니르에게 말해주었다.



#북유럽 신화, #북구신화, #북유럽 신화 이야기, #오딘, #토르, #단테, #norsemyth, #프레이, #뇨르드, #스키르니르


매거진의 이전글 12.겨울을 사랑한 봄-둘 : 프레이가 왜 저럴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