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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Dec 14. 2022

03. 지식을 탐하는 욕망-다섯 : 크바시르

북유럽신화, 크바시르, 시예의 봉밀주, 수퉁

#. 크바시르와 시예의 봉밀주


두 신족 간의 최초의 전쟁을 평화협상으로 마무리했다. 아사 신족과 반 신족은 영원한 평화와 우정을 약속하며 거대한 통에 서로의 침을 섞어 그 증표로 삼았다. 서로에게 침을 뱉는 행위가 어쩌면 대단히 수치스러워보일지 모르지만, 의외로 상대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었다. 북미지역의 일부 인디언 부족과 탄자니아 등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는 존경과 우호의 의미로 상대에게 침을 뱉기도 했다. 오딘은 이 증표를 그대로 두기엔 아쉽다고 여겼다. 오딘은 대지의 흙과 신들이 뱉은 침을 섞어 인간의 형상으로 빚어냈다. 오딘이 숨결을 불어넣자, 그 형상은 곧 신도, 인간도 아닌 남자가 되었다. 오딘은 그에게 '크바시르(Kvasir:주장하는 자, 요구하는자.)'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신들의 침에서 태어난 크바시르는 그 어떤 인간보다도 현명했으며, 무엇보다도 타고난 입담(말빨?)을 지니고 있었다.(오딘이 직접 혀를 만들어 주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는 아홉세계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많은 것을 알고 있었고, 많은 일의 해답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자신의 재능을 그 스스로 자랑하지는 않았다. 누군가가 그에게 도움을 구하면 크바시르는 그 스스로 해답을 찾아내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주었다. 그에게 조언을 구한 사람은 그와 대화하는 가운데 스스로 해답을 찾아내고는 매우 기뻐했다. 그와 이야기하면 스스로가 현명해졌다는 생각을 갖게되곤 했고 모두가 그를 존경하고 사랑했다. 특히 신들은 그를 많이 아꼈으며, 그에게 신들을 대신하여 세상에 신들의 뜻을 알리는 역할을 주었다. 물론 크바시르가 이런 신들의 기대에 부응했음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 중에는 '피얄라르(Pijalar:뜻은 알려져있지 않으나, 숨기다라는 의미로 여겨지기도 함)'와 '갈라르(Galar:비명을 지르는 자)'라는 난쟁이 형제도 있었다. 이 난쟁이 형제는 난쟁이답게 오만했으며, 그 누구보다도 사악하고, 음흉했다. 자신들이야말로 세상의 모든 지식과 최고의 지혜를 지녔다고 자부했다. 크바시르의 소문을 듣고는 자신들보다 더 똑똑한 자가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고, 그 사실이 못마땅했다.


마침 크바시르가 이 난쟁이 형제가 사는 지역을 방문했다. 이들 형제는 속마음을 숨긴 채 크바시르를 자신들의 집으로 초대했고, 크바시르는 기꺼이 그들의 초대에 응했다. 인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피얄랴르와 갈라르는 자신들의 지식과 지혜를 자랑했다. 크바시르는 그들의 말을 들으며, 그저 의문가는 것들에 한 두마디 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것이 반복되면서 이 난쟁이 형제는 점점 말문이 막혀갔다. 말을 하면 할수록 자신들의 지식과 지혜가 부족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결국 이 난쟁이 형제는 속으로 크바시르가 자신들보다 한참 위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분했고, 질투했으며, 화가 났다. 이들은 이 상황을 결코 인정할 수 없었다.


- 크바시르의 죽음, 프란츠 스타센(1920, 출처 : https://norse-mythology.org/kvasir/)


'죽여야 한다.'


서로의 눈빛만으로도 이들 형제는 마음이 통했다. 이들 형제는 좋은 술이 있다며 크바시르를 밀실로 데려갔다. 그리고는 숨겨둔 칼로 단숨에 크바시르를 죽여버렸다. 그런 뒤, 크바시르의 피를 두 개의 항아리와 하나의 솥에 받아내어 꿀을 섞어 '봉밀주(蜂蜜酒:벌꿀술, 기원전 부터 인류가 만들어 마신 술의 종류 중 하나)'로 만들어버렸다. 이른바 '시예의 봉밀주(skaldskapar mjaðar)'였다. 다른 이름으로 '크바스(kvas)'라고도 불리는 이 술은 한 모금만 마셔도 지식과 지혜, 시상이 차오르는 능력을 지닌 마법의 술이 되었다. 이 난쟁이 형제는 이 술을 자신들의 거처 아주 깊숙히 감춰두었고, 크바시르가 죽었다는 사실을 비밀에 붙였다. 신들이 크바시르를 찾자, 이렇게 말했다.


"아고, 어쩐답니까? 크바시르, 그 작자가 자기가 지닌 지식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죽어버렸네요?"


신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증거가 없으니 일단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난쟁이 형제가 이 술을 제대로 즐기기도 전에 뜻밖의 사건이 발생했다. 크바시르로 술을 담근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은 자신들의 집을 방문한 '길링(Gilling, 또는 Gillingr)'이라는 거인 부부를 말다툼 끝에 죽여버리고 만 것이다. 이들은 먼저 길링을 바람 좀 쐬자는 핑계로 데리고 나가 배에 태운 다음, 바다에 빠뜨려 죽였다. 그 소식을 듣고 슬픔에 빠진 길링의 부인은 머리 위로 돌덩이를 떨어뜨려 죽여버렸다.


- 수퉁, 루이스 허드 그림(1900,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Suttungr)


길링 부부에게는 '수퉁(Suttungr:병들게 하는 혀)'이라는 매우 잔인한 아들이 있었다. 부모님이 돌아오지 않자, 찾아나선 수퉁은 난쟁이 형제들이 자신의 부모를 죽인 것을 알게 되었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수퉁은 단숨에 이들 붙잡아 바다로 끌고갔다. 수퉁은 이들 난쟁이 형제의 힘으로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깊이에 있는 암초에 이들 형제를 단단히 묶었다.


"오해야! 오해라고! 사고였어! 사고라고!"

"그래! 그건 사고야! 우리 잘못이 아니야!"


바닷물이 자신의 목언저리까지 몰려오자 피얄라르와 갈라르가 울부짖었다. 물론 그런 울부짖음이 수퉁에게 통할리는 만무했다. 그러자 작전을 바꾼 피얄라르가 소리쳤다.


"제발 살려줘, 우리를 살려주면 우리가 가진 가장 최고의 보물을 너에게 주겠어!"

"그래, 세상 모든 지식과 지혜가 담긴 마법의 술이야! 그걸 너에게 줄께!"


갈라르도 옆에서 거들며 소리쳤지만, 수퉁은 들은체도 하지 않았다. 수퉁은 이들이 바닷물에 잠겨 숨이 끊어질 때까지 싸늘한 눈으로 쳐다볼 뿐이었다.(전승에 따라 시예의 봉밀주를 댓가로 살려줬다는 이야기도 있긴하다.) 수퉁은 난쟁이 형제의 거처로 돌아가 깊숙히 숨겨진 시예의 봉밀주를 찾아 요툰헤임으로 돌아왔다. 수퉁은 산 속 깊숙한 곳에 동굴을 뚫은 뒤, 시예의 봉밀주를 숨겼다. 그리고 자신의 딸 '군로드(Gunnloð:싸움거품)'에게 이것을 지키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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