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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Mar 22. 2023

13.그림니르가 말하기를-셋 : 아들자랑

북유럽 신화, 북유럽 신화 이야기, 오딘, 프리그, 풀라, 그나, 린

#. 아들자랑?


 언제나 그랬듯, 오늘도 아스가르드는 평화로웠다. 그건 발할라도 마찬가지였다. 오딘은 흘리드스캴프에 앉아 한가로이 세상을 구경했다. 오딘은 이곳저곳 세상을 구경하며, 더욱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오늘 오딘의 곁에는 모처럼 프리그도 함께였다. 프리그는 자신의 옥좌에 앉아 풀라를 비롯한 시녀들과 함께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었다. 프리그는 종종 자신의 물레로 실을 뽑고, 옷감을 지어 신들의 옷을 만들어 주는 것을 좋아했다. 지금은 옷감을 짤 실로 뽑을 '구름양의 털(구름)'을 고르는 중이었다. 세상을 보는 게 지겨워졌는지, 오딘은 한동안 프리그를 보았다. 그러다 무언가 생각이 난 듯, 오딘은 다시 세상을 돌리며 무언가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오딘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여보, 프리그. 혹시 그 애들 기억해?]

[무슨 애들이요?]


 오딘의 말에 프리그가 되물었다. 그러자 오딘이 빙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언젠가 우리가 인간들의 땅을 여행할 때 말이야. 왜 그때, 물에 빠진 생쥐 같은 애들 둘을 거두어줬잖아. 기억 안 나?]

[아~ 그 애들이요.]


 프리그는 별 관심이 없다는 듯, 시녀들과 함께 구름양의 털을 골랐다. 오래전, 그나르와 게이로드 형제를 돌보아 준 오두막 부부는 바로 오딘과 프리그였다. 당시 오딘과 프리그는 함께 미드가르드를 여행 중이었고, 아무도 살지 않는 섬에서 잠시 쉬어가던 중이었다. 그때 어린 형제를 만나 잠시 그들을 돌봐준 것이다. 예정에 없던 일이었으나 오딘과 프리그에게는 꽤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미 다 자라 버린 아이들의 어릴 때가 생각이 나서 젊어진 기분이기도 했고. 프리그를 보며 오딘이 다시 말했다.


[그 애들이 어떻게 사나 궁금해서 내가 지금 찾아봤는데 말이야~ 어이쿠야~ 내 수양아들내미는 왕이 되었구만! 하하! 이거 아주 잘 나가더라고. 왕국도 크게 키우고 말이야.]

[흐응.. 그래요? 잘되었네요. '풀라(Fulla : 충만한, 풍요로운)', 저기 저 양털 좀 줘봐.]


 프리그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오딘이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근데, 이거 어쩌나~ 당신 수양아들내미는 어쩌다 저리 되었누.. 쯧쯧.. 못생긴 여자거인이랑 동굴에서 살을 섞으며 괴물 같은 아이들을 만들어 내고 있구먼. 저건 완전 야만인인데? 하하!]

[아.. 그랬군요. 어머. 이건 못쓰겠다. '린(Lin : 지키는, 보호하는)', 이건 버려야겠다.]


 프리그는 여전히 별 관심이 없는 듯이 보였다. 잠시 후, 프리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옷자락에 묻은 구름양의 털을 털던 프리그가 말했다.


[아, 오딘. 그거 알아요? 소문에 게이로드는 왕궁에 찾아온 손님을 아주 박대한다더군요.]

[그럴 리가? 내가 그렇게 가르친 적이 없는데?]


 오딘이 크게 미소를 지었다. 사실 오딘은 프리그를 놀리려고 아그나르와 게이로드의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오딘은 프리그의 반응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아내를 놀리는 것도 즐거웠고, 오랜만에 토라진  모습의 프리그를 보는 기분도 꽤 재미있었다. 오딘은 프리그가 토라진 모습이 왠지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뻔한 거짓말을 하다니, 아주 제대로 토라졌구먼.) 하하하! 다 듣고 있었으면서 안 듣는 척은~]

[소문이 그렇다구요. 소문이. 가자, 얘들아.]


 프리그는 앞장서서 계단을 내려갔다. 프리그의 시녀들이 황급히 구름양털을 챙겨 프리그의 뒤를 따라갔다. 오딘은 그 모습을 보며 더욱 크게 웃었다.


