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리는 스튤라가 정리한 자료를 살펴보았다. 역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스튤라는 스노리가 가르친 이상으로 잘 배우고 있다. 스노리에게는 스튤라의 형, 올라프를 가르칠 때와는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올라프도, 스튤라도 분명히 유명한 시인이 될 것이다. 그리고 스트룰룽 일족의 든든한 재목이 될 것이다.
스튤라가 약간 긴장한 모습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스노리는 흐뭇하게 조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 내 이름은 알비스!
'스바르트알바헤임(Svartalfaheimr : 검은 요정의 나라)'. 이곳은 '난쟁이(드베르그/Dvergr)'에게 주어진 땅이다. 지상에는 큰 산과 검고 어두운 숲이 대부분으로, 겉으로 봐서는 마치 원시림이나 버려진 땅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스바르트알바헤임의 진면목은 지상이 아닌 지하였다. 난쟁이들은 주로 지하에서 살았다. 햇살과 난쟁이는 상극이었기 때문이다. 난쟁이들은 지하에 자신들만의 나라를 건설했다. 나라라고는 해도 따로 왕이나 지도자가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보다도 자존심이 강하고, 샘이 많은 것이 바로 난쟁이다. 이들은 누가 왕이나 지도자가 되는 것을 두고 볼 성격이 아니다. 그래도 규모가 커지면서 어느 정도 사회적인 관계나 규칙이 필요했다. 난쟁이들은 나이 많은 난쟁이들 중 그나마 욕을 덜먹는 이들로 장로 위원회를 만들어 느슨하게나마 사회를 유지했다.
난쟁이들은 협력보다는 경쟁을 우선시했다. 자존심이 강하고, 시기와 질투가 많다 보니 저마다 제멋대로 땅 속 여기저기에 터널과 굴을 파고 지냈다. 그러다 보니 스바르트알바헤임의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난쟁이들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아마 로키도 모를 것이다.) 그럼에도 소문은 빨리 돌았다. '누가 새롭게 뭘 만들었다더라', '누가 신에게 진상품을 바쳤다더라' 하는 소문은 물론, 서로 친하게 지내지 않았으면서도 이웃집 배겟머리 송사까지도 꿰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 난쟁이들, 조지 피어슨 그림(1871. 출처 : https://de.wikipedia.org/wiki/Dvergatal )
이들은 손재주가 매우 뛰어난, 아주 솜씨 좋은 장인들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망치를 들고 모루를 두들긴다.'는 말이 생길 만큼 이들의 손재주는 천부적이었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여러 가지 물건들은 매우 뛰어난 성능과 아름다움을 자랑했다. 어떻게 세상에서 가장 추한 외모를 지닌 이들이 이토록 아름다운 물건을 만들어내는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수호신(로키, 정작 난쟁이들은 로키를 싫어했음)처럼 남이 나보다 나으면 시기와 질투를 보냈고, 남이 나보다 모자라면 깔보고, 무시했다.
대부분이 지하로 뻗어있는 이곳은 땅 속에 매장된 자원도 매우 풍부했다. 땅 위는 개간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땅 속은 그야말로 별천지나 다름없었다. 이들은 땅 속에서 구리와 철, 금과 은을 비롯한 수많은 광물과 보석을 채굴했다. 이것들은 난쟁이들의 뛰어난 손재주를 거쳐 세상에 둘도 없는 명품이나 보물로 변신했다. 그렇기에 많은 신과 거인, 인간의 귀족과 왕들이 난쟁이가 만든 명품과 보물에 눈독을 들였다. 지금까지 알려진 수많은 난쟁이의 이름은 그들로 인해 남겨진 것들이다.
그렇게 알려진 이름 중에 '알비스(Alviss:모든 지혜)'라는 난쟁이의 이름도 있다. 그는 최근 스바르트알바헤임에서도 자주 이름이 오르내리는 젊은 난쟁이였다. 창백한 피부를 시커먼 그을음으로 감춘 알비스의 안목과 손재주는 젊은 난쟁이들 사이에서도 독보적이었다. 그 덕에 아스가르드의 신들에게 까지 소문이 났다. 알비스는 다른 젊은 난쟁이들 중 가장 먼저 신들에게 장신구를 납품하게 되었다. 그러나 알비스가 유명해진 것은 비단 안목과 손재주 때문만은 아니었다. 알비스를 유명하게 만든 것이 더 있었다. 바로 그의 끝간데를 모를 자만심과 거만함이었다.
알비스가 어찌나 콧대가 높고, 거만한지.. 다른 난쟁이들도 모두 알비스와는 엮이는 것을 싫어했다. 분명 그 재주는 오래전 유명했던, '브로크(Brokkr : 중계인)'와'에이트리(Eitri : 독)'형제나'이발디의 아들들(Sons of Ivaldi/Iwaldi)'에 버금갈만 했다. 그러나 그 자만심과 거만함은 지나쳐도 너무 지나쳤다. 신들에게 장신구를 납품할 때에도 마지못해 고개만 끄덕거렸다. 신들도 이런 알비스가 못마땅했으나 그 솜씨가 좋아서 일단 눈감아 주었을 뿐이다. 장로 난쟁이들까지 나서서 알비스를 혼내기도 했지만, 알비스는 장로들의 말을 귀똥으로도 듣지 않았다.
- 알비스의 시, W.G 콜린우드 그림(1908.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Alv%C3%ADssm%C3%A1l )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 원래의 뜻은 전혀 다르지만, 여기서는 '나만 잘났다'라는 의미)".
알비스가 알았다면, 이 말은 자신을 지칭하는 말이라고 했을 것이다. 알비스에게는 세상에서 오직 자신만이 최고이며, 자신만이 귀중했다. '나 이외에는 다 천한 것들, 다 하바리 인생들이다.' 이것이 세상을 대하는 알비스의 자세였다.
자칭 존귀하시고 대단하신 알비스의 작업장은 오늘도 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았다. 알비스는 방금 만든 장신구를 보며 크게 웃었다.
[헹~ 제깟놈들이 어떻게 나보다 먼저 주문을 받으려고 해?! 웃기는 소리지. 제깟놈들의 실력으로는
이런 섬세하고 아름다운 작품은 절대로 못 만들껄! 헤헤헤~!!]
알비스는 방금 완성한 장신구를 자찬하며 다시금 호탕하게 웃었다. 알비스는 장신구를 포장해 커다란 자루에 넣었다. 자루 속에는 여신들에게 납품할 장신구로 가득했다. 알비스는 자루를 어깨에 짊어지고 작업장을 떠나 아스가르드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