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인적인 생각이며, 읽으시는 분께서 저와 다른 생각을 지니셨다면, 읽으시는 분의 생각이 맞습니다.
*.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정도로 가볍게 읽어주세요.
앞서 적었던 글(우리 집 강아지 - 하나)에 이어서 적어봅니다. 앞서 글을 적는데, 저와 함께 했던 우리 집 강아지들이 하나, 하나 떠오르더라구요. 그래서 우리 집 강아지들에 대한 기억을 적어봅니다. 덕분에 한동안 잊고 지냈다고 생각했는데, 모처럼 기억의 방에서 옛 친구들을 만나보았습니다. 다들 무지개다리를 건넌 지 오래겠지만, 우리 집 강아지들이 부디 그곳에서는 진짜 행복하길 바랍니다.
1.해피
내가 만난 첫 번째 강아지 '해피'는 하얀 털을 가진 똥개였다. 내가 유치원 때 즈음이었던 것 같다. 부모님께서 서는 맞벌이를 하셨고, 난 한동안 외갓집에서 지냈다. 그런데 외갓집에서도 난 혼자 있는 경우가 간간히 있었다. 두 외삼촌은 각각 회사와 학업으로 바빠 저녁이나 되어야 볼 수 있었다. 외할머니와 주로 지냈는데,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외할머니께서 성당일과 봉사로 바쁘셨다. 그런 날은 이모할머니 댁이나 옆집, 아니면 집에서 몇 시간씩 혼자 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큰외삼촌이 작은 강아지를 한 마리 사 오셨다. 집에서 혼자 노는 조카가 안쓰러우셨던 것 같다. 나는 처음에는 겁을 먹고 다락방까지 도망쳤었다. 참 겁쟁이였던지라. 그러나 이내 난 강아지와 친해졌다. 그리고 해피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왜 해피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때 유행하던 해피라면 때문인가? 강아지는 뽀삐가 더 유명했을 시절인데.. 흠..
- 시고르 잡종. 해피도 비슷하게 생겼었다.(출처 : http://www.getggul.com/section/view/11782 )
난 해피를 꽤나 예뻐했다. 강아지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아무것도 몰랐지만. 그냥 같이 놀고, 같이 먹고, 같이 잤다. 그러다 나처럼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게 된 이모네 여동생(이모의 딸, 외사촌여동생. 지금은 아이 엄마가 되었다.)이 외갓집에 맡겨졌다. 나와 여동생에게 해피는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다. '엄마놀이(소꿉장난)'를 하면, 나는 아빠, 여동생은 엄마, 해피는 늘 아기였고, 해피는 늘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외할머니와 외삼촌들이 집을 비워도 우리 셋이 같이 있으면 아무런 걱정 없이 재미있게 놀았다. 그러나 그런 날은 오래가지 않았다. 지금 생각에... 아마 한 일 년도 채 안되었던 것 같다. 해피가 처음 온날 내복을 입고 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반팔 옷을 입은 나와 여동생이 해피와 놀던 기억도 있다. 그리고 해피가 무지개다리를 건너 간 즈음에는 추웠던 기억이 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해피가 막 토하고 그랬던 것 같다. 나와 여동생이 아무것도 못하고 그냥 막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피는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해피는 외삼촌이 성당 뒷산에 묻어주셨다. 나와 여동생은 산에서 들꽃을 꺾어다가 해피 무덤에 꽂아주었다. 그때도 나와 여동생은 엄청 울었고, 손이 많이 시려웠다. 여동생은 해피를 기억하려나?
2. 바둑이와 흰둥이
나의 두 번째 강아지는 바둑이와 흰둥이다. 성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해피의 성별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국민학교 4~5학년 때였던 것 같다. 이때는 마당이 있는 집에 살았다. 그리고 어디서 데려왔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아마 부모님이 어디선가 데려오셨던 것 같다.