 오딘의 웃음소리를 뒤로하고 프리그는 발할라를 나와 자신의 저택인 '펜살리르(Fensalir : 늪지의 저택)'로 향했다. 펜살리르는 매우 아름다웠고, 아스가르드에서 가장 화려했다. 정원에는 온갖 꽃과 나무가 가득했고, 저택은 수많은 조각상과 다양한 장식물로 장식되었다. '프레이야(Freyja)'의 저택 '폴크방(Folkvangr)'이 아름답기로 유명했지만, 그 화려함은 프리그의 펜살리르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펜살리르로 들어서자, 태연하게만 보였던 프리그의 표정이 뾰로통하게 변했다. 프리그는 그대로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구름양털은 따로 갈무리해 두려무나. 풀라, 가서 시원한 물을 가져오렴.]


 프리그는 시녀들에게 지시를 내린 뒤, 방문을 쾅하고 닫았다. 프리그가 화가 난 것이 분명했다. 잠시 후, 풀라가 시원한 물이 든 병과 황금잔을 은쟁반에 받쳐 들고 프리그의 방으로 들어왔다. 프리그는 허리에 양손을 올린 채 분을 삭이는 중이었다. 풀라가 다가가자 프리그가 풀라를 향해 오른손을 내밀었다. 풀라는 황금잔에 시원한 물을 가득 따라 프리그에게 전했다. 프리그는 거침없이 물을 마셨다.


[한 잔 더!]


 풀라가 프리그가 든 잔에 다시 시원한 물을 가득 따랐다. 프리그는 다시 물을 들이켰다. 물이 프리그의 입술을 타고 흘러, 그녀의 턱에서 몽글몽글 방울지더니 그녀의 하얗고 부드러운 가슴 위로 떨어졌다. 프리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아그나르와 게이로드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 프리그와 세 여신, 칼 에밀 도플러 그림(1882.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Frigg )


 오딘과의 여행을 마치고 아스가르드로 돌아와 시간이 좀 흐른 어느 날. 평소처럼 자신의 일(결혼과 관련된)을 보던 프리그는 문득 미드가르드에서 만난 어린 형제가 생각이 났다. 그즈음이면 그 어린 형제도 자라서 결혼할 때가 되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 프리그는 시녀인 여신 '그나(Gna : 의미불명)'에게 이들 형제에 대해 알아오게 했다. 그나가 알아온 이야기를 들은 프리그는 깜짝 놀랐다. 당시 집으로 돌아간 것은 게이로드뿐이었고, 흐라우둥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는 것이다. 소문에는 아그나르가 물에 죽었다고 했다. 프리그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린 형제를 태워 보낸 배는 자신과 오딘이 가호를 내린 배라 재해를 당할 수 없다. 그런데 게이로드 혼자 돌아갔다니.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든 프리그는 다시 그나를 시켜 아그나르의 행방을 알아보게 했다.


 그나가 다시 알아온 이야기에 프리그는 화가 났다. 아그나르는 배와 함께 요툰헤임에 도착했고, 거인의 노예가 되어 온갖 고생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못생긴 여자 거인과 이미 결혼하여 가정을 꾸렸다고 했다. 분명히 오딘이 무언가 수작을 부렸음을 알았지만, 프리그는 일단은 참기로 했다. 프리그는 자신의 권한을 벗어난 개입은 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게이로드가 결혼을 할 때에도 프리그는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심정으로 마지못해 축복을 내려주었다. 그리고는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오딘이 뜬금없이 이것을 건드린 것이다. 풀라가 프리그에게서 잔을 받아 들고는 대신 손수건을 건넸다. 프리그는 손수건으로 입과 가슴을 닦으며 말했다.


[풀라, 네가 해줘야 할 일이 있어. 어지간해서는 내 소관이 아닌 일에는 개입하지 않으려 했는데, 이번만큼은 안 되겠어. 잘못된 일은 바로 잡아야지. 그리고..]


프리그의 눈이 반짝였다.


[이 양반의 저 나쁜 버릇도 좀 고쳐놓아야겠어.]


프리그는 풀라에게 무언가 지시를 내렸고, 풀라는 프리그의 방에서 물러갔다. 풀라는 프리그의 시녀들 중 가장 첫 번째로 꼽히는 여신이었다. 프리그는 그녀를 마치 여동생처럼 아꼈는데, 프레이와 스키르니르보다도 더욱 끈끈했다. 풀라는 다른 시녀들도 모르게 은밀히 펜살리르를 떠났다. 물론 오딘에게도 들키지 않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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