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이 되었다. 밖으로 나와 본 어린 형제는 깜짝 놀랐다. 오두막 근처에 있는 해안가는 괜찮았지만, 그곳을 조금 벗어난 곳부터 바다가 꽁꽁 얼어붙었다. 전날 오두막 아저씨가 말한 대로였다. 신기하게도 먼바다는 그렇게 얼어붙을 정도였음에도, 오두막 부부가 사는 곳은 그다지 춥지 않았다. 쌀쌀한 정도라 얇은 외투만으로도 충분했다. 주변의 산 위에는 눈이 덮여있었지만, 오두막 주변은 마치 봄이나 가을 같은 느낌이었다. 아침을 먹고 오두막 아저씨가 게이로드를 데리고 사냥을 나가고, 아그나르는 오두막 아줌마를 따라 물을 길었다. 이 날부터 어린 형제는 약속한 대로 각자 오두막 부부를 도왔고, 오두막 부부는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먼저 아그나르는 오두막 아줌마를 도와 집안일을 거들고, 텃밭을 가꾸었다. 아그나르는 모든 것을 성실하게 배우고 익혔다. 오두막 아줌마는 아그나르가 착하고 정직한 아이라는 것을 알아보았고, 이 점을 매우 아꼈다. 처음에는 아그나르에게 집안일과 가축을 돌보는 일, 텃밭에서 채소를 키우는 일을 가르쳤다. 그러다 점점 가르치는 범위가 넓어졌다. 오두막 아줌마는 아그나르에게 마음속 분노를 다스리고, 사람들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녀는 아그나르가 바르고 정직한 사람으로 자라도록 길을 잡아주었다.
게이로드는 오두막 아저씨를 도와 사냥을 하고, 물고기를 잡았다. 게이로드도 모든 것을 성실하게 배우고 익혔다. 오두막 아저씨는 게이로드가 매우 영특하고, 욕심에 충실한 아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처음에는 덫을 놓는 법, 그물을 치는 법을 가르쳤다. 그러다 점점 가르치는 범위가 넓어졌다. 오두막 아저씨는 게이로드에게 사람을 알아보고, 사람을 다루는 법을 알려주었다. 그는 게이로드에게 권모술수를 지닌 지도자로 자라도록 길을 잡아주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되었다. 얼어붙었던 바다도 많이 녹아 배가 지나다닐 정도가 되었다. 오두막 부부는 어디선가 작은 배 한 척을 구해왔다. 배는 작았지만 튼튼했다. 어린 형제가 다루기에 충분했고, 힘을 들이지 않고도 노를 저을 수 있었다. 어린 형제가 떠나기 전날 밤, 오두막 부부는 작은 이별 잔치를 열었다. 겨울 동안의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오두막 부부와 어린 형제는 그동안 흠뻑 정이 들었다. 어린 형제도 오두막 부부에게 따뜻한 보살핌과 사랑을 받은지라 이들과의 이별을 매우 아쉬워했다. 그러나 오두막 부부와 어린 형제는 약속을 했고, 어린 형제는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드디어 어린 형제가 떠날 날이 되었다. 오두막 아줌마는 어린 형제에게 올 때 입고 온 옷을 다시 입혀 주었다. 그동안 틈틈이 손질을 했는지, 마치 새 옷처럼 깨끗했고, 몸에도 꼭 맞았다. 오두막 아저씨가 게이로드를 안고 먼저 배로 향했다. 그는 배로 가는 동안 게이로드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그나르는 오두막 아줌마를 도와 가져갈 짐을 챙겨 아저씨와 게이로드의 뒤를 따랐다. 어린 형제가 배에 오르고, 짐도 배에 실었다. 오두막 아저씨는 바닷물이 허리까지 잠기는 곳까지 배를 밀어주었다. 아그나르와 게이로드는 오두막 부부를 향해 작별인사를 했다.
[아저씨, 아주머니.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저희를 따뜻하게 돌보아 주신 것 잊지 않겠습니다. 장말 감사했어요.]
작별의 인사를 하며 아그나르의 눈가가 젖어들었다. 눈이 붉어진 게이로드도 손을 흔들었다.
[두 분 모두 고마웠습니다. 아버지께 꼭 말씀드릴게요!]
[잘 가렴, 얘들아! 건강해야 한다!]