먼저 온 것은 바둑이였다. 아마도 견종은 똥개였을 거다. 크기는 작았지만 귀가 컸다. 검고 하얀 무늬가 온몸을 덮고 있었고, 그래서 당연히 '바둑이'라고 불렀다.(솔직히 이런 강아지는 바둑이라고 불러줘야 하는 거 아닌가?) 아마도 내가 혼자고, 집도 지킬 겸, 부모님이 어디선가 데려오신 게 아닌가 싶다. 난 강아지를 좋아했고, 바둑이도 예뻐했다. 해피 때의 기억이 있어서였는지, 옆에 끼고 지내지는 않았지만. 그러다 얼마 뒤 흰둥이도 우리 집에 왔다. 흰둥이는 이름처럼 하얀 강아지였다. 마치 해피처럼. 아버지가 큰 개집을 만들어 주셨고, 바둑이와 흰둥이는 거기서 함께 지냈다. 내가 못 입는 작아진 옷은 바둑이와 흰둥이의 이불이 되었다. 강아지들의 밥을 주고, 똥을 치우는 건 내 담당이었지만 싫지 않았다. 학교에 갈 때면 바둑이와 흰둥이가 왕왕거렸고, 집에 돌아오면 바둑이와 흰둥이가 나를 보며 꼬리를 흔들며 반가워했다. 친구들과 놀지 않을 때는 바둑이, 흰둥이와 마당에서 놀았다. 겨울 눈이 내린 날 바둑이, 흰둥이의 목줄을 풀고 마당을 막 싸돌아다니면서 같이 놀았던 기억이 난다.
- 바둑이와 비슷한 강아지. 우리 바둑이는 여기서 귀가 더 크고, 점박이도 컸다.(출처 : https://unsplash.com/ko/@anaminella)
그러나 6학년 여름 바둑이와 흰둥이는 나와 이별했다. 그날은 지금도 똑똑히 기억난다. 여름방학 중이었고, 그날은 방학 중간에 있는 소집일이었다. 마침 방학이라 외할머니도 우리 집에 와 계셨던 것 같다. 나는 학교 갈 준비를 하던 중이었는데, 벨이 울렸다. 나가보니 처음 보는 아저씨가 서있었다. 그리고 그 아저씨가 바둑이와 흰둥이를 데려갔다. 아마 개장수였을 거다. 바둑이와 흰둥이는 막 울면서 짖었다. 난 우리 강아지들을 왜 데려가냐고 막 화를 내고 그 아저씨의 바지를 잡고 늘어졌다. 그때 아버지와 어머니는 나를 떼어놓느라 진땀을 빼셨다. 그렇게 난 바둑이, 흰둥이와 이별했다. 그날 하루 종일을 외할머니 품에서 울었다. 덕분에 소집일에 결석했고, 내 6년 개근은 날아갔다. 6년 개근 따위는 아쉽지 않았다. 난 그보다 바둑이, 흰둥이와 헤어진 것이 너무 힘들었다. 지금도 내 베프들은 이때 이야기를 하곤 한다. 소집일에 내가 나오지 않아서 걱정된 친구들이 우리 집에 왔다가 펑펑 우는 나를 보고 엄청 놀랐었다고.
3. 다롱이
그다음으로 만난 강아지는 '다롱이'라는 이름의 요크셔테리어였다. 우리 집 강아지 중 최초로 견종을 아는 강아지다. 다롱이는 다른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였고, 강아지라기에는 나이도 좀 있었다. 한 대여섯 살은 먹었을 거다.(그 이상 되었을지도?) 그때는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였다. 우리 집이 가게를 할 때라 가게 한편에 있는 가게방에 살고 있었다. 아버지였나? 어머니였나? 기억은 나지 않는데, 아는 집에서 사정이 생겨서 키우지 못하게 된 다롱이를 우리 집으로 데려오셨다. 이 작은 집에 다롱이를 데려온 것은 바둑이와 흰둥이의 일이 미안해서였지 않았을까 싶다. 바둑이, 흰둥이와 이별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가게로 이사한 거였으니까. 다롱이와는 그럭저럭 지냈던 것 같다. 내가 처음으로 견종에 대해서 들은 것도 이때다. 난 개는 진돗개, 셰퍼드 아니면 다 똥개인 줄 알았다. 그러다 요크셔테리어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고, 차츰 견종이라는 게 있다는 것과 다른 견종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 앨범을 찾아보니 다행히 '다롱이'의 사진이 남아있었다.
