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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Mar 20. 2023

13.그림니르가 말하기를-하나 : 난파

북유럽 신화, 아그나르, 게이로드, 흐라우둥, 형제

#. 스노리의 서가


 스노리가 창 앞에 서있은지도 한참이 지났다. 스노리의 고민이 깊어가던 그때, 서가의 문이 열렸다. 스튤라였다.


스튤라 : 아저씨, 아르캬 형이 뵈드바 형을 데리고 도착했습니다.

스노리 : 늦었군.


 스노리는 미간을 찡그렸다. 아들이 조카를 데리고 오는데 시간이 너무 걸렸다. 자신의 심복들보다도 늦다니. 하지만 이것으로 일단 필요한 사람은 모인 셈이다. 스노리가 서가를 나가려다 스튤라에게 말했다.


스노리 : 스튤라, 책상 위에 꺼내둔 것이 있으니 오늘 수업은 그것으로 대신해야겠다.

스튤라 : 아.. 네.


 스노리는 스튤라의 어깨를 토닥인 뒤, 빠르게 응접실로 향했다. 스튤라는 왠지 오늘 회의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스튤라는 회의에 참석하는 것을 아직 허락받지 못했다. 일족이라고 해도 스튤라는 아직 어렸고, 배워야 할 것도 많았다. 스튤라는 문을 닫고, 스노리의 책상으로 가서 앉았다. 책상 위에는 몇 개의 양피지 묶음이 놓여 있었다. 스튤라는 그중 하나를 펼쳤다. 옛이야기가 오래전 글자로 쓰여있었다. 스튤라는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스튤라 : 그.. 그림니..르..의.. 시? 노래? 흠...


#PS

이번 스노리의 서가에는 낯선 인물이 등장하기에 약간 설명을 드립니다.

- '아르캬 스노라손(Orækja Snorrarson)' 

: 스노리의 서자(庶子). 스노리의 여러 아들 중 하나로, 스노리를 도왔다.


- '뵈드바 토르다르손(Boðvar Þorðarson)' 

: 스노리의 조카. 스노리의 형인 '토르두르 스트룰루손(Þorður Sturluson)'의 아들 중 하나.

  스노리의 서가에 등장하는 '스튤라'와는 배다른 형(이복형 : 異腹兄).





#. 난파


 오딘과 형제들이 세상을 만들었고, 또한 인간을 만들었다. 두 종류의 나무에서 만들어진 인간은 한동안 '미드가르드(Midgard : 둘러싸인 안쪽 대지)'에서 신과 함께 살았다. 최초의 전쟁 이후, 신들은 자신들이 살던 곳을 따로 떼어내어 신들의 땅,  '아스가르드(Asgardr : 아사 신족이 둘러싼 땅)'를 만들어 그곳으로 옮겨갔다. 그 후로 미드가르드는 인간이 사는 세상으로 여겨졌다. 리그가 인간에게 신분과 계급이라는 원치 않는 선물을 주고 간 이후, 미드가르드에는 수많은 나라가 생겼다. 이들은 번성하고, 무너졌으며, 다시 새로운 나라가 탄생했다. 인간은 자신의 창조주와 마찬가지로 죽을 운명을 타고났으며, 자신의 창조주와는 다르게 그 수명은 매우 짧았다. 그럼에도 인간은 미드가르드를 주무대로 희극과 비극을 오가는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이 이야기도 그런 이야기 중 하나다.


 미드가르드에는 수많은 인간의 나라가 있었다. 그중에 '흐라우둥(Hraudung : 의미불명. 고트족의 왕이라고도 전해짐)'이라는 왕이 다스리는 나라도 있었다. 흐라우둥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었다. 큰 아들의 이름은 '아그나르(Agnar : 검의 가장자리)'였고, 작은 아들의 이름은 '게이로드(Geirrod/Geirroðr : 창의 평화)'였다.


- 아마 아그나르와 게이로드도 저 아이들과 비슷했을 듯. '바이킹스'중에서 (출처 : https://www.history.com/shows/vikings/pictures)


 때는 아그나르가 10살, 게이로드가 8살이 되던 해였다. 그 해에 겨울이 시작되던 날, 아그나르와 게이로드는 낚시를 하기 위해 바다로 배를 타고 나갔다. 자리를 잡고 낚시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세찬바람이 불어왔고, 파도도 거세게 일었다. 어린 형제는 배를 돌려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이들의 힘으로는 배를 돌리지 못했다. 어린 형제는 서로 끌어안고 공포와 두려움에 떠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들은 바람과 파도에 떠밀려 먼바다로 밀려갔다.


 배는 한참을 표류하다가 어둑어둑해질 즈음, 어떤 해안에서 난파되고 말았다. 다행히 어린 형제는 무사히 살아남았고, 해안가로 올라갔다. 어린 형제는 모래와 자갈로 가득한 해안 언덕으로 올라갔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둘 다 온몸은 바닷물로 흠뻑 젖었고, 기운도 없었다. 게다가 겨울이라 매우 추웠고, 배도 고팠다. 추위로 덜덜 떨던 게이로드가 울음을 터뜨렸다.


[으앙~ 형아야~ 나 너무 추워~ 무서워~]


아그나르가 동생을 꼭 끌어안았다. 울고 싶은 건 아그나르도 마찬가지였다. 형이라고는 해도 아그나르도 고작 10살짜리 어린아이였다. 아그나르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 동생을 토닥였다. 잠시 후, 아그나르는 몸을 일으켜 주변을 살펴보았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눈에 익은 풍경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자신들이 살던 곳에서 아주 멀리 떠내려온 것 같았는데, 이곳이 어디인지도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때 멀리 작은 불빛이 보였다. 어두워서 확실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오두막이 보였다. 아그나르는 동생과 손을 잡고 오두막을 향해 걸어갔다. 둘 다 춥고, 기운도 없었지만 불빛을 보니 왠지 힘이 나는 느낌이었다.


