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웬 이상한 난쟁이가 나타나 헛소리를 지껄여대니 토르는 황당했다. 토르의 황당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까치발을 한 알비스는 겁도 없이 토르의 무릎을 손으로 툭툭 치며 말했다.
[넌 하인이냐? 무식하게 덩치만 크구먼. 자, 어서 가서 내 마누라나 데려와. 여기 스루드의 위대한 신랑, 알비스님께서 친히 납시었으니까. 신방을 마련해 뒀겠지? 뭐 해?! 어서 빨리 안내하지 않고? 난 지금 당장 내 깔치(여자친구, 애인을 뜻하는 비속어)를 품어야겠다고!]
토르는 황당을 넘어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오밤중에 겁도 없이 토르의 저택 대문 앞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쉽게 끝날 일이 아니다. 거기다 토르가 몰래 술을 마시려던 것을 방해했고, 비속어까지 섞어가며 토르가 애지중지하는 스루드를 들먹였다. 토르가 당장 이 자리에서 알비스를 짓이겨도 누구 하나 뭐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알비스는 토르가 화가 난 것도 모르고 계속 재촉했다.
[아놔! 하인 나부랭이가 뭐 하는 거야! 넌 내가 반드시 자른다! 알아~! 엥?!]
[하아.. 너 지금 네 놈이 무슨 소리를 짖어대는 건지는 아는 거지? 내가 누군지 모른단 말이냐?!]
토르가 무섭게 노려보았으나, 알비스는 오히려 짜증을 냈다.
[난 한가하게 너 같은 꺽다리 하인 나부랭이와 노닥거릴 시간이 없단 말이야! 어서 스루드의 방으로 안내하지 않고 뭐 해?! 난 스루드의 남편이란 말이다! 버릇없는 놈 같으니라고!]
[하아..]
토르는 한숨을 내쉬며 화를 누그러뜨렸다. 아무래도 자신의 앞에 선 난쟁이가 미친 것 같았기 때문이다. 스루드는 결혼을 하기엔 어렸다. 들어온 혼담도 없었고, 토르는 아직 스루드를 시집보낼 생각도 없었다. 설령 결혼 전의 프레이가 와서 청혼을 해도 화가 날 일인데, 어디서 미친 난쟁이가 하나 와서 이 소란이란 말인가? 성질 같아서는 이 미친 난쟁이를 당장 짓이겨 버리고 싶었지만 여기는 아스가르드, 피를 봐서는 안 되는 성스러운 땅이다. 어떻게 들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토르는 미친 난쟁이의 피로 아스가르드를, 특히 저택의 대문 앞을 더럽히긴 싫었다. 그렇다고 미친 난쟁이 하나 때문에 다른 이를 귀찮게 하기도 싫었다. 토르는 일단 난쟁이를 집어 들어 저택 앞에 있는 넓은 공터로 데려갔다.대문 앞에서 토르가 미친 난쟁이와 옥신각신 하는 것도 좋은 그림은 아니었으니까.
- 앉아있는 토르의 조각상. 헤르만 에른스트 프룬드 작.(출처 : 덴마크 국립미술관 소장, https://www.smk.dk/)
이 공터는 마차를 돌리거나 저택을 찾아온 손님의 마차나 말을 세워두기도 하는 곳이었다. 토르는 공터의 안쪽, 하마석 앞에 바둥거리는 알비스를 내려놓았다. 알비스가 소리를 질렀다.
[이 무례한 자식!감히 내 몸에 손을 대다니!]
[네가 드루드의 남편이라고? 어느 누가 그런 소리를 지껄이더냐?]
토르가 알비스를 내려다보았다.
[뭐? 이거, 이거 영 상황파악을 못하는 하인이구만 그래. 난 알비스야. 모든 신들이 내가 만든물건이라면 사족을 못쓰지. 난 이미 수많은 무기와 갑옷, 장신구들을 신들에게 바쳐왔어.위대한 난쟁이. 최고의 존재! 알비스! 당연히 내 신부가 될 사람도 최고여야 하지.]