다롱이는 꽤 얌전한 녀석이었다. 짖는 경우도 많지 않았고, 요크셔테리어 특유의 식탐도 없었다. 주면 주는 대로 잘 먹었고, 많이 움직이기보다는 주로 앉아있거나 자는 날이 많았다. 난 그때까지도 강아지는 꼭 산책을 시켜야 한다는 건 몰라서 산책은 거의 시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주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다롱이와도 잘 지냈다. 개껌을 가지고 다롱이와 씨름도 하고, 내가 소리 나는 공을 굴리면 다롱이가 코나 앞발로 쳐서 나에게 다시 보내기도 했다. 그때 처음으로 게임기를 가지게 되었는데, 내가 게임을 하고 있으면 다롱이는 내 허벅지에 머리를 얹고 잠이 들었다. 그렇게 또 일 년 즈음 지났을 때. 난 다롱이와도 이별을 했다. 원래 다롱이를 키우던 집에서 다시 다롱이를 달라고 했다. 못 키우겠다고 보낼 때는 언제고, 다시 달라니.. 그러나 거절하지는 못했고, 다롱이는 원래 주인에게로 돌아갔다. 원래 주인에게로 간 거니 다행이다 싶었던 지, 왠지 바둑이, 흰둥이 때만큼은 힘들지 않았다.
어쩌면 바둑이, 흰둥이 때 너무 힘들어서 정을 많이 주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도 좀 자랐고, 강아지 말고도 함께 놀 친구가 많아서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내 앨범에는 다롱이를 찍은 사진 한 장이 남아있다.
4. 초롱이
'초롱이'는 막내 고모네서 키우던 말티스가 낳은 새끼 중 한 마리였다. 우리 집 강아지 중 두 번째 견종을 아는 강아지다. 고모네서 새끼들 까지 다 키울 수가 없어서 우리 집으로 한 마리가 오게 되었는데, 그게 초롱이였다. 초롱이라는 이름은 눈이 초롱초롱하다고 사촌형이 붙인 이름이다. 초롱이는 수컷이었고, 말티스임에도 코부분이 길었다.(사촌형은 '여우새끼'라고 부르기도 했다.) 아마 고모네 말티스가 말티스-믹스였던 것 같다.
초롱이가 우리 집으로 온 것은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나는 그때 첫사랑으로 몸살을 앓던 때였고, 그제야 중2병이 심각해졌다. 초롱이는 귀여웠고, 나를 정말 많이 따랐다. 그럼에도 내 관심사는 다른 곳에 쏠린 터라 초롱이를 많이 예뻐해주지는 못했다. 밥과 개껌을 챙겨주고, 가끔씩 놀아주는 정도? 그럼에도 초롱이는 내 곁에서 찰싹 붙어있곤 했다.
- 초롱이는 이 강아지보다 코가 길었다. 지파우스 사진(출처 : https://unsplash.com/ko/@ziphaus)
난 그런 초롱이를 은근히 귀찮아했다. 솔직히 그랬다. 한창 연애편지를 쓰고, 전화통화를 하는데 초롱이가 옆에서 놀아달라고 낑낑거리는 게 귀찮았다. 그래서 지금은 초롱이에게 너무 미안하다. 그때 더 잘 놀아줬어야 하는데.. 그러다 한 반년 정도 지났을까? 학교에 다녀오니 초롱이와 초롱이의 집과 물건이 사라져 있었다. 어머니에게 물으니 고모네서 도로 데려갔다고 한다. 왜인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그해 연말에 고모네 갔을 때 초롱이는 없었다. 나도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다. 내가 너무 매정한 녀석인 거다. 그리고 우리 집은 한동안 강아지를 키울 생각이 없었다. 초롱이 사진이 한 장도 없다는 것이 너무 미안하고 아쉽다.
5. 이름 없는 강아지
아마 초롱이와 이별하고 난 그즈음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께서 아주 작은 똥개를 데려오셨다. 말 그대로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것처럼 보이는 아주 작은 핏덩이나 다름없는 아이였다. 아버지 아는 사람네 개가 낳은 새끼였는데, 개주인은 개도 강아지도 귀찮다며 내다 버렸다고 했다. 어미인 개는 어딘가로 사라졌고, 남아있는 강아지 중 살아있는 녀석을 아버지께서 불쌍하게 여겨 데려오셨다. 불쌍해서 데려왔지만, 아버지도 나도 이 아이가 오래 살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살아남으면 우리가 키우고, 죽는다면 묻어주자라고 하셨다. 그래서 이름도 지어주지 않았다. 난 따뜻한 우유도 먹여보고, 낡은 옷으로 몸도 데워주었지만 다음날 아침 이 아이는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아이는 집 뒷마당에 묻혔다.
