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키는 자신만의 기선제압을 이어갔다. 우트가르드 로키를 노려보던 로키는 갑자기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로키가 주변의 거인들을 돌아보며 턱을 치켜들었다.
[좋아, 선빵은 내가 날려주겠어! 누가 나랑 붙을 거야? 뭐, 다들 별 볼 일 없어 보이는데.. 그냥 우트가르드 로키, 니가 나랑 붙는 건 어때? 다 볼 필요도 없이 그냥 내 선에서 처리해 주지!]
우트가르드 로키는 로키가 하는 짓이 재미있다는 듯 지켜보다가 대답했다.
[그것도 좋지. 허나 아쉽게도 규칙이라는 게 있어서 말이야. 네가 잘하는 게 뭔지에 따라 종목이 결정되지. 그게 나랑 맞으면 나랑 붙는 거고. 아니면, 다른 거인이 상대를 할꺼야. 그래 우리 라우페이의 아들내미는 무엇에 자신이 있는가?]
[에? 뭐가 제일 자신 있냐고? 에...]
로키는 턱을 감싸 쥐고 생각에 잠겼다. 로키는 자신이 잘하는 것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로키는 도둑질이나 사기, 이간질의 능력은 타의추종을 불허하지만, 이것으로는 바로 승부를 내기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이 모든 것은 아무리 로키라고 해도 사전준비가 필요했다. 다음으로 떠오른 것은 마법이었다. 그러나 마법으로 승부하자니 로키는 이것도 마음에 걸렸다. 로키도 마법에 일가견은 있었지만, 사실 오딘이나 프레이야에게도 못 미치는 정도라서 그에 필적하는 거인이라도 있다면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그렇게 고민을 하다 보니 로키는 문득 배가 고파졌다. 그러고 보니 전날 저녁은 아예 먹지도 못했고,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해서 간에 기별도 가지 않았다. 그런 몸으로 이 크고 넓은 우트가르드를 쏘다닌 데다가, 스트레스까지 받다 보니 로키는 더욱 배가 고파졌다. 로키가 대답을 하지 않자 우트가르드 로키가 말했다.
[말만 그렇지, 라우페이의 아들내미가 별반 재주가 없는 모양이군? 그렇다면 여기서 꺼져줘야겠어.]
그러자 로키가 양손을 허리에 올리고는 특유의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흥! 웃기지 마! 이 로키 님의 재주가 너무너무~ 너어무~~ 많아서 다 생각해 내느라 시간이 걸린 것뿐이야.]
[그래 그렇다면 그 너무너무~ 너어무~~ 많은 재주 중에서 뭘 보여줄 텐가?]
우트가르드 로키가 묻자 로키가 비아냥거렸다.
[거참, 듣기가 거북하네~ 그려. 그게 신에게 할 말버릇이야? 흥! 어쨌건 지금 이 로키 님께서 배가 무지 고프다는 사실! 그리고 난 음식을 빨리! 그리고 많이 먹는 것으로는 단연코! 아홉 세상에서도 제일이라는 사실!]
로키가 음식으로 빨리 먹는 것으로 승부를 걸자, 토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토르가 아는 한, 가장 음식을 빨리 많이 먹는 것에 있어서는 로키를 따를 자는 없었다. 심지어 토르 자신도 술이라면 모를까, 음식을 빨리, 그리고 많이 먹는 것에 있어서는 로키에게 한수 접고 들어갈 정도였기 때문이다.
[흠.. 그렇다면 '음식을 빨리 먹는 대결'을 하자는 거군. 좋아! 그렇게 하지.]
우트가르드 로키는 주위에 모여있는 거인들을 살펴보았다. 그러다 한 거인에게 시선이 멈추었다. 우트가르드 로키가 그를 향해 손짓을 했다. 그는 주변의 거인들 중에서도 가장 마른 거인이었는데, 너무 말라서 오히려 키만 멀 때같이 커 보였다.
[그거야, 먹어보면 알겠지. 자, 어디 그럼 첫 번째 대결을 시작해 볼까? 어서 음식들을 가져오너라!!]
우트가르드 로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거인들은 첫 번째 대결 준비에 들어갔다. 거인들은 먼저 고대한 탁자를 비우고, 커다란 나무쟁반 두 개에 고기를 산더미처럼 쌓아 가지고 왔다. 탁자의 양 옆에 로키와 로기가 자리를 잡았는데, 말 그대로 산더미처럼 쌓아 로키는 물론 로기도 고기의 산에 가려 서로가 보이지 않았다.
- 첫번째 대결은 로키와 로기, 그 승자는?
[시간은 상관없이 먼저 음식을 다 먹은 자가 승리한다. 그럼 시합을 시작한다!]
우트가르드 로키가 말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로키는 기다렸다는 듯이 음식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마치 삽으로 퍼먹는것처럼 로키는 무서운 속도로 음식을 먹어대기 시작했다. 워낙 배도 고팠지만 이런 비실거리는 놈에게 질수없다는 생각에 로키는 더욱 무섭게 음식을 먹어치웠다. 로키가 한참 맛있게 먹고 있는데, 로키의 귀에 놀란 티알피의 목소리가 들렸다.
[세.. 세상에나...]
먹는 데에 정신을 팔렸던 로키는 잠시 먹는 것을 멈추고, 고기의 산 옆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로키는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들고 있던 고기를 떨어뜨렸다. 먹는 것에 있어서 아홉 세상 최고를 자부하는 자신도 아직 나무접시 위에 쌓인 고기의 절반 정도밖에 먹지 못했다. 게다가 로키는 고기는 먹고, 그 뼈는 발라 접시 옆에 쌓아두었다. 그런데 맞은편에 있는 로기는 이미 산처럼 쌓인 그 고기를 다 먹어치우는 것도 모자라, 뼈까지 남김없이 씹어먹었다. 그러고도 모자랐는지 후식으로 나무쟁반까지 뜯어서 씹어먹는 중이었다.
[.. 켁! 케엑!!]
이 얼토당토않는 광경에 놀란 로키는 그만 음식이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았다. 정말 세상에는 겉보기와는 다른 사람들이 많다고 하지만, 그래도 이런 먹성을 지닌 존재가 있다는 건 듣지도 보지도 못한 로키였다. 로키가 사래가 걸려 콜록대는 동안 나무쟁반을 후식으로 다 먹어치운 로기는 곁에서 구경을 하던 거인에게 무언가를 속삭였다. 그 말을 들은 거인이 우트가르드 로키를 보며 외쳤다.
[대장, 로기가 배가 고프답니다! 로키가 안 먹을 거면 저거 자기가 먹어도 되냐고 하는데요?]
거인의 외침에 로키는 물론 토르와 티알피, 로스크바는 모두 할 말을 잃었다. 누가 보아도 첫 대결은 로키가 패배했다. 호언장담하던 로키는 아무런 대답도 못한 채 허탈하게 고기의 산 앞에 주저앉았다.
[아무래도 첫 번째 승부는 결정된 것 같군. 라우페이의 아들이 졌다. 승자는 로기다.]
우트가르드 로키가 승자를 호명하자, 거인들에게서 로키를 향한 비웃음이 터져 나왔다. 로키는 얼굴이 뜨거웠지만, 뭐라 반박도 하지 못한 채 이끌리듯 탁자에서 내려와야 했다. 로기는 로키의 몫으로 남은 고기 접시를 들고 탁자를 떠났다.