알비스가 자기 자랑을 시작했다. 토르는 그 꼴을 내려보고 있으려니 목이 아팠고, 바닥에 편하게 앉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알비스가 작아서 토르는 알비스를 내려보아야 했다. 토르가 앉자, 알비스가 말을 중단했다. 토르가 자신을 내려다보는 것이 불쾌했다. 알비스는 토르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마석이 알비스의 눈에 들어왔다. 알비스는 마치 바위산을 등반이라도 하듯, 하마석에 매달려 버둥거리다 간신히 위로 올라갔다. 그러더니 다시 토르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살짝 까치발을 들었다. 겨우 바닥에 앉은 토르와 눈높이가 맞는 정도였는데, 알비스는 자신이 더 크다고 여겼는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에고.. 에고.. 무식한 게 덩치만 커서는.. 내가 어디까지 이야기했지? 아! 그렇지! 그런 이유로 나 위대한 알비스님께서 스루드를 아내로 선택하신 게야! 스루드가 이 사실을 알면 기뻐서 바로 달려와 내 품에 안길 테지. 그러니 어서 날 스루드의 방으로 안내하라구~!!]
도대체 누가 상황파악을 못하는 건지..토르는 허공을 향해 한숨을 보내고는 이 버릇없는 난쟁이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네 녀석이 최고라 최고의 신부가 필요하다? 그래서 선택한 게 스루드란 말이지? 네놈 마음대로 말이야? 허.. 참.. 그런데 말이지. 그렇게 잘나신 난쟁이께서 장가를 가려면 신부의 아버지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건 모르나 보군?! 자세가 글러먹었어!]
토르의 말을 들은 알비스가 발끈하며 소리쳤다.
[네놈이 뭐길래 그따위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네까짓 놈이 감히 나, 알비스 님을 가르치려 들어? 스루드의 아비가 누구 건 내가 아내로 삼겠다면 내 아내가 되는 거야! 알았어?!]
[그래? 내가 누구냐고?! 잘 들어라, 버릇없고 정신 나간 난쟁이여! 난 '긴 수염을 지닌 자(Sidgrani : 오딘)'의 아들이다. 내가 바로 스루드의 아버지, 천둥의 신 토르니라!!]
토르는 본래의 위엄 있는 모습으로 알비스를 노려보았다. 너무나도 위엄 있는 신의 모습에 알비스는 순간 당황했지만 내친김에 그대로 밀어붙이기로 했다. 이미 알비스의 끝간데를 모르는 자만심은 자신이 신보다도 훨씬 위라고 여겼으니까.
[아.. 그런데 뭐? 네 놈이 하인이건, 스루드의 애비건, 나보다 아래야! 어디 버릇없이! 하지만 알아두라고. 이미내가 스루드를 아내로 삼기로 한 이상, 그녀는 나의 아내가 되어야만 해! 내가 운명에게 그러라고 명령했거든. 당신도 나같이 위대한 사위를 두게 된 것을 감사하라고! 난, 위대한 알비스 님이니까!]
- 아마 알비스를 보는 토르의 표정도 비슷하지 않았을까?(출처 : '어벤져스-엔드게임'중에서. https://www.marvel.com/movies/the-avengers)
토르는 이 알비스라는 난쟁이가 미쳐도 단단히 미친 것 같았다. 토르는 뒷골이 당기는지 고개를 움직여 목을 풀었다. 토르의 목과 어깨의근육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위압적으로 들려왔다. 알비스의 자신감 넘치는 표정과 달리 그의 팔다리는 덜덜 떨렸다. 알비스의 몸은 이미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혀있었지만, 알비스의 머리와 가슴, 그리고 입은 전혀 다르게 움직였다. 토르는 이 요상한 난쟁이를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 녀석, 이거.. 완전히 제멋대로쟎아? 이거 로키같이 황당한 놈에게 걸려들었는걸.. 이 녀석을 어찌
한다? 헤임달을 불러서 쫓아내는 건 왠지 좀 그렇고.. 으흠... 그렇다고 말로 타이른다고 포기하고 돌아갈 놈도 아니고.. 이 난쟁이 녀석들의 고집은 '글레이프니르(늑대 펜리르를 결박한 마법의 끈)'보다도 끈질긴데.. 어쩐다? 아! 그래. 그 수가 있었지.)]
토르는 한 가지 묘안이 떠올랐다. 토르가 빙긋 웃으며 물었다.
[그렇다면, 네녀석이 내 딸의 신랑감이 되는지 시험을 해봐도 되겠지? 그건 딸을 가진 아버지의 당연한 권리니까 말이야.]
[네가? 나를?]
알비스가 황당하다는 듯 쳐다보자 토르가 더욱 은근하게 말했다.
[싫어? 그럼 내 딸은 못주지.]
[하아.. 이 알비스 님에게 아주 무례한 요구지만.. 그게 풍습이기도 하니 까짓 거 응해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