6. 폴
현재까지 우리 집의 마지막 강아지다. 그리고 '폴'도 다른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였다. 내가 대학교 2학년이던 어느 날 퇴근하신 어머니가 강아지와 강아지의 물건을 한 아름 가지고 오셨다. 어머니가 아는 분이 키우던 강아지, 폴이었다. 견종은 요크셔테리어. 성별은 수컷, 나이는 세 살 정도 되었던 것 같다. 그 당시 우리 집은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IMF를 우리 집이라고 피할 재간은 없었다.) 부모님은 다시 맞벌이를 하셨고, 나도 학교를 다니면서 작게나마 아르바이트를 했다. 변변치는 않아서 겨우 내 용돈이나 하는 정도였지만.
폴이 우리 집으로 오게 된 사정은 대략 이렇다. 당시 어머니는 화장품 방문판매를 하셨었다. 어머니가 아는 분이라고는 했지만, 아마 어머니의 고객이었던 것 같다. 그 고객네 아들내미가 자취를 하며 키우던 강아지가 폴이다. 그 아들내미가 군대를 가게 되며, 폴은 자연스레 본가로 보내졌다. 그런데 그 고객은 개를 무지 싫어하는 사람이었고, 어머니에게 화장품을 사주면서 폴을 반강제로 떠넘겼다. 우리가 강아지를 키울 형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멀쩡한 생명을 버릴 수도 없었다. 그렇게 폴은 우리 집 강아지로 지냈다. 마지막 강아지라 그런가, 아니면 좀 특이한 녀석이라 그런가 폴은 에피소드가 좀 많다.
- 다행히 '폴'의 사진도 남아있다.
폴은 그래도 배변교육은 잘된 편이었다.(우리 집 강아지들 중 배변교육이 안된 아이는 없었던 것 같다. 해피는 기억이 안 나서 모르지만.) 욕실 구석에 만들어준 자리와 산책할 때가 아니면 배변을 하지 않았다. 다만.. 흥분했을 때는 달랐지만. 이 녀석은 흥분을 하면 소변을 지리는 버릇이 있었다. 특히 나와 오래 떨어져 있다가 만나기라도 하면 반가워서였는지 정신없이 꼬리를 흔들고 달려들다가 내 양말에 소변을 쏟기도 했다. 내 친구인 S도 내 옆에 서있다가 한 번 당했는데 그때부터 폴을 오줌싸개라고 불렀다.
폴은 요크셔테리어답게 식탐도 많았다. 어찌나 식탐이 많은지 먹을 것만 보면, 먹을 수 있는 것이건 아니건 탐을 냈다. 내가 그 버릇을 고쳐보고자 매운 고추장도 써보고, 후추까지 써봤지만... 실패했다. 한 번은 아버지께서 대야에 폴의 사료를 한가득 쏟아놓으시고 그 위에 폴을 올려두셨다.
[어디 네 녀석이 얼마나 먹나 보자. 아마 먹다가 질려버릴껄?] 하시면서.
폴의 식탐을 고쳐보시고자 극약처방을 써보신 거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방법도 소용이 없었다. 폴은 누가 훔쳐먹기라도 하는 듯 계속 먹었다. 진짜 배가 빵빵해질 때까지 먹다가... 토했다. 먹은 걸 다 토해냈다. 아버지와 나는 비상이 걸렸고, 저러다 죽는 거 아닌가 싶어 병원에 데려가고 난리가 아니었다. 그러고도 폴의 식탐은 여전했다. 물론 그런다고 간식을 줄 아버지와 나는 아니었지만.
폴은 '안돼!'라는 말 대신 '컷!'이라고 해야 멈췄다. 전 주인이던 그 아들내미가 영화감독 지망생이었던 터라 폴에게 안된다는 말 대신 '컷!'이라고 가르친 결과였다.
폴은 분리불안이 심했다. 아마도 전 주인과 떨어지고, 버려졌다고 생각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부모님은 맞벌이에, 내가 학교나 아르바이트를 가면 집에는 당연히 폴 혼자 있어야 했다. 그럴 때면 폴이 어찌나 짖고 울어대는지 옆집에서 자주 민원이 들어왔다. 그러다가 집에 가족 중 누군가라도 들어오면 아주 이산가족을 만난 듯 반가움에 난리부르스를 췄다. 그때도 지금도 이건 마음이 아프다.