 아그나르가 오두막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한 젊은 아낙이 문을 열었다. 그녀는 문 앞에 낯선 아이들이 서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머? 너희는 누구니?]

[저.. 저희는..]


 아그나르가 대답을 하려다, 자신도 모르게 울음이 터졌다. 그러자, 게이로드도 형을 따라 울었다. 당황한 아낙은 자신도 모르게 어린 형제를 끌어안았다. 아그나르와 게이로드는 아낙의 품에 안겨 서럽게 울었다. 아낙의 품은 따뜻했고, 좋은 향기가 났다. 아그나르는 그 향기가 엄마의 향기 같았다.


[여보, 여보! 이리 좀 와봐요!]


 아낙이 남편을 불렀고, 아낙의 남편이 서둘러 나왔다. 그도 낯선 아이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젊은 부부는 일단 어린 형제를 오두막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밝은 곳에서 보니 어린 형제의 꼴이 말이 아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닷물에 흠뻑 젖었고, 옷도 엉망이었으며, 추위로 덜덜 떨고 있었다.


[안 되겠다. 일단 따뜻한 물에 좀 씻자. 여보, 목욕통 좀 꺼내줘요.]

[알았어.]


남편은 곧 커다란 통을 꺼내 따뜻한 물을 가득 채웠다. 아낙은 팔을 걷어붙였다. 그리고는 어린 형제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남편은 횃불을 챙겼다.


[나 잠깐 밖을 좀 확인해 볼께. 이 애들이 대체 어디서 온거람..]


남편이 밖으로 나가고, 아낙은 어린 형제를 물이 담긴 통으로 밀어 넣더니 한 명, 한 명 깨끗이 씻겼다. 다 씻긴 다음에는 깨끗한 새 옷을 가져와 어린 형제에게 입혔다. 새 옷은 마치 맞추기라도 한 듯 어린 형제의 몸에 꼭 맞았다. 그때 남편이 돌아왔다.


[저기 해안가에 있는 게 너희가 타고 온 배니?]


남편의 말에 아그나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남편이 아내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저런 배로 잘도 여기까지 왔군. 저 배는 틀렸어. 완전히 망가졌어.]


젊은 부부의 얼굴이 잠시 어두워졌다. 그러다 아낙이 어린 형제를 보며 밝게 말했다.


[내 정신 좀 봐. 애들 배고프겠다. 뭐 좀 먹자, 얘들아.]


 남편은 어린 형제를 식탁으로 데려가 앉혔고, 아낙은 호밀로 만든 빵과 야채로 만든 죽을 내왔다. 어린 형제는 매우 배가 고팠던 터라, 맛있게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젊은 부부는 아이들이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쳐다보았다. 남편이 어디에서 왔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그러자 아그나르가 대답했다.


[저는 아그나르라고 하고, 10살입니다. 이 애는 제 동생 게이로드구요. 8살이예요. 저희는 흐라우둥 왕의 아들들입니다. 배를 타고 낚시를 나왔다가 바람이 불어서 여기까지 떠내려왔어요.]

[다행히 그렇게 멀지는 않구나. 그런데 큰일이네.. 지금은 바다가 얼어붙을 시기라서 바로 돌아가긴 힘들텐데..]


 남편의 말을 듣던 아그나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어느새 자기 몫의 빵을 다 먹은 게이로드가 형의 빵을 훔쳐보았다. 아낙이 황급히 일어나며 말했다.


[어머, 금방 가져다줄게.]

[아.. 아닙니다. 자, 게이로드 이거 먹어.]


 아그나르가 자신의 빵을 동생에게 주었다. 게이로드는 사양하지 않고, 형의 빵을 받아 들고 맛있게 먹었다. 젊은 부부는 이 모습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다만 두 사람의 시선이 향한 곳은 달랐다. 아낙은 동생에게 빵을 건넨 아그나르를 사랑스럽게 보았고, 남편은 형의 빵을 받아먹고 있는 게이로드를 유심히 보았다. 젊은 부부는 잠시 서로 무언가 이야기를 했다. 아낙이 식사를 마친 어린 형제에게 말했다.


[지금은 바다가 얼을 때라 너희를 집으로 데려다줄 수 없단다. 대신 바다가 녹으면 너희를 꼭 집으로 돌려보내줄게. 그때까지 여기서 우리랑 지내는 것이 어떻겠니? 여긴 우리 부부 말고는 사는 사람이 없단다.]


남편이 뒤를 이어 말했다.


[그동안 우리가 잘 돌봐줄 테니, 너희는 우리 일을 도와주렴. 아그나르는 우리 집사람을 도와주고, 게이로드는 나를 도와주면 좋겠구나. 토끼 사냥을 하려면 몸이 작은 녀석이 굴에서 꺼내기도 수월할 테니까.]


 게이로드는 아그나르를 바라볼 뿐이었고, 아그나르가 생각하기에도 그 방법 밖에 없어 보였다. 어린 형제는 봄이 되어 바다가 녹을 때까지 오두막의 젊은 부부와 함께 지내기로 했다. 어린 형제는 젊은 부부를 오두막 아저씨, 오두막 아줌마로 부르기로 했다. 그날 밤 어린 형제는 오두막 부부 사이에서 따뜻하고 편안한 밤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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