오두막 아줌마가 손수건을 들어 눈물을 훔쳤다. 오두막 아저씨는 그녀의 어깨를 끌어안고 어린 형제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어린 형제를 태운 배는 점차 먼바다로 나아갔고, 어느새 오두막 부부도, 그들이 살던 곳도 저 멀리로 작아졌다. 어린 형제는 각자 노를 잡고 힘차게 저었다. 얼마나 노를 저었을까? 함께 노를 젓던 게이로드가 말했다.
[형, 나 힘들어.]
[아, 그래. 잠깐 쉬렴.]
아그나르는 동생을 쉬게 하고 더욱 힘을 내어 노를 저었다. 다행히 아그나르는 노를 젓는 것이 그렇게 힘이 들지는 않았다. 어쩌면, 이제 곧 기다리던 집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더 기운이 난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조금 더 저어가자 아그나르의 눈에 익숙한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린 형제를 태운 배는 이윽고 자신들이 낚시를 하기 위해 출발했던 곳에 도착했다. 어린 형제는 매우 기뻤다. 아그나르는 게이로드를 먼저 배에서 내려주고, 짐을 챙기기 위해 배 뒤쪽으로 갔다. 그때, 먼저 내린 게이로드가 발로 배를 밀며 소리쳤다.
[거인들이 사는 땅이든, 어디든 너 갈 때로 가버려라! 사악한 영혼이 너를 잡을 수 있는 곳으로!]
그러자 배가 혼자 스르륵 움직이더니 스스로 먼바다를 향해 나가기 시작했다. 짐을 챙기던 아그나르가 놀라 소리쳤다.
[어.. 어... 이거 왜 이러지?! 게이로드! 게이로드!]
아그나르는 황급히 노를 잡았지만, 노는 뱃전에 달라붙은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느새 배는 해안에서 빠르게 멀어졌고, 아그나르가 헤엄을 칠 수도 없는 깊고 먼바다로 향했다. 게이로드는 해안가에 서서 형을 태운 배가 저 멀리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배가 점이 되어 사라지자, 게이로드는 몸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게이로드가 돌아오자, 왕궁은 크게 놀랐고 매우 기뻐했다. 그러나 이내 왕궁은 두 가지 슬픔에 빠져버렸다. 하나는 지난겨울 두 아들이 실종되고, 흐라우둥 왕은 슬픔에 빠져 괴로워하다 이미 사망한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게이로드가 말하길, 형인 아그나르가 표류하던 중 물에 빠져 숨졌다는 소식이었다. 흐라우둥 왕의 신하들은 충성스러운 사람들이었고, 게이로드라도 살아 돌아온 것을 신에게 감사했다. 그리고 그를 왕국의 정식 계승자로서 세우고, 아그나르의 몫까지 더해 게이로드를 충실하게 보좌했다. 시간이 흘러 게이로드는 영리함과 냉혹함을 모두 갖춘 왕이 되어 나라를 이끌었다.
한편, 아그나르는 오랜 시간 바다를 표류했다. 아그나르는 어떻게든 배를 돌려보려 했으나, 방법이 없었다. 아그나르는 그렇게 한참을 떠돌다 어떤 해안에 도착했다. 아그나르를 태우고 온 배도 이 해안에 도착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아그나르가 도착한 곳은 요툰헤임의 어떤 해안이었다. 아그나르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열 살짜리 인간의 아이가 요툰헤임에서 미드가르드로 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해안 주변을 돌아다니던 아그나르는 거인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다행히 아그나르는 목숨은 건졌으나, 거인의 노예로 살게 되었다. 아그나르는 거인의 밑에서 모진 고생을 했다. 쉼 없이 일해야 했고, 죽지 않을 만큼만 먹을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 아그나르는 청년이 되었다. 아그나르가 살아남은 것은 그가 지닌 성실하고 정직한 성품 덕이었다. 아그나르의 성품을 인정한 거인이 그를 비교적 자유로운 하인으로 만들어 주었고, 하녀로 일하던 여자 거인과 짝을 지어주었다. 이 여자 거인은 아그나르보다 나이도 많고, 못생겼지만 성격은 좋은 편이었다. 아그나르는 자신의 동굴을 가지게 되었고, 그녀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이루었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못생겼지만, 아그나르는 아이들을 사랑했다. 아그나르가 자신의 집을, 고향을 잊은 것은 아니었다. 언제나 그곳을 그리워했으나 현실을 잘 알았기에, 아그나르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