폴은 아마 산책을 좋아했던 것 같다. 자주는 아니지만 간간히 산책을 데리고 나가면 그렇게 좋아했다. 물론 그렇다고 막 난리를 치지는 않았다. 이것도 전 주인의 교육이었던 것 같은데, 몇 발자국 앞에서 적당한 속도로 걸었다. 내가 뛰기 전까지는 뛰지도 않았다. 다만 산책을 하면서도 종종 고개를 돌려 내가 곁에 잘 있는지 확인하곤 했다. 아마 분리불안과 비슷한 이유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폴은 우리 집에서 서열을 어긴 유일한 강아지였다. 우리 집을 거쳐간 강아지들은 [아버지-어머니-나-강아지]라는 서열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폴은 달랐다. 일반적으로 개과 동물이 그렇듯 가장 나이 많은 수컷을 대장으로 여기곤 한다.
폴에게도 '아버지'가 가장 서열이 높았다. 아버지는 강아지를 혼을 내실 때 벽에 기대 세워두시곤 했는데, 아버지가 '내려'라고 하시기 전까지는 폴은 낑낑대며 그 자세를 유지하려고 애썼다. 주말이나 휴일에는 자신의 한쪽 팔에 폴의 머리를 얹어놓고 낮잠을 주무실 때도 있었다. 그럴 때는 완전 얼음이 돼서 미동도 못했다. 나를 보면서 애잔하게 쳐다보기만 할 뿐. 내가 '폴, 이리 와'라고 해도 아버지의 허락이 없으면 절대 자리를 뜨지 않았다.
폴에게 두 번째로 서열이 높은 건 '나'였다. 폴은 내 옆자리, 내 방을 가장 좋아했다. 내가 게임을 하거나 과제를 하는 동안에는 내 옆에서 있거나 내 무릎에 올려두곤 했다. 산책은 주로 내가 시켰고, 놀아주는 것도 내가 가장 많이 놀아줬으니 당연한 거려나? 어쩌면 전 주인과 내가 비슷한 또래에 남자라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폴이 느끼는 '어머니'의 서열이었다. 우리 집에 폴을 데려온 것도, 폴의 씻기거나 털을 빗겨주는 걸 가장 많이 한 것은 어머니였다. 개껌을 사다주시는 것도 어머니였고. 폴도 대체로 어머니 말을 잘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서 어머니와 둘이 TV를 보던 중이었다. 마침 개그프로그램을 보던 중이었는데, 어머니가 웃으시면서 옆에 앉은 내 어깨를 툭툭 때리셨다. 그때 내 옆에 있던 폴이 하얀 이를 들어내더니 어머니를 향해 사납게 짖어대기 시작했다. 나도, 어머니도 깜짝 놀랐다. 우리 집 강아지들 중 이런 반응을 보인 건 폴이 처음이었다. 그 이후에도 어머니가 나에게 장난으로라도 툭 치시거나 어쩌다 화라도 내시면 폴은 어김없이 사납게 굴었다. 폴에게 어머니는 비슷한 서열이거나 더 낮은 서열로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폴을 우리 집으로 보낸 어머니의 고객과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긴 했지만.
그리고 이것은 문제가 되었다. 몇 번이나 그런 일을 당하신 어머니는 폴에게 완전히 정이 떨어져 버렸다. 점점 폴에게 신경을 쓰지 않으셨다. 당연히 개껌도, 목욕도, 빗질도 없었다. 그건 내 몫이 되었다. 어머니와 폴의 사이는 데면데면해졌다. 내가 군대를 가기 위해서 휴학계를 내고 온 날. 집에 오니 폴이 없었다. 폴의 집도, 사료와 개껌은 물론 폴의 모든 짐도 함께 사라졌다. 결국 어머니는 폴을 다른 집으로 보내버리셨다. 아버지와는 이야기가 되셨던 것 같은데, 나에겐 한마디도 없으셨다. 어릴 때처럼 울지는 않았지만 참 많이 아쉽고, 섭섭했다.
그나마 다행은 개를 좋아하는 집으로 보냈다는 거였다. 그 집은 이미 키우는 개도 있다고 했다. 내가 학교에 간사이 폴은 오전 내내 내 방에서 한참을 엎드려 있었다고 했다. 내 방은 주로 오전에 햇살이 가장 많이 들어왔는데, 폴은 내 방에서 그 햇살을 받으며 잠을 자는 걸 좋아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난 폴의 소식은 듣지 못했다.
이상이 우리 집 강아지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 아이들을 떠올리며 한동안 눈이 시큰해졌다. 그 동네에서는 다들 잘 지내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다시금 다짐해 본다. 다시 우리 집 강아지가 되는 아이는 더 제대로 사랑해 주겠다고. 우리 집 강아지, 우리 집 서열 꼴찌를 만날 날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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