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드 단테 Mar 28. 2023

13.그림니르가 말하기를-일곱 : 꺼져라, 꺼져라..

북유럽신화, 북유럽신화이야기, 오딘, 게이로드, 아그나르

#. 꺼져라, 꺼져라, 가냘픈 촛불이여.


 이 광경을 멀리서 보고 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술에 취해 왕좌에 앉아 잠이 들었던 게이로드였다. 잠결에 잠시 눈을 떴는데, 아그나르가 그림니르에게 물을 먹이는 모습이 보였다. 게이로드는 이것이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게이로드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멍청한.. 그 자에게 물이라도 먹이는 것이냐..? 하긴, 너는 그랬지. 너는 착한 아이지. 마치 우리 형처럼.. 그래, 우리 형의 이름이.. 너의 이름이었지..)]


 게이로드는 술에 취해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대로 왕좌에 기댄 채 초점을 잃은 눈으로 그림니르와 아그나르를 멍하니 보았다. 그림니르 주변의 불길이 잦아드는 것도 보았고, 그림니르가 아그나르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도 보았다.


[(저.. 저 자가.. 감히.. 내 아들의 머리에서 손을 떼지 못할까!)]


 그러나 이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게이로드는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몇 번인가 눈을 깜빡이고, 다시 그림니르와 아그나르를 보았다. 그림니르는 아그나르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아그나르는 그 앞에 털썩 앉아있었는데, 마치 할아버지와 손자의 모습처럼 보였다. 갑자기 아들의 모습이 마치 어린 시절 형의 모습처럼 보였다. 그러다 다시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이 되었다. 게이로드는 다시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는 소근거리듯 아주 작게 들리다가 점점 커져 마치 자신의 에 대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그것은 그림니르의 목소리  것 같았다. 멀리 떨어져 있어 들리지 않을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게이로드는 자신도 모르게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 오딘, 칼 에밀 도플러 그림(1905.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Barnstokkr)


 그것은 어린 시절, 오두막 아저씨를 따라 사냥을 하고 낚시를 하며 들었던 이야기였다. 게이로드는 그것을 암송할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다. 언젠가 아들에게도 들려줄 생각이었다. 그 이야기를 지금 자신의 아들이 그림니르에게서 듣고 있는 것이다. 어느샌가 게이로드의 시선은 그림니르를 향했다. 그런데 그림니르가 오두막 아저씨의 모습으로 보였다. 게이로드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보다 자세히 보고 싶었다. 역시 어린 시절 만났던 그 오두막 아저씨였다. 그때 귓가에 이야기를 속삭이던 목소리 위로,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매우 위엄 있는 목소리였고, 화를 참는 목소리였다.


[게이로드, 너는 취했구나. 미드에 속아 너무 취해버렸어. 너는 나의 도움을, 나의 총애를 잃었느니라. 내가 너에게 말한 많은 것을 너는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익숙하면서도 두려워지는 목소리. 놀란 게이로드가 왕좌에서 일어서려 했지만 술에 취한 몸은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았다. 그 목소리가 다시 말했다.  


[너의 생명은 여기까지다. 나는 너에게 격노했느니. 너, 이제 오딘을 만날 것이다. 할 수 있다면 내게 가까이 와보거라. 그리고 보아라! 내가 오두막에서 너를 길렀나니! 나의 이름은 오딘이니라!!]


 게이로드는 두려움에 떨었다. 오두막의 아저씨에게, 자신의 수호신에게 지금까지 무슨 짓을 했다는 말인가!! 게이로드는 그림니르, 아니 오딘에게 달려가려고 했다. 오두막의 아저씨에게, 자신의 수호신에게 용서를 빌고자 했다. 그러나 술에 취한 그의 몸은 마음처럼 움직여주지 않았다. 무릎 위에 얹어두었던 칼집에서 검이 떨어졌다. 검은 손잡이를 아래로 한 채 떨어졌다. 게이로드가 왕좌에서 일어나 앞으로 걸어가려던 찰나, 두 발이 서로 엉키더니 게이로드는 그대로 떨어진 검 위로 넘어졌다. 검은 게이로드의 가슴으로 들어가 심장을 뚫었다. 게이로드는 비명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죽었다.


 아그나르에게 이야기를 마친 오딘이 게이로드를 향해 가만히 고개를 돌렸다. 그제야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든 아그나르도 오딘의 시선을 따라갔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가 쓰러져있는 것을 발견했다. 놀란 아그나르가 게이로드에게 달려갔다.


[아버지!!!]


 아그나르는 게이로드의 시신을 붙잡고 울부짖었다. 그제야 주변에서 술에 취해 잠이 들었던 신하들이 하나, 둘 잠에서 깨어났다. 그제야 상황을 인식한 신하들은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쩔 줄 몰라 우왕좌왕했다. 그런 이들을 뒤로하고, 그림니르는 그 자취를 감추었다. 며칠 뒤, 게이로드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게이로드의 신하들은 게이로드의 아들, 아그나르를 새로운 왕으로 앉혔다. 그리고 흐라우둥 왕의 신하들이 그러했듯, 게이로드의 신하들은 아그나르를 충실하게 보좌했다. 정작 게이로드는 그들을 믿지 않았고, 언제든 쓰고 버릴 생각이었지만, 그들은 게이로드를 진심으로 믿었고 충성으로 따랐다. 아그나르는 게이로드와는 달랐다. 게이로드처럼 냉철하고, 정략적인 면을 가졌지만, 동시에 큰아버지 아그나르처럼 따뜻한 인간의 마음도 잊지 않았다. 아그나르는 현명하게 나라를 다스렸고, 많은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북유럽신화, #북구신화, #오딘, #토르, #단테, #norsemyth, #dante, #게이로드, #그림니르, #아그나르


매거진의 이전글 13.그림니르가 말하기를-여섯 : 지나간 일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